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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훈의 취재수첩 | 11년만의 남북 정상 만남 … 평화·번영의 발걸음 내딛다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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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훈의 취재수첩

11년만의 남북 정상 만남 … 평화·번영의 발걸음 내딛다

장용훈 /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서명한 '판문점 선언문'을 교환하고 있다. ⓒ연합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오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서명한 ‘판문점 선언문’을 교환하고 있다. ⓒ연합

 

“남북 평화와 공동 번영과 민족 염원인 통일을 우리 힘으로 이루기 위해 담대한 발걸음을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27일 ‘평화의 집’에서 ‘판문점 선언’에 서명한 후 가진 선언문 발표식에서 새로운 한반도의 출발을 알렸다. 4·27 남북정상회담 당일 오전 9시 30분 군사분계선(MDL) 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악수는 찰나였지만 그 맞잡은 두 정상의 손은 한반도에 겹겹이 쌓인 분단과 대결을 밀어내고 새로운 시작의 발걸음을 뗐다.

김 위원장은 오전 9시 27분께 판문각 정문에서 북측 경호원 20여 명의 삼엄한 경호에 둘러싸여 수행원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전용 차량을 타고 계단 아래에 바로 내릴 것이라는 예상을 깬 ‘깜짝 등장’이었다.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은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먼저 북쪽 판문각을 바라보고 기념촬영을 한 뒤 남쪽 ‘자유의 집’을 보고서도 거듭 기념촬영을 했다.

언제쯤 넘어갈 수 있을까지금 넘어가 볼까요?”

이때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다시 군사분계선을 넘어 약 10초 동안 북쪽 땅을 밟는 파격을 보였다. 김 위원장의 월경은 예정된 일이었지만, 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 땅을 밟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이벤트였다. 문 대통령이 “나는 언제쯤 (북측으로)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하자 김 위원장이 “그러면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며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었다.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에서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와 소회의실(T3) 근처에 도열해 대기하던 남북 수행원들은 이런 정상들의 모습에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이날 판문점에서 이뤄진 모든 순간은 분단 이후 최초로 기록됐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MDL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사실 자체도, 국군의장대 사열도 처음이었다. 두 정상은 전통의장대가 도열해 있는 판문점 ‘자유의 집’ 우회도로를 통해 ‘자유의 집’ 주차장에 있는 공식 환영식장까지 130m를 걸어서 이동했다. 문 대통령은 환담을 나누며 “오늘 보여드린 전통의장대는 약식이라 아쉽다.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그런가요?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며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두 정상은 오전 9시 40분께 사열단에 올라 의장대장 경례를 받은 후 의장대장의 “사열 준비 끝” 구령에 맞춰 다시 단장 아래로 내려와 의장대를 사열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우리 측 공식 수행원 9명을 차례로 소개했다. 이 중 김 위원장을 향해 깊이 허리를 굽힌 수행원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뿐이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 소개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측 수행원 9명과 인사했다. 이때 북한의 합참의장 격인 이명수 총참모장과 국방부 장관 격인 박영식 인민무력상이 잇따라 문 대통령에게 경례를 붙인 뒤 악수하려 손을 내미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또 남북 양측은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관리할 남북한의 통일·외교 업무 수장뿐 아니라 국방장관과 야전군사령관까지 총출동해 남북 양 정상을 수행함으로써 평화구축 의지를 뒷받침했다.

남북 정상은 ‘평화의 집’ 2층 회담장에서 오전 10시 15분부터 일부 수행원과 함께 100분간 확대정상회담을 시작했다. 확대정상회담에는 우리 측에서 임종석 실장과 서훈 원장이, 북측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과 김영철 부위원장이 각각 공식 수행원으로서 양 정상을 배석했다. 양 정상은 모두발언에서 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가감 없이 표시했다. 문 대통령은 “통 큰 대화를 통한 합의”를 제안했고, 김 위원장도 “수시로 만나 마음을 합치자”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오전 10시 15분부터 각각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만 배석시킨 채 100분간의 회담을 했다.

마무리발언에서는 회담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하는 등 전망을 밝게 했다. 문 대통령은 마무리발언에서 “오늘 아주 좋은 논의를 많이 이뤘다. 남북 국민들에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 역시 “이제 시작,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겠지만, 오늘 첫 만남에서 이야기한 것이 발표되고 나면 기대했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만족을 드렸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남북 정상, 3개 장 13개 조항의 판문점 선언합의20180503_144802

오후에는 친교를 위해 도보다리를 산책하면서 배석자 없는 사실상의 ‘단독 회담’을 30분간 가졌다. 허심탄회하고 솔직하게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눈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3개 장 13개 조항으로 이뤄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합의문은 크게 세 덩어리로 구성됐다. 남북관계 개선, 전쟁위험 해소,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다. 이들은 그동안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핵심 의제로 언급해온 것으로 비핵화 문제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파트에 담겼다.

