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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 속 북한 | 정중앙에 그가 있다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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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 속 북한7

정중앙에

그가 있다

변영욱 /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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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신문에서 최고지도자의 이름과 얼굴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름은 본문 활자보다 크거나 볼드체(굵은 글씨)로 처리된다.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도 긴 데다 활자체도 본문과 달라 김 위원장의 이름은 지면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김 위원장의 사진이 실리는 빈도도 아주 높다. 6개면에 불과한 하루치 신문에 김 위원장 사진은 한꺼번에 10장 이상씩 실리기도 한다. 한국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 당시 신문 1면 또는 2면에 거의 매일 대통령의 얼굴이 실리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대통령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 날이 점점 늘어난다.

신문의 지면은 제한적이라, 최고 정치지도자의 얼굴이 신문에 많이 실린다면 누군가의 얼굴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북한 언론에서 인민들의 일상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북한 신문에 실리는 최고지도자의 사진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형식의 사진인 ‘대규모 기념사진’이 있다. 현지지도가 끝나면 최고지도자는 지역이나 군부대의 구성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 1호 행사를 전담하는 팀이 트럭에 싣고 다니는 것으로 추정되는 철제 계단을 5단~10단 정도로 설치하면 수백~수천명의 인민들이 촬영을 위해 계단에 오른다. 맨 앞줄에는 주로 간부들이 서며 정중앙이 김 위원장의 자리다.

기념사진, 북한판 유토피아역사 참여한 증명서?

‘유토피아’를 건설 중인 북한에서 기념사진은 ‘역사 만들기’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을 위한 증명서쯤 될 것이다. 최고지도자와 함께 찍는 기념사진은 큰 의미의 ‘가족사진’으로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우리는 왜 가족사진을 찍을까? 가족사진에 얼굴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것은 소속을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산 등을 분배할 때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래서 북한은 기념사진 촬영이 끝나면 당사자들에게 사진을 한장씩 출력해서 선물로 주는 것으로 보인다.

기념사진은 김일성 시대에 시작됐지만 이를 대규모 집체 사진 형식으로 개조한 것은 김정일이었다. 그리고 김정은은 더욱 많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 위원장은 권력을 잡은 직후 전국을 돌며 군인, 인민들과 함께 대규모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약 15개월(2012년 1월∼2013년 3월) 간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을 전수조사해 본 결과 약 12만4천명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해당 사진을 인화해 각 가정에 배달했다고 가정해보자. 북한 인구를 2,500만명으로 보고 1가구의 구성원을 4인이라고 본다면 대략 100가구 중 2가구에는 김 위원장의 사진이 걸려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흔적을 남기는 방식은 초기 권력기반을 다지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을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 북한 신문에 실렸던 ‘1호 사진’ 중 1/3이 기념사진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경우 정권을 잡은 초창기에는 이전과 비슷한 빈도로 기념사진이 나왔다가 지금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빈도는 줄었지만 참가 인원의 숫자가 더욱 늘어난 것이 김정은 시대 기념사진의 특징이다. 수백~수천명이 등장하는 기념사진이 기본이 되었고 한 장의 사진에 1만명 이상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등장인물이 늘어나 사진을 아무리 신문에 크게 인쇄한다고 하더라도 개개인의 얼굴이 신문의 활자 크기보다 작아져서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참가 인원 점점 늘어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수백명이 함께 등장하는 사진의 경우에는 사진 속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장의 사진에 수천명이 들어가면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신문의 활자 크기는 그 시대 사람들이 눈으로 읽을 수 있는 최소한의 크기인데 활자 크기보다 사람의 얼굴이 작아진다면 사진 속에서 참가자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북한에서 사진은 정치에 활용된다. ‘사진 정치’라는 외부의 평가뿐만 아니라 북한 스스로 김정은이 등장하는 사진을 ‘사랑의 기념사진’이라는 표현을 통해 사진이 지도자와 인민대중을 연결하는 인전대(引傳帶) 역할을 하고 있다고 암시한다.

그런데 등장했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그 기념사진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사진에서 가운데 서 있는 김정은 이외에 누구의 존재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면 사진의 가치는 떨어지고 등장인물들과 가족들의 피로감은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북한 영화 중 건설현장에 투입된 군인들이 현장을 찾아온 최고지도자와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는 내용의 <소원>이라는 영화가 있다. 앞으로도 김 위원장과의 기념사진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계속 ‘소원’의 대상이나 ‘선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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