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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WHY? | 사열단에 선 김정은 … 열병식의 정치학 201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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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WHY?

사열단에 선 김정은 … 열병식의 정치학

이장훈 /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월 8일 조선인민군 건국 70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해 고위간부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월 8일 조선인민군 건국 70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해 고위간부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

열병식은 전통적으로 군대의 전투력과 군기(軍紀) 등 전쟁 수행능력을 점검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특히 독재국가에서 열병식은 단순히 군사적 행사가 아니라 정치적인 행사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독재자들은 자신에 대한 군대의 충성심을 확인하고 군사력을 과시해 적국에 공포를 주는 등 정치적인 의도로 열병식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열병식을 통해 최신예 무기까지 선보이면서 정치적 메시지까지 보낸다.

실제로 옛 소련의 경우 열병식을 정치적으로 활용해온 대표적인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소련은 독재자인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의 지시에 따라 1941년 11월 7일 볼셰비키 혁명 24주년 기념일에 모스크바 크렘린 궁 앞 ‘붉은광장’에서 열병식을 벌였다. 당시 소련은 나치 독일의 공격으로 모스크바가 함락될 위기에 직면하는 등 열병식을 거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이 열병식을 벌인 이유는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나치 독일에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성대한 열병식, 통치력과 국력 동시 과시 수단

소련은 1945년 6월 24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으로 대규모 열병식을 거행했다. 소련군 병사들은 당시 나치 독일로부터 빼앗은 군기(軍旗)들을 소련을 건국한 블라디미르 레닌의 묘소 앞에 바쳤다. 스탈린은 이때도 전승 열병식을 통해 나치 독일에 승리한 것이 소련 덕분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면서 공산주의의 우월함을 과시했다.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에서도 열병식이 거행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0년 5월 9일 승전 기념 열병식을 성대하게 치렀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열병식을 통해 강한 러시아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자신의 통치력과 러시아의 국력을 과시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았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2015년에도 전승 70주년 열병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했다. 러시아 국민들은 ‘대조국전쟁’(러시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승리한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힘을 보여주면서 국민들을 결집하려는 의도로 대규모 열병식을 거행한 것이다.

중국도 2015년 9월 3일 시진핑 국가주석의 주재로 ‘톈안먼광장’에서 전승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거행했다. 중국은 마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한 것처럼 위용을 과시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전쟁을 벌였던 국가는 공산당이 세운 중국이 아니라 국민당이 세운 중화민국(현재의 타이완)이었다. 당시 중국은 둥펑(DF)-31을 비롯해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막강한 핵전력까지 보여주면서 영유권 갈등을 벌이는 있고 일본은 물론 미국 등 서방국가들에 군사력을 과시했다. 게다가 중국의 또 다른 의도는 열병식을 통해 자국민들에게 공산당이 국가를 얼마나 강력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시 주석은 열병식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중국의 꿈(中國夢)’을 반드시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북한도 그동안 러시아와 중국처럼 대규모 열병식을 거행해왔다. 북한에서 열병식이 처음 거행된 것은 1948년 2월 8일 인민군 창설을 기념하는 행사 때였다. 당시 북한은 평양역 광장에 인민군 2만5천명을 비롯해 각종 무기들을 동원해 열병식을 성대하게 거행했다. 36세의 김일성은 이 열병식을 통해 명실상부한 북한의 최고권력자임을 과시했다. 이후 열병식은 1960년까지 9차례에 걸쳐 8·15 광복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의 일환으로 열렸다. 1954년부터는 장소도 김일성광장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김일성이 유일체제를 확립한 이후 열병식은 1961년부터 1990년까지 30년간 총 3회로 급격히 줄었고 시기도 8·15 광복절과 정권수립일(9월 9일), 인민군 창건일(4월 25일) 등으로 다변화됐다. 인민군 창건 날짜는 1978년부터 갑자기 바뀌었다. 당시 김정일은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중국 안투현 소사하 들판에서 항일유격대를 만들었다는 점을 내세워 4월 25일을 건군절로 삼을 것을 결정했다. 김정일은 인민군이 항일혁명투쟁을 계승한 군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고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내세우면서 열병식이 중요한 행사가 됐다.

김정일은 2011년까지 모두 13차례의 열병식을 북한 체제선전의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특히 김정일은 201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을 자신의 옆에 세우면서 차기 후계자임을 대내외에 알렸다.

