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7월 2일

화폐타고 세계여행 | 문명의 충돌, 파편의 역사 … 아프가니스탄 201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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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타고 세계여행 16

 문명의 충돌, 파편의 역사

아프가니스탄

시나씨 알파고(Şinasi Alpago) / <하베르코레> 대표  

서양 역사의 특징이 하나 있다. 유럽 문명과 동양 문명의 충돌이다. 여기서 동양은 한국-중국-일본과 같은 유교 문화권이 아닌 중동을 의미한다. 유럽과 중동의 경쟁은 역사 속에서 오늘날까지 흘러왔고, 시작은 트로이아와 아카이아의 트로이아 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양은 한때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문턱에까지 이르기도 했고, 서양은 아시아의 인도 북부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이렇게 몇 천 년의 세월 동안 동서양의 패권이 옥신각신 세력다툼을 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아픔의 역사를 써내려간 곳도 있다. 바로 양 문명을 연결해 주는 지역에 위치한 유럽의 발칸반도와 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이다. 필자는 이번 호에서 화폐를 통해 문명 충돌의 최전방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서양인이 시작한 동양의 역사

1아프가니

1아프가니

1아프가니부터 5아프가니까지 화폐 앞면에는 고대 인물의 초상화가 새겨진 동전이 있다. 해당 인물은 고대 아프가니스탄에 건국된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왕 에우크라티데스 1세(Eucratides I)다. 혹자는 ‘아프가니스탄에 왕국(?)이나 있어?’라며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배경 설명을 위해서는 알렉산더 대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

고대 그리스 북부의 왕국 마케돈의 아르게아다이 왕조 제26대 군주, 알렉산드로스 3세 메가스(B.C 355~322)는 주변 국가들을 정복한 후 아시아 토벌에 나섰다. 가우가멜라 전투 때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킨 알렉산더 대왕은 거침없이 인도 북부까지 정복하며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그의 사후 명성을 떨쳤던 제국의 분단이 시작되었다.

현재 이란부터 인도까지 지역에는 셀레우코스 제국(Seleucid Empire)이 세워졌고, 이후 제국의 총독들 중 디오도토스 1세(Diodotus I)가 독립을 해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과 주변 지역을 합병하여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을 세웠다. 역사상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세워진 첫 나라가 바로 이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으로 현재 아프가니스탄 북부 대도시 발흐(Balkh)가 수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동양 아프가니스탄 역사는 서양인들이 세운 이 왕국으로부터 시작한다.

20아프가니

20아프가니

아프가니스탄에는 몽골의 칭기즈칸 같은 국부가 있다. 바로 20아프가니 앞면에 실린 묘당의 주인 가즈나 왕조의 마흐무드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술탄’이라는 칭호를 쓴 사람으로 알려진 술탄 마흐무드는 아프가니스탄의 정체성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500아프가니

500아프가니

가즈나 왕조는 1186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아프가니스탄 주변국들을 독실한 무슬림 지역으로 만들었다. 가즈나 왕조 이후 이 지역을 다스린 고르 왕조 역시 친 이슬람 정책에 나서면서 이때 아프가니스탄 곳곳에 이슬람 사원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500아프가니 앞면의 헤라트 모스크도 이 시기에 준공되었다.

1000아프가니

1000아프가니

아프가니스탄에 방문한다면 우즈베크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인구의 9%가 우즈베크 족인데,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에 상당수의 우즈베크 사람들이 살게 되었을까? 고액권 1,000아프가니 앞면에 실린 ‘알리 사당(Shrine of Ali)’, 즉 아프가니스탄 블루모스크의 역사에 답이 있다.

티무르 제국의 후손, 아프가니스탄 속 우즈베크인

가즈나 왕조와 고르 왕조 사이, 이 지역을 다스린 셀축 제국의 마지막 술탄 아흐메드 산자르는 마자르이샤리프에 사원을 하나 지었다. 몽골 제국에 의해 한때 파괴되기도 했지만, 티무르 제국의 북부 아프가니스탄 총독인 후세인 바이카라가 신식의 멋진 건물들을 추가시켜 복원하면서 지금의 블루모스크가 탄생했다. 티무르 제국은 이 지역까지 쳐들어 온 몽골 제국의 힘을 빌린 ‘티무르 베그 구르카니’가 세운 왕국으로, 제국의 중심에 우즈베키스탄이 있었다. 즉, 아프가니스탄 속 우즈베크 족은 티무르 시대에 이 지역에 거주한 우즈베크인들의 후손인 것이다.

100아프가니

100아프가니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아프가니스탄은 역사 속에서 또 한 번 동서양 충돌의 결과로 생겨난 국가다. 100아프가니 앞면에 실린 풀 에 키슈티 모스크(Pul e Khishti Mosque)로 설명을 시작해볼까 한다. 아프가니스탄 왕국의 마지막 국왕 무함마드 자히르 샤는 1960년 말에 이 사원을 지었다. 그러나 곧 1973년 사촌 동생 무함마드 다우드(Mohammed Daoud)가 일으킨 쿠데타로 이탈리아에 망명을 떠난다.

왕국이 무너진 이후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무함마드 다우드에게는 나라의 1차적 외교 문제인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의 갈등을 잘 극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쏟아졌다. 그러나 무함마드 다우드는 균형 정책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고, 결국 1978년 좌파 쿠데타에 의해 생의 막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아프가니스탄 공화국도 사라졌다.

1978년에 출범한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 역시 친소련 국가였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1989년 발생한 내전 당시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 종교원리주의 세력들에게 엄청난 지원을 했다. 1992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외국 군인들이 철수하자 종교원리주의 세력이 신종 국가를 세웠다. 그 다음의 이야기는 독자들이 매스컴에서 익히 접하는 바와 같다. 문명 충돌의 파편에 직격탄을 맞은 아프가니스탄. 그 아픔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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