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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커튼콜 | 냉면발처럼 엉긴 분단과 이산 … 관객과 함께 휘휘 젓다 201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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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커튼콜 | 연극 <‘침향외전’ 냉면>

냉면발처럼 엉긴 분단과 이산

관객과 함께 휘휘 젓다

조두림 / 본지기자

ⓒ K아트플래닛

연극 <냉면>의 한 장면 ⓒ K아트플래닛

2018년 여름, 대학로에서 DIY(Do It Yourself) 방식으로 관객이 장면들을 머릿속에 조립해 완성해 가는 연극을 만났다. 제목은 <냉면>. 일상의 삼시세끼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연극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무대에서 직접 만난 <냉면>은 분단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다룬 것은 맞았지만 결코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70여 년이 흘렀다 해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전쟁과 분단이 휩쓸고 간 개인의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생쥐나 비둘기는 쉽게 넘지만 사람은 못 넘는 이것

지난 7월 18일부터 7월 22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한국전쟁과 분단, 그 속의 개인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냉면>이 공연되었다. <냉면>의 부제는 ‘침향외전’으로, 작가가 10년 전 초연한 분단과 이산, 상흔과 재회를 이산가족 이모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 작품 <침향>의 연장선에서 새롭게 제작된 것이다. 또한 <냉면>은 올해로 3회를 맞은 2016년 블랙리스트 사태를 계기로 출범한 연극인들의 축제 ‘권리장전’의 2018년 두 번째 참가작이자 극작가 김명화가 창단한 ‘극단 난희’의 창단작이다. 올해 권리장전은 ‘2018 분단국가’라는 주제로 분단된 현실을 살아온 우리들의 다양한 이야기 11편을 7~9월까지 연우소극장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객석을 가득 메운 소극장의 조명이 꺼지고, 연극의 막이 오른다. 이내 실크햇(silk hat)을 쓴 한 남성이 등장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관객들의 시선은 곧 그 남성의 말로 옮겨가며 귀를 기울인다. 남성의 손에는 실크햇에서 꺼낸 쪽지 한 장이 들려있고 “생쥐나 비둘기는 쉽게 넘어 다니지만 사람은 쉽게 넘어 다니지 못하는 끔찍한 이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분단’이다. 호기심이 선점했던 관객들의 마음은 분단이라는 주제에 곧 먹먹해진다.

곧이어 배우들은 다다이스트(dadaist)의 창작 방식처럼 의도나 논리를 떠나 ‘분단’과 ‘통일’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것들을 관객과 함께 모색해 나간다. 관객들은 직접 쪽지에 단어를 적으며 실체가 불분명한 분단의 파편을 맞춰간다.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와 그에 얽힌 이산가족의 개인사 등 다소 무거운 키워드들이 언급된다. 그때 갑자기 ‘냉면’이라는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단어가 등장하더니 급기야 그 다음 막의 이야기를 리드해간다.

물냉면, 비빔냉면만 먹고 산 것이 억울할 정도로 다양한 냉면이 등장하며 배우들의 가장 맛있는 냉면에 대한 이야기가 배틀 형식으로 진행된다. 참고로 이 연극에서는 ‘작가(서영화 분)’ 역을 제외한 모든 배우들이 1인 다역을 맡는데, 배우들의 변화무쌍한 연기는 극에 활기를 더했다. 조선의 왕, 김구, 오늘날까지 ‘냉면’ 하나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은 이야기가 배우들의 맛깔나는 연기를 통해 종횡무진 무대를 누빈다.

한편 극의 분위기는 비무장지대(DMZ) 답사기 이야기로 옮겨가며 전환된다. 작가는 오감으로 느껴지는 분단을 실감하며 분단의 상처를 보다 생생하게 상상한다. 손에 잡힐 듯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갈 수 없다. 호흡조차 마음껏 할 수 없는 습하고 답답한 땅굴은 적개심을 품은 침입을 위한 공간이다. 작가의 생각은 곧 평생을 월북한 남편을 기다리다 외롭게 투병으로 굴곡진 생을 마감한 이모에 가닿는다. 그리고는 다 알 수는 없지만, 한국의 현대사에 직격탄을 맞은 이모의 고통을 깊이 있게 성찰하고 가늠해본다.

신기루. 무대의 칠판에 신기루라는 단어가 적히고 분단으로 헤어진 이모와 월북한 이모부가 등장한다. 행복감을 감출 수 없는 미소와 애정이 둘 사이에 담겨있다. 보통의 연인들에게는 평범한 식사가 이 둘에게는 상상으로만 그려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현실의 삶 속 둘 사이에는 분단이 있다. 분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민초들은 우선 그 이산가족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인 맛있는 ‘냉면’을 대접하며 한(恨)이 담긴 구성진 판소리 한 가락으로 위로를 전한다.

연극 <냉면>의 가장 큰 특징은 다다이즘 방식을 차용해 창작 과정에 초점을 맞춰 관객과 함께 완성해 가는 연극이라는 것이다. 다다이즘(dadaism)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의 살육과 파괴에 대한 증오와 냉소를 기본정신으로 예술 형식의 파괴와 부정을 주장해 일관된 양식이 없다.

작품 <냉면>과정에 대한 이야기

지난 7월 19일 <냉면> 관람 이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관객들은 다다이즘이라는 형식의 낯설음도 있었지만, 연출을 맡은 베테랑 극작가 김명화의 평소 스타일이 웰메이드 완제품을 무대에 올렸기에 다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김명화 작가는 “이 작품은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며 “최근 우리 사회 패러다임이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이동 중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다 문득 그것이 한 작품의 미학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돌진해 보았다”고 밝혔다.

또한 한 젊은 관람객은 자신을 연극에서도 언급된 ‘제3세대(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으며 분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세대)’로 소개하며 분단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산가족이라는 우리네 이모 이야기로 풀어내 공감하기 쉬웠다고 말했다. 이에 김명화 작가는 “분단이라는 주제, 그 자체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분단 때문에 영향을 받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전했다.

연극은 일관성보다는 파편화된 장면들이 펼쳐졌기에 관객들은 시종일관 아이디어를 짜 맞춰야 했지만, 상상력과 참여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즐거운 피로감을 선사했다. 아울러 청년세대에 친근하게 다가와 울림을 주는 분단 이야기를 전해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다만 <냉면>의 제목이 ‘제3세대’ 제자의 “우리는 분단보다는 냉면에 더 관심이 있어요”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것처럼 청년세대는 자칫 분단에 무관심한 세대로 비춰져 기성세대로부터 우려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낙관을 해보는 것은 엉겨 붙은 냉면발처럼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네 이야기는 모두 엉겨있다는 것이다. 제3세대든, 앞으로 올 제4세대든 분단국가에서 나고, 자라고, 함께 사는 우리는 모두 이산가족, 군대 등 어떤 식으로든 분단의 파편을 맞고 있으며 나름의 분단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

마침내 2018년, 평화 무드가 조성되고 종전 논의가 언급되고 있다. 이제는 실타래처럼 꽁꽁 얽혀있는 분단의 혼란을 휘휘 저어먹는 냉면발처럼 시원하게 풀어낼 바로 그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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