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9월 3일

브라운관 속 북한 직업 이야기 | 투철한 사상 위에 예술성을 더하라! 2018년 9월호

print

브라운관 속 북한 직업 이야기7 <푸른 주단 우에서> | 집단체조 창작자

투철한 사상 위에

예술성을 더하라!

전영선 /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20180830_153718

20180830_153739

2018년 7월, 북한이 오는 ‘9·9절’ 공화국 창건 70년을 기념하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번 공연은 2013년 <아리랑> 이후 5년 만에 재개되는 것으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은 카드섹션인 배경대미술과 매스게임을 결합한 종합공연 양식으로 여러모로 화제가 되는 퍼포먼스다. 10만명의 출연 인원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할 만큼 규모가 엄청나며, 대규모의 일사불란한 동작을 사람이 연출한다는 사실로도 주목을 받았다. 북한의 외화벌이 상징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해마다 열렸지만, 어린이를 비롯한 출연자들이 견디기 힘든 고된 훈련을 반복하면서 탈진과 사망에 이르는 등 국제사회에서 인권 침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갈등의 시작, ‘집체 허리잡고 앞구르기

<푸른 주단 우에서>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소재로 한 북한 영화다. 집단체조는 카드섹션인 배경대미술과 집단체조의 결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각 부분의 연출은 총괄책장 책임 아래 장면 책임자가 구성한다. <푸른 주단 우에서>는 장면 연출에 태양상을 반영하는 등 예술성과 사상성으로 무장한 ‘어린이 장’ 책임자 ‘오문규’를 통해 모범적인 집단체조 창작자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오문규는 체육대학을 졸업하고 집체창작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창작 성원이다. <아리랑> 공연을 앞두고 집단체조 창작단의 부단장으로 임명된 ‘지선희’와는 어릴 적 집단체조 공연에서 짝으로 이어진 사이였다. 하지만 지선희는 오문규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벌이는 집단체조 공연이 있던 날 오문규가 지각을 하여 지선희의 속을 태운 것이다. 이후로 이유도 말하지 않고 제 할 일만 하는 오문규에게 지선희는 ‘고집불통 당나귀’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번에 함께 일하면서도 선희는 문규가 제 고집만 부릴까봐 걱정이 되었다.

한편 오문규는 자신이 집단체조 창작 책임을 맡은 어린이 장에서 ‘집체 허리잡고 앞구르기’ 동작을 어떻게 완성시킬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이 동작은 여러 명의 어린이들이 한 손으로는 동무의 허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앞구르기를 해야 하는 고난도 기술이었다. 동작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빈번하게 실수했고 어린이 장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도미노처럼 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전체가 삐그덕거렸다. 공연을 얼마 남기지 않고서 한 예행연습에서조차도 ‘집체 허리잡고 앞구르기’ 동작에서 많은 실수가 나왔다.

부단장인 지선희는 이 동작이 어린이들에게 너무 어렵다며 오문규에게 동작을 빼라고 하였다. 문제 해결을 고민하던 오문규는 어린이들을 데리고 학생소년궁전으로 갔다. 학생소년궁전에서 오문규는 태양계를 보여주면서 지금 하고 있는 동작이 ‘아버지 장군’인 태양을 중심으로 소년들이 아기별, 위성이 돌아가는 것을 상징하는 동작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선희는 어려운 동작을 고집하는 문규가 이해되지 않았다. 더욱이 학생들을 학생소년궁전으로 데려갔다는 말을 듣고는 창작가가 해야 할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비판하며 기어이 ‘집체 허리잡고 앞구르기’ 동작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집단체조창작단의 창작 성원이자 두 사람의 옛 선생님이었던 장 책임자가 나섰다. 즉 문규가 ‘집체 허리잡고 앞구르기 동작’을 고집하는 이유는 이 동작이 태양을 중심으로 위성들이 돌아가듯이 어린이들이 태양인 수령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형상했기 때문이라고 선희에게 말해주었다.

이것은 태양을 받드는 해바라기의 형상화

이 말을 들은 선희는 ‘고집불통 당나귀’ 문규에 대한 오해를 풀고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그리고는 더 많은 인원으로 형상해서 장면을 풍부하게 연출하라고 아이디어를 주는 동시에 오문규와 함께 교예단을 찾아가 동작 연출에 대한 조언을 듣고 동작을 완성한다. 마침내 막이 오른 <아리랑> 공연에서 아이들이 집체 허리잡고 앞구르기 동작을 무난히 연출하는 것을 본 문규와 선희는 아이들이 해바라기처럼 태양을 받드는 모습에 기뻐한다.

북한의 집단체조에서는 예술성과 함께 사상성을 강조하면서 관람자들에게 호소하는 내용을 담아 당의 노선과 정책을 알리고 관철하게 하는 것을 창작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푸른 주단 우에서> 집단체조 창작자인 오문규에게 ‘집체 허리잡고 앞구르기’는 태양(장군님)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위성을 형상화한 것이므로 사람들의 질책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린이들이 소화할 수 없는 동작을 고수한다며 비난을 퍼붓던 선희도 이 동작이 장군님을 위한 것이라는 문규의 속내를 알고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돕고 나선다. 나아가 자신이 국제 체조선수로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집체공연장을 찾아 위로해준 장군님에게 받은 감동을 기억하고 그 장군님을 위한 공연인 만큼 최선을 다한다. 문규와 선희의 모습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북한의 집단체조 창작자에게는 투철한 사상성에서 얻은 영감과 예술성이 필수 덕목일 것이다.

한편 북한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은 집단체조 중심의 공연에다 1955년 카드섹션인 배경대미술을 도입하면서 입체적인 종합예술이 되었다. 아울러 집단체조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1971년 11월부터 집단체조창작단을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 규모는 점점 커졌는데 1만명이 참여한 1958년 8월 광복 13주년 기념 공연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이후 1960년대에 2만명 수준으로, 1980년대는 5만명 수준으로 열렸다.

이후 2000년 <백전백승의 조선노동당>을 공연하면서 비로소 10만명으로 확대되었는데 규모면에서 이전의 작품보다 훨씬 커졌다는 점뿐만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집단체조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전에도 대형 매스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집단체조와 예술공연(무용·교예)의 배합’, ‘대형 환등기와 영사기를 이용한 영화 장면의 편성’, ‘대형 장치물에 의한 신속한 장면 전환’, ‘탐조등 및 음향효과 활용한 연출’ 등의 요소로 이전의 집단체조와는 분명히 구분된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이라는 장르 명칭도 이때부터 새롭게 정립되었다.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