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8월 2일

화폐타고 세계여행 | 열대바람 맞고 핀 민주주의 야생화, 필리핀 201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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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폐타고 세계여행 17

열대바람 맞고 핀

민주주의 야생화

필리핀

시나씨 알파고(Şinasi Alpago) / <하베르코레> 대표  

지난 6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방한으로 아세안 국가 중 한국과 수교를 맺은 첫 번째 국가이자 약 70년간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필리핀에 대한 관심이 다시 증폭되었다. 마약과의 유혈전을 두고 한 ‘초법적 처형’ 등 논란의 여지가 많은 발언을 이어온 두테르테 대통령은 비록 최근 신성모독 발언으로 2016년 취임 이후 45%라는 최저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이전까지는 꾸준히 5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필리핀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필자는 이 성공(?)의 비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지만 아직 명확한 답은 찾지 못했다. 대신 필리핀이 한국과 같은 시기 ‘군사정권’을 겪었지만 현재 정치·경제적으로 다른 위치에 서 있으며, 그 시기가 지금까지 뿌리 뽑기 힘든 적폐의 시발점으로 남았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국제사회에는 주로 문제적인 돌출 발언으로 각인되었지만, 검사 출신인 두테르테 대통령의 당선과 두터운 국내적 지지율 이면에는 이유 있는 필리핀 현대정치사가 흐르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화폐에 새겨진 필리핀 정치를 탐색해볼까 한다.

민주주의와 독재 … 엎치락뒤치락 필리핀 현대정치사

필리핀 200페소

필리핀 200페소

두테르테가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의 필리핀의 현대정치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필리핀 200페소 앞면에 초상화가 실려 있는 제9대 대통령 디오스다도 마카파갈(Diosdado Macapagal)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마카파갈 전 대통령은 필리핀 역사에서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진 인물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는 냉전 시기에 부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 ‘매수할 수 없는 자(The Incorruptible)’라는 별칭으로 유명해졌고, 마르코스 독재정권이 수립하기 전 마지막 민주주의적 대통령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런 마카파갈 대통령이 1965년 대선 때 국민당 후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에 패배하면서 필리핀의 민주주의는 약 20년 동안 잠들게 되었다.

마르코스의 독재정권이 어떻게 막을 내렸는지는 500페소에 단서가 있다. 2010년 당선된 베니그노 아키노 3세(Benigno Aquino III) 혹은 애칭인 ‘노이노이(Noynoy)’ 아키노가 정권을 잡자마자 일차적으로 실행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신권 발행이다. 2010년에 나온 신권은 구권에 비해 디자인이 훨씬 화려해졌다. 하지만 구권과 신권의 차이점은 세련된 디자인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구권 500페소 앞면에 있었던 자신의 부친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2세 초상화 옆에 모친 코라손 아키노의 사진이 추가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마도 일부 독자들은 일국의 대통령이 친부모를 화폐에 새겨 넣었다는 사실에 다소 당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리핀 역사에서 아키노 가문은 큰 공을 세운 가족이었다.

필리핀 500페소의 구권. 1987년부터 발행돼 약 30년 가까지 통용됐으며 2015년 폐기되었다.

필리핀 500페소의 구권. 1987년부터 발행돼 약 30년 가까지 통용됐으며 2015년 폐기되었다.

베니그노 아키노 1세는 필리핀의 독립을 위해 열심을 다했던 정치인으로 필리핀 공화국 초기에는 농림부 장관, 국회의장과 부통령직도 맡았던 역사적 인물이다. 그의 아들 아키노 2세(니노이 아키노)는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저항했던 야권 지도자로 명성을 떨쳤지만 그의 정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1980년대 미국으로 망명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친분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83년 고국으로 귀국할 당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암살을 당했다. 이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공항의 이름은 이후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으로 변경됐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아키노 2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는 남편의 죽음 이후 1986년 야당 단일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패배하였다. 그러나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시위로 21년간 장기집권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권이 무너졌고, 이를 계기로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코라손 아키노는 필리핀의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애를 쓴 동시에 마르코스 시대에 후퇴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게다가 몇 번의 쿠데타 위협을 극복해냈다. 1987년대 극우파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때, 아들인 노이노이 아키노는 어머니를 보호하다가 실탄 5발을 맞고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필리핀의 민주주의를 재구축하는 데 있어 크나큰 희생을 치렀던 아키노 부부의 사진이 500페소에 실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2010년부터 통용된 필리핀 500페소 신권

2010년부터 통용된 필리핀 500페소 신권

필리핀 정치난이 본격적으로 재발발한 시점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필리핀의 분위기와 2017년 한국의 분위기는 비슷한 면이 있다.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프 에스트라다(Joseph Estrada)의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상원은 탄핵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처에서 격렬한 시위가 발생했고, 이 시위에 참여했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Gloria Macapagal Arroyo) 부통령도 주목을 받았다. 이내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사임하자 곧바로 글로리아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물려받았다. 이후 2004년 대선에서 당선된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2010년까지 총 9년 동안 집권하며 필리핀 정치사에서 두 번째로 오랜 기간 집권한 정치인이 되었다. 참고로 글로리아 대통령은 앞서 소개한 200페소에 실린 초상화의 주인공 마카파갈 전 대통령의 친딸이다.

누적된 정치적 피로감 강성 두테르테는 희망 될까?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던 글로리아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 경제학과 교수 생활을 하며 강연과 저술로 삶을 보냈다. 대통령직을 물려받았을 때에는 경제학자로서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려고 했으나 그녀의 남편을 둘러싼 온갖 의혹들 때문에 정국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수차례 쿠데타 설이 정치판을 떠돌았을 뿐만 아니라 거의 매년 의회에 탄핵안이 제출됐다. 2010년에 들어선 노이노이 정부 때 제일 큰 화제는 구속과 석방을 반복한 글로리아 대통령의 비리 재판이었다.

1998년 취임한 에스트라다 대통령 시기부터 매일매일 터지는 비리 문제로 필리핀 국민들은 지친 것임에 틀림없다. 아직 흐릿한 것은 누적된 정치적 피로감 속에서 탄생한 강성(強性) 대통령 두테르테가 임기 마지막까지 자국민의 높은 지지율에 보답하는 희망의 정치사를 써내려갈 지다. 필리핀의 살아 움직이는 현대정치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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