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5월 8일

Uni – Movie | 독재자가 죽었다, 혼돈이 시작됐다 2018년 5월호

print

Uni – Movie | <스탈린의 죽음>

독재자가 죽었다 

혼돈이 시작됐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20180503_164226

지난 3월 영국 런던에서 러시아 출신 스파이가 화학무기에 살해당하면서 영국과 러시아 간 외교관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로써 지난 20년간 영국에서 죽은 러시아 망명자들은 14명이 되었다. 급기야 지난 4월에는 영국이 미국, 프랑스와 함께 러시아와 우호관계에 있는 시리아에 폭격을 감행하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동안 유럽 자본주의의 상징적 존재인 영국과 구소련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러시아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은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한 영화가 영국에서 개봉되면서 양국은 다시금 껄끄러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영화 <스탈린의 죽음>은 스탈린의 죽음과 그 후 소련 정치가들이 벌이는 권력투쟁의 민낯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그려낸 영화로, 영국 풍자 코미디의 달인 아만도 이아누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이틀 전인 지난 1월 23일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당시 러시아는 2월 2일 스탈린그라드 전투 75주년을 코앞에 둔 상황으로, “자칫 전사자들의 영예에 먹칠을 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라는 러시아 애국주의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줄거리

영화는 1953년 스탈린이 사망을 앞둔 시점에서 시작된다. 때는 소비에트연방(소련)의 유명한 폭압기구였던 내무인민위원회의 통치가 20여 년간 진행된 시기로 소비에트식 폭압정치가 극에 달했던 시기다. 스탈린 후계자들의 권력암투를 다룬 영화다 보니 주요 인물들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당시 내무인민위원회 장관이었던 베리야는 소련의 경찰 등 공안기관을 담당했다. 그 외 인물로는 소련 부의장 말렌코프, 외무장관 몰로토프, 모스크바 제1서기 흐루시초프, 노동부 장관 카가노비치, 통상부 장관 미코얀, 국방부 장관 불가닌, 소련군 사령관 주코프 등이 등장한다.

영화의 인물들이 각자의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그려지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러던 중 사건의 발단이 되는 모스크바의 한 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모차르트 연주회로 장면이 전환된다. 연주가 끝날 무렵 급히 스탈린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연주회의 음악을 녹음해서 보내라는 ‘명령’이었다.

갑자기 걸려온 스탈린의 전화 한 통에 연주회장은 난리가 났다. 명령을 이행하고 싶어도 이미 모든 연주를 마쳤기 때문이다. 여기서 독재사회 특유의 ‘생산력’이 발휘된다. 곧 관객들은 다시 모이고 연주회가 진행된다. 단 한 명에게 전달될 앨범을 위해서였다.

한편 이 연주회의 피아니스트는 반체제 인사로 그녀의 부모형제는 이미 수용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우여곡절 끝에 스탈린의 손에 전달된 레코드판에는 그녀가 쓴 메모가 한 장 들어있었다.

‘당신은 국가를 배반하고 인민의 삶을 파괴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죽어 주님께 용서받기를 기원합니다. 폭군’

메모를 읽고서 스탈린은 파안대소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돌연 호흡을 가쁘게 쉬며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스탈린 사망. 30년간 지속된 스탈린의 철혈통치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내 당시 ‘소련공산당 규약’ 2조 17항 “지도자가 유고일 경우 즉시 간부회의를 소집한다”에 따라 국가 간부들이 하나둘 소집된다. 그리고 소련은 스탈린이라는 거물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헤게모니 쟁탈전에 돌입한다.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던 것은 정치숙청 사업을 도맡았던 내무위원회의 수장 베리야였다. 그는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스탈린의 거처에서 간부들의 신상에 관한 비밀문서를 빼돌린다. 동시에 모스크바를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고 군의 경계 업무를 인수받아 모스크바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총서기 직책은 명목상 당시 부의장 직책을 맡고 있던 말렌코프가 대행했다. 이미 베리야와 말렌코프는 밀약을 통해 서로를 정치적 동반자로 삼고 다른 간부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흐루시초프 등은 군사령관 주코프와 손을 잡고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정치적 책임을 물어 베리야를 총살형 하는 것으로 권력 쟁탈전은 막을 내린다.

감상포인트

당시 소련의 통치자였던 스탈린식 통치모델은 세계의 공산권 국가들과 제3세계 국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독재정치의 교과서로 작용한 것이다. 물론 독재에 관해서는 독일의 히틀러도 빠질 수 없다. 두 명의 독재자는 그동안 지구상에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독재국가 모델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독재가 사라진 이후 권력이 요동치며 얼마간 혼돈이 지속되었다. 1953년 스탈린의 사망과 최측근이었던 베리야의 처형 이후 소련은 다시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일종의 집단지도체제 방식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베리야의 숙청 이후 흐루시초프는 1956년 과거 동지였던 몰로토프, 말렌코프 등을 제거하고 소련의 당권을 잡았지만 1964년, 브레즈네프에 의해 축출되었다.

이렇듯 당시 스탈린의 사망 이후 소련에서 나타난 권력투쟁은 중국과 북한 등 후발 공산사회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바로 ‘절대권력’의 안정적인 이양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킨 것이다.

영화 <스탈린의 죽음>은 원조 독재국가의 지도자 사망 이후 나타난 권력투쟁의 단면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실제 스탈린 사망 이후 소련의 모습은 독재사회 권력의 지속성을 유지하는데 방법론적 교훈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일면 씁쓸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