선언에는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며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고 강조했다. 남북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합의한 것은 1992년 1월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이후 26년 만이다. 정부는 이번 선언에 비핵화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합의를 담고자 했지만, 일단 김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명시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오는 5월∼6월 초로 예상되는 북·미정상회담에서 더욱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로드맵도 분명히 했다. 판문점 선언은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문화했다. 이는 이번 정상회담 이후 5월 한·미정상회담 → 북·미정상회담 → 북·중정상회담 등의 외교 과정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토대를 닦아나갈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남북의 양 정상은 ▲ 내달 1일부터 적대행위 중지 및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 ▲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평화수역화 ▲ 군사당국자회담 자주 개최 등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조치에도 합의했다.

이러한 합의는 이미 1991년 12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기본합의서’로 불리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담긴 내용으로 남북관계의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한 것도 이런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본합의서 제7조는 판문점에 남북연락사무소를 설치 및 운영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번 판문점 선언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성에 남북한 당국자가 상주하는 공동연락사무소의 운영에 의견을 모은 것이다.

이번 판문점 선언에는 한동안 중단됐던 남북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에도 합의를 이뤘다. 고위급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남북 당국 간 회담뿐 아니라 6·15공동선언 발표 18주년 등을 계기로 한 당국과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 개최에 합의해 본격적인 사회문화 교류가 줄을 이을 전망이다. 또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 공동입장 등 체육교류를 위한 논의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판문점 선언에는 이산가족 문제 해결방안을 논의할 적십자회담과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함으로써 2015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 만에 가족들의 만남이 이뤄지게 됐다.

사실 남북 간에 유의미한 내용을 담은 합의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7·4남북공동성명, 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 등 다양한 합의가 있었지만 이행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는 늘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따라서 합의를 이행해 달라진 한반도를 만드는 것은 앞으로 남북 간에 남겨진 과제가 됐다.

전망은 긍정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역사적인 이런 자리에서 기대하는 분도 많고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도 발표되어도, 그게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오히려 이런 만남을 갖고도 좋은 결과에 기대를 품었던 분들에게 더 낙심을 주지 않겠나”라고 반문하며, 회담 합의이행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면서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정기적 회담과 직통전화로 수시로 논의하겠다”고 말해 앞으로 판문점 선언의 이행상황을 남북 정상이 직접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해 합의 내용의 중간점검을 할 전망이다. 이 합의가 이행되면 한 해에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핫라인까지 어우러지며 양 정상 간 긴밀한 소통채널을 갖추게 돼 정상이 직접 챙기는 남북관계가 가능해졌다.

선언을 이행할 국제적 환경 조성도 과제다. 특히 현 한반도 정세에 대한 미국의 평가와 태도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행스럽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과 관련해 트위터에 글을 올려 “한국전쟁이 끝날 것이다!”라며 “미국과 모든 위대한 미국인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매우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군다나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심복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며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해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가 인준절차 및 취임선서를 마치고 70대 국무장관으로 취임하게 됐다.

북·미정상회담 청신호 … 구체적 비핵화 로드맵 도출 주목

오는 5월∼6월 초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에 청신호가 켜지면서 비핵화와 관련해 남북정상회담에서 원칙적 합의가 이뤄진 데 이어 구체성이 담긴 비핵화 로드맵이 만들어질 것인지 주목된다. 한반도는 이번 정상회담을 필두로 5월 한·미정상회담→ 5월∼6월 초 북·미정상회담→ 6월 북·중정상회담을 이어가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분주한 외교를 이어갈 전망이다.

한편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출발을 알린 남북 정상의 만남은 이날 오후 기념식수와 환영 만찬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남북의 영부인인 김정숙 여사와 이설주 여사가 참석해 만찬은 완전체가 됐다. 여기에 평양의 옥류관에서 파견된 요리사가 만든 평양냉면과 김대중 전 대통령 고향인 신안 가거도의 민어해삼편수, 노무현 전 대통령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의 유기농 쌀밥, 문 대통령이 어린 시절을 보낸 부산의 달고기구이 등 남북의 요리가 화합의 식탁을 마련했다.

군사분계선 위에 평화와 번영을 염원하는 소나무 기념식수에서는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을 함께 섞어 사용하고 식수 후에는 김정은 위원장은 한강 물, 문재인 대통령은 대동강 물을 골고루 뿌렸다. ‘합토합수’가 이뤄진 것이다. 남북한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만찬과 식수를 통해 대립과 반복을 밀어내고 화해와 화합을 향해가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김 위원장과 나는 이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좋은 길동무가 되었다”며 “이제 이 강토에서 사는 그 누구도 전쟁으로 인한 불행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남북한이 힘을 합쳐 평화를 지켜나갈 것을 확인했다. 김 위원장은 만찬 답사에서 “이 땅의 영원한 평화를 지키고, 공동 번영의 새 시대를 만들어 나가려는 나와 문재인 대통령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의지에 달렸다”며 “우리가 서로 마음을 합치고 힘을 모으면 그 어떤 도전과도 싸워 이길 수 있고 나는 이를 꼭 보여주고 싶으며, 또 보여줄 것”이라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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