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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정상회담, 북·미 중재 지향하되 조급한 합의는 지양해야 201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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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남북정상회담 초읽기 … 대전환의 기로에 섰다!

정상회담, 북·미 중재 지향하되 조급한 합의는 지양해야

고명현 /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1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문 타운십의 공화당 후보 선거지원 유세에서 "북한을 막 방문하고 미국에 온 한국의 특사단이 많은 언론 앞에서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한다고 발표했다"면서 "미국의 대북전략이 효과를 거둬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희망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1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문 타운십의 공화당 후보 선거지원 유세에서 “북한을 막 방문하고 미국에 온 한국의 특사단이 많은 언론 앞에서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한다고 발표했다”면서 “미국의 대북전략이 효과를 거둬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희망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연합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대화의 장에 나오게 만든 것은 트럼프의 최대 압박 및 관여 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지속적인 대화 노력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꾸준히 북한과의 대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는 북한의 대미 도발 전략이 결국 한계에 봉착할 것을 예상하지 않고는 이행하기 어려운 접근이었고, 북한에게 도발 사이클의 출구 가능성을 제공해 혹시 있을 북한의 오판 가능성을 최소화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그 결과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최초의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는 기회와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적 경쟁에서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

안보라인 교체, 북한에 강력한 비핵화 촉구하는 신호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은 북·미정상회담 제안을 받아들인 후 안보라인을 대거 강경파로 교체하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이 신임 국무장관,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역임한 존 볼튼이 신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미국이 북한에게 강력한 비핵화를 촉구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며, 문재인 정부의 ‘선(先) 동결, 후(後) 비핵화’ 접근이 아닌 선 비핵화를 요구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문 정부를 가깝게 껴안아야 하는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4월 27일 개최될 남북정상회담은 남북이 원론적 차원의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노력을 함께 할 것을 합의하고, 상징적 차원의 민간교류 및 인도주의적 지원 확대를 의논하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측되었다. 김정은에게는 한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이후 있을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을 위한 리허설도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선 비핵화 압박이 커지면서 남북정상회담의 전략적 의미도 커졌다. 미국의 선 비핵화 요구가 보다 확실해졌고, 당장 5월말에 있을 정상회담을 위한 북·미 간의 대화 접촉은 매우 더딘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미 양쪽에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 이후 한국은 북한에게 미국과의 대화의 장을 마련해주는, 어느 정도 중립적인 중재자 역할에 치중하였다. 그러나 더욱 적극적으로 대화를 주도할 경우 이제는 중재자에서 향후 북·미 간의 대화를 보장하는 보증인의 역할까지 맡아야 된다. 이 안에 문재인 정부 외교 전략에 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전 김정은과 “햄버거 만찬”까지 언급하며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북한이 보인, 수위가 높으며 가속화된 도발 사이클에 대해 강한 대처를 천명하며 강경한 노선을 걷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 있어서 평양에서 갓 돌아온 한국특사단과의 면담 직후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 제안을 즉각 수락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미국 주류 언론은 정상회담 수락이 트럼프의 즉흥적 성격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는 기류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즉흥적으로 정상회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북한은 정상회담 전후로 ‘CVID’1)에 준하는 비핵화를 약속해야지만 현재 당면한 압박기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재 미국 정치권 내 북한에 대한 기류는 여야를 떠나 매우 강경하며 미국 내 북한과의 대화파는 일부 전직 관료나 재야 학자뿐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만남을 위한 만남’을 갖고 김정은과 비핵화 관련 원칙적 합의를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지금 트럼프는 정상회담을 전후로 김정은에게서 CVID 수준의 비핵화 약속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러한 트럼프의 입장은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북핵문제 해법인 ‘선 대화, 후 비핵화’와는 거리가 있다, 얼마 전 북한의 리비아식 비핵화, 즉 ‘선 비핵화, 후 보장’을 주장하는 볼튼이 백악관 NSC 보좌관으로 임명된 것은 북핵 해법과 관련한 한·미 간의 입장 차이를 더욱 크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미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북한은 비핵화 관련해 전략적으로 유연하게 대처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북한에게 있어 비핵화 약속은 생각보다 덜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일단 북한에게 유리한 점은, 평시에 핵보유국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한 전례가 없기 때문에 미국이 단기간 내에 제안할 수 있는 협상 패러다임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만약 북한과의 거래, 즉 ‘딜’을 원한다면 어느 정도의 합리성을 갖고 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이전 협상 프레임인 ‘행동 대 행동’ 즉, 북한의 단계적인 비핵화 조치와 이에 상응하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체제안정 보장 조치를 교차적으로 이행하는 방식으로 절충안을 찾을 것이다.

1) CVID: 완전하고(Complete), 검증가능하며(Verifiable),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폐기(Dismantlement)를 의미하는 영문 앞글자를 딴 것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 1기 때 수립된 북핵 해결의 원칙이다. 당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목표를 천명할 때 이 표현을 사용했다.

