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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 막장에서 만난 첫사랑, 막장처럼 헤어졌다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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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83

아내의 과거 막장에서 만난 첫사랑, 막장처럼 헤어졌다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누구나 첫사랑에 대한 추억은 남다를 것이다. 필자도 그렇다.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독자들을 배려하는 입장에서 용기를 내본다.

군에서 갓 제대한 해 필자는 함경북도 명천탄광 채탄공으로 배치 받았다. 수백 m 지하에 있는 일터는 공기도 희박하고 몹시 더웠다. 채탄장 일은 발파로 떨어뜨린 석탄을 삽으로 컨베이어에 싣는 작업인데 쭉 마주 늘어 서서 8시간 동안 100여 t의 탄을 밀어내고 나면 녹초가 된다. 8시간 중 쉬는 시간이란 발파 시간(이때 식사 겸함) 1시간 정도뿐인데, 이 시간에는 둘러 앉아 별의별 소리들을 다 하며 시시덕거린다.

청춘의 한가운데에서 이성만 봐도 설레던 때라 실없이 장난을 치던 일이 종종 있었다. 막장이 더워 젊은 여성 운전공들이 대체로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목표가 됐다. 여성 운전공들은 히죽히죽 웃으며 장난을 치려고 하는 남자들에게 처음에는 스패너며 볼트, 집게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면서 악다구니를 썼다. 그러나 하도 성가시게 달라붙으니 나중에는 그것이 습관처럼 되다시피 했다. 막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막장 문화라고 말해도 될까 싶지만 실제로 장난이 지나쳐 실로 ‘막장’ 문화라 불러도 무방할 듯 했다.

함경북도 명천탄광에서 그녀를 만났다

갱에는 그렇게 철없는 남자들에게 시달리는 젊은 여성 운전공이 20여 명 있었는데 처음에 필자는 그러한 현상을 보며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리를 기웃거렸다. 군 생활 10여 년 여자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30세에 다다랐으니 갓 배치된 19세 처녀도 다 소학교(초등학교) 때 선생님 마냥 예뻐보였던 때다. 마주만 봐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뛰었다. 그러던 중 한 여성 운전공이 다가왔고, 인물이 잘났던 못났던 여자라면 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이 보이던 때라 그녀를 고맙게 생각해 이내 연애에 빠졌다.

이후 어느 날 함경남도 왕장에 있는 사금채취장에 외화벌이 동원을 나갔을 때 연인과 떨어져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속 터지는 일인지 처음 알았다. ‘남녀 간의 애정이란 이런 거구나’ 하고 느껴본 것도 서로 떨어져 지내본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한 달 만에 나는 당 위원회의 지시로 탄광에 올라왔다. 당시 탄광엔 남녀 간의 무질서한 행위들을 집중 조사하는 도당 검열단이 내려와 있었는데 그 검열단이 나를 소환한 것이었다. 속이 섬뜩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연인 아닌 다른 여성들을 불편하게 대한 일이 없어 안심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나 혼자만의 망상이었다.

이미 전날 연인을 조사한 검열단은 나를 불러들이자마자 ‘안일부화’(노동에 근면하지 못하고 도덕적으로 불건전함을 이름) 건으로 몰아세우고 당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비판서를 쓰라고 했다. 황당한 것은 여성이 진술하기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데 사실인지 물어가며 마구 따지는 것이었다.

나는 당당하게 맞받아 소리쳤다. 아마도 군대 생활의 성격이 그대로 남아있던 때라 그랬나 보다. “연인과는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며 미래의 반려자인데 그런 것은 왜 물어보냐?”며 “당신들은 집에 가면 배우자와 애정 표현을 하지 않느냐”며 대들었다. 그러자 검열단 성원들은 뭐 이런 당원이 다 있는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당원이 당 조직 앞에 허심탄회하게 고백하지 않으하면 어떤 책벌을 받는지 모르는가?”라고 물었다. “모두가 당의 방침 관철에 불철주야 뛰는데 당원이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와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면 그것이 ‘안일부화’이고 ‘비사회주의적 현상’이 아니냐?”며 따지고 들어왔다. 그러면서 “0.001%라도 결함이 있다면 접수해야 하는 당 조직의 규범도 모르냐?”며 삿대질에 언성을 높여 협박조를 이어갔다.

나는 끝까지 맞서다가 결국 쫓겨났다. 이제 당 책벌만 남은 상태였다. 어떤 책벌을 당할 것인지 신상의 위기에 몰렸던 것이다. 사실 도당 검열단 앞에서 그쯤 객기를 부렸으면 출당 처벌까지 가능한 일이었다. 더더욱 난감해진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탄광에 소문이 퍼져 동료들은 사건과 관계된 별명을 지어 놓고 놀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불러놓고 “어찌 두 사람만 아는 일을 그렇게 묻는다고 곧이곧대로 이실직고 할 수 있느냐?”며 따졌다. 그러자 그녀는 “도당 검열단이 묻는데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울먹였다.

당의 존엄성 때문에 사생활까지 시시콜콜?

이후 그녀와 단호히 헤어졌다. 그로 인해 초급당에 불려가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그녀가 “당 조직을 존엄 있게 대하는 것이 진짜 충신이 아니냐?”며 몰아세울 때 나 역시 “아무리 당 조직을 존엄 있게 대한다고 해도 개인 사생활까지 시시콜콜 아뢰어야 하는가?”라며 맞섰다. 이후에도 “존엄 있는 도당 검열단이라면서 내부적으로 조사한 내용까지 공개해 그런 어처구니없는 별명까지 얻어야 하는가?”라고 따지기도 했다. 당 비서도 할 말이 없는 듯 입만 쩝쩝 다셨다.

이후 나는 경고 책벌을 받았다. 해제될 때까지 일체의 발언권, 어떤 발령도 받을 수 없는 책벌이었다. 출당이 아닌 그만한 책벌로 넘겨진 것은 후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초급 당 비서가 힘을 썼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으로 우리 두 사람의 애정은 사라졌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한다. 당 조직을 어머니로 여기고 신상의 일을 곧이곧대로 말해야만 그것이 진짜 충성분자로 인정받는 사회, 그것 자체가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임을 그때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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