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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완전한 종전을 향해!’ … 유해발굴 송환, 어디까지 왔나? 201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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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완전한 종전을 향해!’

유해발굴 송환, 어디까지 왔나?

조성훈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부장

지난 2016년 6월 23일 강원 철원군 근남면 잠곡리 무명 941고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장병이 전사자의 부분 유해발굴을 위해 붓으로  흙을 조심스럽게 털어내고 있다. ⓒ연합

지난 2016년 6월 23일 강원 철원군 근남면 잠곡리 무명 941고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장병이 전사자의 부분 유해발굴을 위해 붓으로 흙을 조심스럽게 털어내고 있다. ⓒ연합

올해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5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아직도 전쟁시기 포로와 실종자, 전사자 유해송환 등 인도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지난 6월 12일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공동성명에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협력하기로 하면서, 양국은 전쟁포로와 실종자(MIA, Missing in Action)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즉각 송환하기로 합의하였다.

성명에서 유해송환 항목이 명시된 점은 그동안 미국 정부가 전쟁포로와 실종자에 대해 “여러분은 잊혀지지 않을 것(You are not forgotten)”이라는 슬로건처럼 우선적으로 해결하려는 과제였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미 육군의 복무신조(Soldier’s Creed)에는 “쓰러진 전우를 절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I will never leave a fallen comrade)”라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4년 9월 미국 ‘포로·실종자의 날(National POW/MIA Recogntion Day)’ 연설에서 “미국의 역사는 부름에 응한 애국자들에 의해 빛났다”면서, “그들의 희생이 미국을 더욱 강하게 하고 자유를 지켜왔다”고 찬양했다. 미국 정부는 1978년 ‘포로·실종자의 날’을 제정해 매년 9월 셋째 금요일을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2000년부터 유해발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950년 10월에 전사한 김재권 일병이 68년만에 지난 6월 22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던 날, 구홍모 육군참모차장은 조사에서 “육군은 선배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고귀한 희생정신을 본받아 더 강건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데 신명을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전사자 유해송환, 전쟁유산 청산과 상호신뢰의 초석!

지난 1954년 10월 8일 북측 비무장지대에서 미군 전사자 4명의 유해를 발굴하는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지난 1954년 10월 8일 북측 비무장지대에서 미군 전사자 4명의 유해를 발굴하는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또한 북·미정상회담 이후 신속하게 북한이 미군 유해를 송환한 것처럼, 과거 적대국 사이의 전사자 유해송환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전쟁유산의 청산을 위한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데 초석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확대하기 위해,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적군묘지에 매장되어 있는 중국군 유해 437구를 2014년 3월 28일 중국 정부에 인도한 이후 현재까지 총 589구를 송환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에 남아 있는 우리 군의 유해는 아직까지 돌려받지 못했고, 북한군 유해 689구도 적군묘지에 묻혀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에서는 전쟁 중 국군 전사자 규모에 대해 육군, 해군, 공군, 기타 13만7,899명, 실종자 2만4천 명으로 모두 16만 명이 넘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1953년 9월 말 군 당국에서 파악한 순직 및 실종자는 7만7,033명으로 파악되었으나 일부는 전사한 것으로 통지서를 받고 현충원에 위패를 봉안했다. 여기에는 탈북한 조창호 소위와 같이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들도 포함되어 있다.

유해발굴 대상자 규모는 국립현충원에 모셔진 안장자와 위패봉안자 가운데 한국전쟁 안장자 2만9,202위와 이미 발굴한 1만1,372구를 제외하면 아직도 12만 명 이상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4만 명은 비무장지대(DMZ)나 북한 지역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군은 한국전쟁 실종자 7,800명 가운데 5,300명이 북한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 묻혀 있을 국군 및 유엔군 전사자 유해 교환은 정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1954년 9월부터 10월말까지 한국군 2,223구와 미군 1,868구, 북한군과 중공군 1만3,528구가 교환된 이후 중단되었다. 이후 유엔군 측은 매년 군사정전위원회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포로들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동시에 사망자의 유해송환을 거듭 요청했다. 1985년 8월 하순 찰스 혼(Charles F. Horne III)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는 서한으로 실종 유엔군의 생사확인과 사망자의 유해송환을 요청했다.

그 결과 미군 유해는 1990년 5월 하순 5구가 인도된 후 1996년부터 2005년까지 33차례에 걸쳐 모두 420여 구를 송환받았다. 그러나 2005년 5월 24일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로 북한 지역에서 미군 유해발굴 공동작업은 중단되었다.

그동안 남한 지역에서 전사자 유해발굴은 전쟁시기 주요 전투지에 대한 사전 조사와 매장지에 대한 제보 등을 통해 유해를 발굴하고 감식해서 신원확인이 끝나면 안장을 하는 순으로 이어진다. 한국전쟁 당시 전선이 남으로는 낙동강에서 북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르러 발굴 지역이 광범위해 참전 용사 및 지역 주민의 제보가 중요하다. 그 내용은 전쟁 당시 전사자를 직접 매장 혹은 매장 사실을 목격했거나 전해들은 사실, 휴전 후 군 복무 중 전사자 유해 매장 관련 사실, 각종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유해·유품 등이다.

발굴 지역이 결정되면 발굴팀은 1개 중대급 규모 100여 명의 병력을 지원받아 짧게는 2주, 길게는 2개월 정도를 발굴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군 외에도 중국군과 북한군의 유해가 발견되기도 한다. 유해는 현충원 중앙감식소로 옮겨져 나이, 사망 원인, 성별, 유전자 등을 확인한다.