  

, 비핵화 관련해 전략적으로 유연한 대처 가능성 커

이러한 비핵화 방식은 필연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북한이 30년 넘게 공들여온 핵을 하루아침에 포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북한이 최종 사찰 및 검증 단계를 최대한 뒤로 미룰 수만 있다면 더욱 금상첨화일 것이다. 어쩌면 북한은 이를 노리고 북·미정상회담을 트럼프에 제안했을 수 있다. 부분적 사찰 수용과 미사일 일부 능력을 과감히 포기하며 미국의 적극 호응을 끌어낼 수도 있다. 물론 북한이 미국에 많이 양보할수록 완전한 핵보유국의 목표에서는 멀어진다. 그러나 올해 34세인 김정은에게는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등극하기 위해 10년 또는 20년을 더 기다리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북한은 이란처럼 완전한 핵보유를 위해 전쟁을 불사하기보다는 이를 유보하여 반대급부를 얻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유연히 임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한국이 굳이 중재를 넘어 일괄적 해결 방안까지 제시할 필요가 없다. 청와대는 ‘비핵화는 북·미가 당사자’라고 말하지만 이미 한국은 북·미대화 프로세스에 깊이 간여하고 있는 상태이며, 문 대통령이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써 남·북·미정상회담을 언급한 것은 행여나 생길 수 있는 북·미정상회담 불발을 막고, 북한과 한국의 ‘선 대화, 후 비핵화’와 미국의 ‘선 비핵화, 후 대화’ 간의 상호모순을 해결하는 노력으로 보아야 한다.

최근 청와대는 향후 남·북·미 대화에서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와 북·미관계 정상화, 남북관계 발전, 북·미 간 또는 남·북·미 간 경제협력 등을 논의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즉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과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를 남·북·미 대화 프레임 내에서 일괄타결 하려는 게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먼저 손 내밀기를 주저하는 북·미 사이에서 한국이 중재자의 위치를 넘어 적극적 대안까지 제시하는 모양새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미국의 중재로 1978년도에 맺은 캠프데이비드 평화협정을 떠오르게 한다. 이 협정에서 미국의 역할은 단순히 대화 장소를 제공한 중재자가 아니었다. 미국은 중동지역의 안정을 위한 두 나라의 관계개선이 절실했고, 이를 위한 로드맵을 만들고 동시에 군사적·경제적 보장을 약속했다. 이 결과 미국은 두 국가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위해 캠프데이비드 협정 후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대대적으로 늘렸다. 1980년대 후반까지 미국의 대외원조 최대 수혜국은 이스라엘과 이집트였을 정도다.

북한 비핵화 과정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로드맵을 제시한 이상, 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할 것은 자명하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남북대화를 위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경제협력을 언급하였다. 미국에게도 반대급부가 있을 것이다. 당장 안보와 경제를 결부하여 우방을 압박하는 트럼프 때문이라도 무기구매부터 방위비 분담, 통상문제까지 광범히 한 분야에 걸쳐 미국에게 양보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캠프데이비드 합의의 덕을 본 미국과는 다르게 한국은 북·미 합의를 위해 전략적 희생을 해야 한다. 특히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 조치는 결국 한·미동맹의 이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우려된다. 북한이 비핵화 과정에 동의한다면 부분적 사찰과 핵폐기에 대한 즉각적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조치는 주한미군 축소와 한·미연합군사훈련 폐지 등이 있다. 게다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이 곧 실행되면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함께 한·미연합군사체계 또한 서서히 분리되어 한·미동맹의 군사적 억지력 또한 제한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등가교환의 실효성이다. 핵보유를 필요로 하는 북한 체제 불안정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지 않고 북한의 주장대로 미국의 적대정책, 즉 한·미동맹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한국이 치러야 하는 전략적 대가는 너무나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비핵화는 기본적으로 미국과 북한이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문제다. 다만 북·미 갈등이 군사적 충돌로 확산되는 것을 최대한 막는 리스크 관리는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 있어서 지난해 문재인 정부는 꾸준한 남북대화 노력을 통해 북한에게 도발 사이클에서의 출구를 제공한 공이 있다. 남북대화를 통해 북·미대화를 파생하도록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압박 지렛대 삼아 최대한 양보 끌어내야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합의를 종용하는 문재인 정부의 조급한 마음이다. 이는 북한이 트럼프의 ‘최대 압박과 관여’ 정책이 없이는 아직까지도 비핵화 자체를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간과한다. 즉, 압박 유무에 따라 북한은 상당한 수준의 비핵화도 받아들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전략은 생각보다 유연하며, 한국의 관여 없이도 핵보유 목표를 어느 정도 희생하면서까지 다음 기회를 도모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북한은 상당한 수준의 비핵화에 동의하고, 미국은 대신 한·미동맹을 손상하지 않는 차원 내의 체재보장 조치를 취하는 합의를 북한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현재 언급되는 문재인 정부의 평화 로드맵 제안은 두 가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이 북한과 단독으로 달성할 수 있는 비핵화 수준보다 못 미치는 단계의 비핵화로 이어지던지, 아니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대가로 필요 이상의 전략적·경제적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전자의 위험성은 자명하다. 후자의 경우 격화되어 가는 미·중 갈등 사이에 낀 한국에게 큰 불행의 시초가 될 수 있다. 북핵이라는 발등의 불은 껐다고 쳐도 중국이라는 큰 불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오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방식과 향후 로드맵을 북한과 확정짓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한국이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는 모양도 피해야 한다. 이 경우 북한은 자신들이 약속해야 할 비핵화 수준이 그리 높을 필요가 없다고 오판하거나 미국과의 담판에서 악용할 가능성이 커진다. 급할수록 천천히 가야 한다. 비핵화는 한국이 주도권을 잡기보다는 미국의 압박을 지렛대로 삼아 북한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끌어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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