건군 70년 열병식, 대미 보복공격 능력 강조

김정일보다 열병식을 더욱 좋아하는 김정은은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년을 맞이해 열병식을 벌이면서 자신이 북한을 통치하는 최고지도자임을 과시했다. 김정은은 권력을 잡은 이후 지금까지 열병식을 모두 7번이나 거행했다. 북한은 지난 2월 8일 건군 70주년을 기념해 열병식을 벌였다. 이날 열병식을 거행한 것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이 지난 1월 22일 인민군 창건일 2월 8일을 변경하기로 결정한 것에 따른 것이다. 김정은이 건군절을 40년 만에 바꾼 것은 조부인 김일성을 따르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은 또 군을 내세웠던 김정일과 달리 당 중심의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2월 8일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하루 전날이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의 이목은 북한의 건군 70주년 열병식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이번 건군 70년 열병식에서 ICBM인 화성-14형과 15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과 북극성-2형 등을 등장시켰다. 그러면서도 신형 전략무기는 공개하지 않았고, 열병식 규모도 과거보다 축소했다. 실제로 북한은 지금까지 열병식을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했는데, 이번에는 녹화중계를 했다. 열병식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1시간 30분간 진행됐는데, 북한 <조선중앙TV>는 오후 5시 30분부터 열병식을 녹화 중계방송 했다. 열병식 시간도 과거보다 70분 정도 줄어들었고 외국 언론도 초청하지 않았다. 북한이 이번 열병식을 다소 조용하게 거행한 것은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사회의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평화공세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열병식 장면을 생중계로 내보낼 경우 한국민을 자극할 것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의도는 또한 강력한 제재 조치에 나서고 있는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유화적 제스처를 보이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을 겨냥해 핵무력을 과시했다. 이번 열병식에 등장한 화성-14형과 15형, 화성-12형과 북극성-2형 등은 모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이다. 이중에서 화성-14 및 15형은 지난해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05년 열병식에는 등장하지 않았고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북한은 화성-14형을 지난해 7월 두 차례, 화성-15형을 지난해 11월 한 차례씩 시험발사한 적이 있다. 화성-14형은 최대사거리 1만여 ㎞로 미국 서부지역을, 화성-15형은 최대사거리 1만3천여 ㎞로 미국 전역을 각각 타격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북한이 이번에 화성-12형을 6기나 공개했다는 것이다. 화성-12형은 사거리가 5천~5,500㎞로 미국의 괌을 타격할 수 있다. 북한의 의도는 미국이 선제공격할 경우 보복공격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또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인 KN-21을 이번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북한은 지난해 8월 강원도 안변군 깃대령 미사일 기지에서 KN-21을 시험발사해 250㎞를 비행한 바 있다. 이 미사일은 러시아의 단거리탄도미사일인 이스칸데르와 비슷하다. KN-21은 고체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15분 내 발사가 가능하다. 저각으로 발사하면 비행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종말단계 유도기능으로 요격을 회피할 수 있다.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최대사거리가 500㎞지만 복잡한 회피기동을 통해 요격시도를 무력화할 수 있다. 북한이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유사한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을 열병식에서 공개한 것은 한국과 주한미군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뚫을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으로 평화공세를 벌이면서도 이번 열병식을 통해 미국과 한국을 위협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공개한 것은 핵무기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한편 트럼프 미국 정부는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한 것은 한·미동맹을 이간질하면서 제재를 완화시키고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핵무력 강화를 주장하면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영구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북한은 또 남북고위급대화에서 핵 관련 사항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때문에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가 담보되지 않는 남북정상회담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북한은 2000년과 2004년, 2006년 올림픽 때도 유화공세를 폈고 2006년에는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8개월 만에 첫 번째 핵실험을 감행했다”면서 “북한의 비핵화는 어떤 변화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협상을 통한 핵무기 포기 의도가 없다

미국의 정보기관 수장들도 지난 2월 13일 ‘전 세계 위협 평가’를 주제로 열린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협상을 통해 핵무기를 포기할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김정은은 핵 탑재 ICBM을 한·미동맹을 끝장내고 종국에는 한반도를 지배하는 장기 전략적 야욕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북한은 핵능력을 차곡차곡 증강시켜 나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미국을 위협하기 위해 핵능력을 보유하려는 김정은의 전략적 변화 징후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과 미국이 탐색적 성격의 대화를 하더라도 별 다른 성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을 경우 대화가 협상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연구원은 “북한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고 자신들이 핵무장 국가라고 주장한다면 미국과 북한 간의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평창 이후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 문제를 놓고 팽팽하게 대치할 경우 한반도 위기는 자칫하면 더욱 고조될 수도 있다. 실제로 북한은 ‘올림픽 휴전’이 3월 25일 끝나면 우주개발을 명분으로 인공위성용 로켓을 발사하거나 SLBM을 시험 발사하는 등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대화를 고리로 평화공세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 말 그대로 핵과 남북관계를 분리한 정교한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시작되는 때가 한반도의 격동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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