전사자 유해, 발굴도 어렵지만 신원확인 더 어렵다

지난 2016년 6월 22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감식 전문가들이 한국전쟁 주요 격전지에서 발굴된 유해 감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

지난 2016년 6월 22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감식 전문가들이 한국전쟁 주요 격전지에서 발굴된 유해 감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

그런데 실제로는 유해발굴도 어렵지만 이후 신원확인이 더욱 어렵다. 한국전쟁 50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2000년부터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발굴된 1만1,372구 가운데 128명만이 신원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170곳을 조사해서 유해 1구의 신원을 확인하는 셈이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에서 참전 미군 유해 감식을 전담하고 있는 제니 진 박사도 신원확인 작업이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듯 모든 가능성과 변수를 조합해서 확인하고 있다”고 말한 것에서 그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매장지에서 발굴된 인식표, 가족사진, 수통에 새긴 인명 등의 유품이 있는 경우는 신원확인이 가능하지만, 군화, 군복, 만년필 등 유물만으로는 신원확인이 어렵다. 그동안 발굴과정에서 20만 건 이상의 유류품이 수집되었지만, 적에게 잡혔을 때 신원노출을 우려해 군번이 적힌 인식표를 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신원확인을 위해 법의학과 법치의학, 체질인류학을 활용하고 유전자 분석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DNA 검사로 확인하고 있다. 실제로 유골 가운데 넓적다리뼈나 종아리뼈, 팔뼈에서 DNA 샘플을 채취하면 95∼100% 가까이 신원을 알아낼 수 있다. 뼈 안에 단백질이 많이 남아 있으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신원확인의 성공 확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DNA 시료채취가 가능한 유해는 ‘유가족 찾기 사업’에 접수한 유가족 혈액을 통해 신원을 확인한다. 2003년부터 유가족에 대한 시료채취가 본격화되어 현재 4만1천여 건에 이르지만, 신원이 확인된 128건 가운데 순수 유전자 감식을 통해 확인된 경우는 17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앞서 언급한 고 김재권 일병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을 위한 공병작전을 지원하다가 1950년 10월 15일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유해는 미처 수습되지 못한 채 가족에게 전사통지서만 전달되었다가, 2008년 5월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에서 발굴됐다. 하지만 발굴 당시 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특별한 유품이 없었고, 유가족들의 유전자도 확보되어 있지 않아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는 아들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아버지와 함께 모시기 위해 2016년 11월 부부 합동위패 봉안을 신청하면서 이뤄졌다. 유전자 시료채취에 참여하게 된 결과 유전자를 통해 부자관계가 확인되었던 것이다.

2005년 이후 13년간 중단되었던 미군 유해송환 작업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159구가 송환되며 재개되었다. 전쟁으로 인한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북한의 유해발굴 및 송환이 1회성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 송환을 포함해도 지금까지 송환된 미군 유해는 모두 600여 구에 불과해 아직도 4천 구 이상이 북한에 남아 있다. 국군 유해는 3만 구 이상이 존재한다. 미군의 경우에는 운산, 장진호 등 주요 전투지는 물론,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한 포로들의 유해발굴을 위해 포로수용소 매장지까지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미 국방부 포로·실종확인국은 수용 중 사망한 포로의 매장지를 찾으려고 생존자로부터 증언을 청취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협력 긴요 DMZ 유해공동발굴 실현 가능성 높아

우리 정부가 중국군 유해를 이미 수차례 걸쳐서 송환했던 것처럼, 남북한 사이에도 신뢰 조성을 위해 파주시 적군묘지에 안장돼 있는 북한군 유해를 우선 송환하는 방안도 있다. 하지만 과거 송환을 제안했는데 북측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었던 일이 있다. 따라서 우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6일 언급한 ‘비무장지대(DMZ) 유해공동발굴’이 현 시점에서는 보다 실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 방안은 2007년 11월 국방장관회담 때 남북 간 합의 사항이기도 하다.

2006년 3월 육군본부는 비무장지대와 북한 지역의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계획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그해 5월 중순 육군이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 감시초소 보급로 공사 과정에서 국군 전사자 유해 1구를 발견했을 뿐이다. 그만큼 북한 측의 협력이 필요하다. 치열한 고지쟁탈전 속에 비무장지대에서 쓰러진 국군 유해 1만 구에 대한 발굴을 시작으로 유해수습과 송환이 본격화되기를 기대한다. 군 당국은 이미 이 지역 유해 소재지에 대한 관련 전사 자료를 분석하고 증언 청취를 통해 자료를 축적하며 대비하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에 의한 판문점 선언에 이어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확인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화해가 진전되어, 이번 기회에 전쟁시기 국군과 유엔군 실종자, 전사자 문제가 더 이상 정치적 혹은 군사적인 이유로 미루거나 중단되지 말고 해결되어야 한다. 울포위츠(Paul Wolfowitz) 전 미 국방부 차관이 200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 50주년을 맞이해 “실종된 모든 미군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국전쟁은 진실로 끝나지 않았다”라고 강조한 점은 남북한 사이에도 유효하다.

끝으로 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확대되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는 향후 의학기술 발전을 대비해 별도의 유해보관소에 보관하고 있다. 실제로 1954년 하반기에 송환된 미군 유해로 하와이 호놀룰루의 전쟁 기념묘지에 묻힌 전사자에 대한 재조사를 통해 66명의 신원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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