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5월 8일

화폐타고 세계여행 | 동남아에 흐르는 중동의 DNA, 브루나이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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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타고 세계여행 14

동남아에 흐르는 중동의 DNA, 브루나이

시나씨 알파고(Şinasi Alpago) / <하베르코레> 대표  

누군가 필자에게 화폐수집 이외에 열심히 하는 취미생활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바로 SNS 활동이다. 필자가 제작한 UCC 영상이나 블로그 글 중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동남아시아 국가 관련 콘텐츠다. 동남아는 한국에 지리·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현재 한국은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을 국내 한 건설사(롯데)가 지었다는 등의 이슈 외에는 일반적으로 동남아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 글에서 동남아에 위치한 나라 ‘브루나이’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브루나이를 주제로 선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필자 사이트의 방문객 과반수는 ‘브루나이 공화국’을 검색해 들어오는데, 사실 브루나이는 공화국이 아닌 군주주의로 통치되는 ‘술탄국’이다. 그만큼 익숙하지 않기에 흥미도 역시 높을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지폐 앞면에 술탄 초상화!

1 브루나이 달러

1 브루나이 달러

브루나이는 동남아에 위치한 산유국으로 국교는 이슬람교다. 오일머니로 국민들에게 풍족한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언뜻 중동 나라들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중동 국가들과 다른 점이 있다. 보통 술탄이 통치하는 이슬람 국가 화폐에 지도자의 사진이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브루나이 달러의 모든 지폐 앞면에는 술탄(이슬람 국가의 정치 지도자) 하사날 볼키아(Hassanal Bolkiah)의 초상화가 실려 있다. 이 부분에서 브루나이는 동남아 국가의 특징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태국, 캄보디아, 부탄 등 동남아 왕정국가 화폐에는 주로 그 나라 군주 사진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술탄 하사날 볼키아는 다방면으로 두각을 드러낸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1946년에 태어나 1961년 왕세자가 된 그는 1967년 국왕에 즉위했다. 영국 샌드허스트 왕립 육군사관학교에서 유학하기도 한 그는 1986년 총리와 국방장관을 겸임하였고, 현재는 재정부 장관까지 맡고 있다. 또한 재산이 약 40조 원에 이르러 2006년 <포브스>가 발표한 ‘역대 최고 부자 리스트’ 11위에도 이름을 올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재 브루나이에 있는 유력한 대학교들의 총장이면서 2015년부터는 외교부 장관까지 겸임하게 되었다. 즉 정권을 ‘화끈하게’(?) 잡고 있는 것이다.

5 브루나이 달러

5 브루나이 달러

그렇다면 브루나이에서 공화주의나 민주주의는 전혀 없는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5달러 뒷면에 보이는 사진을 설명해야 한다. 지폐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이슬람 사원이 아닌 ‘The Lapau Diraja’, 즉 왕궁이다. 약칭은 ‘라파우’로 브루나이의 정궁 기능을 한다. 술탄이 국가를 통치하는 곳이자 국가 공식행사가 열리는 궁전이다. 또한 술탄과 그의 가족들도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하사날 볼키아 술탄이 1967년 왕좌에 오를 때도 이곳에서 즉위했다. 예전에는 궁전 안에 의회도 있었지만 이제는 새 건물로 옮겨갔다. 그렇다. 전제군주제 브루나이에도 ‘의회’가 있다. 하지만 의회의 역할이 조금 애매하다.

법적으로는 입헌군주제’, 실상은?

10000 브루나이 달러

10000 브루나이 달러

브루나이 「헌법」은 1959년에 제정되었고, 이를 계기로 식민지배를 받던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얻었다. 이 「헌법」에 따르면 브루나이는 입헌군주제에 국회가 열려야 하고, 선거가 실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브루나이에서 마지막 총선은 1962년에 실시되었는데, 브루나이와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와 통일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민주시위 때문에 총선을 기피하게 되었다. 현재 국회는 일정 조언을 해주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1984년에는 해산되어 2005년까지 문을 닫은 적도 있었다.

2006년 새로운 디자인으로 발행된 10,000달러 뒷면에 보이는 건물이 현재의 국회의사당인데 2005년에 완공되어 국회가 이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다시 개회하게 되었다. 브루나이는 1989년 처음으로 10,000달러 화폐를 발행해 전 세계에서 가장 단위가 큰돈을 만들었다.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돈이 스위스 1,000프랑인데, 브루나이 10,000달러는 스위스 1,000프랑보다 7배 정도 가치가 높다. 또한 현재 가장 최고가인 싱가포르 10,000달러와 통용가치가 같다.

10 브루나이 달러

10 브루나이 달러

정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브루나이는 법적으로는 입헌군주제이지만, 사실상 절대군주제다. 현재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33명의 국회의원은 선출직이 아니라 모두 술탄의 지명으로 임명되었다.

그렇다면 왜 국민들은 이러한 정치적 모호성(?)을 이유로 시위에 나서지 않는 것일까? 물론 냉전시기 중반에는 다소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치적으로 큰 문제없이 안정적으로 국가가 운영되고 있다. 왜냐하면 술탄 볼키아 가문이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해답은 복지와 종교에 있었다. 브루나이는 석유 수출국이며 카타르 다음으로 가장 부국(富國)이다. 볼키아 가문이 석유로 번 돈을 국민 복지예산으로 사용하다보니 정권에 대한 국민 정서는 상당히 우호적인 편이다.

그리고 역대 술탄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술탄 하사날 볼키아도 종교인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는 동시에 틈틈이 거창한 종교 시설들을 세우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10달러 뒷면에 보이는 이슬람 사원이다. 이 건물은 브루나이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자메 아스르 하사날 볼키아 사원(Jame’ Asr Hassanal Bolkiah Mosque)’으로 1992년 하사날 볼키아 술탄 취임 25주년을 기념해 건설됐다. 브루나이 사람들은 ‘키아롱 사원(Kiarong Mosque)’이라 부르는데 사원인 동시에 현재 브루나이의 주요 관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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