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9월 3일

통일 커튼콜 | 분단의 상흔 … 새장 안 민달팽이를 보다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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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커튼콜 | 연극 <달팽이 하우스>

분단의 상흔

새장 안 민달팽이를 보다

조두림 / 본지기자

ⓒ권리장전2018_분단국가 전진아

ⓒ권리장전2018_분단국가 전진아

무더운 여름날 대학로의 한 소극장. 추적추적 내리는 비, 한국어가 간간이 섞인 일본 하우스 뮤직과 일본식 식당(만둣집)을 비추는 아스라한 조명이 관객들을 맞이한다. 초저녁 비를 머금은 이자카야 무대는 오감을 자극하고, 입구의 차양과 풍경, 객석 벽면의 일본 술 광고 포스터 등 디테일을 살린 무대 연출은 자연스레 일본이라는 공간적 배경으로 스며들게 한다. 일본 그리고 달팽이 하우스, 문득 연극의 제목과 공간 사이의 관계가 궁금해진다.

지난 8월 1~5일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일본 내 조총련계 2세 한국인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달팽이 하우스>가 공연되었다. 부제는 ‘우리만 모르는 우리의 이야기’로, 한민족 분단의 아픔을 똑같이 겪었지만 이산가족이나 북한이탈주민만큼 잘 알지는 못하는 또 다른 ‘우리’, 재일동포의 분단 이야기를 그렸다.

<달팽이 하우스>는 지난 2016년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계기로 출범한, 올해로 3회를 맞은 연극인들의 축제 ‘권리장전’의 2018년 네 번째 참가작이다. 프로젝트 통이 제작하고 배우 공하성이 연출을 맡았다. 올해 권리장전은 ‘2018 분단국가’라는 주제로 분단된 현실을 살아온 우리들의 다양한 이야기 11편을 7~9월까지 연우소극장 무대에 올린다.

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우리, 재일동포의 삶 그려

ⓒ권리장전2018_분단국가 전진아

ⓒ권리장전2018_분단국가 전진아

일본 교토에서 만두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재일동포 2세 ‘준호’는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식당 구석구석을 청결하게 닦는 한편 문이 열려 있는 의문의 빈 새장도 정성스레 닦는다. 이내 손님을 맞는 풍경소리에 반갑게 인사하지만 돌아온 것은 빚 독촉을 하러 온 ‘후미오’의 고함과 행패다. 한때 ‘성환’으로 불렸던 후미오는 준호와 조총련계 학교를 함께 다닌 학창시절 친구였다.

하지만 ‘국적 문제’로 유도 국가대표의 꿈을 저버려야 할 위기에 봉착한 성환은 일본 국적과 이름을 선택하고 일본 학교로 전학을 간다. 주변 친구들은 ‘배신자’라고 야유를 퍼부었지만, 준호만큼은 성환을 응원하고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 나도 사람, 너도 사람”이라며 달라질 것은 없을 거라 말한다. 그러나 수년이 흐른 후 만난 둘의 관계는 ‘돈 문제’로 위협과 애걸복걸이 오가는 껄끄러운 사이가 된다.

준호의 만두가게를 찾은 두 번째 인물은 여동생 ‘준경’이다. 오랜만에 오빠의 가게를 찾아 이리저리 둘러보던 준경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비어있는 새장이다. 심지어 문이 열려있다. 마치 새가 날아갈 수 있도록 누군가 일부러 열어놓은 모양새를 의아해하며 준경은 새의 행방을 묻는다. 그리고 ‘자유’를 찾아 갇힌 공간인 새장을 떠난 새의 이야기는 극의 메타포로 작용한다.

국적의 선택과 정체성의 혼란 집이 없다

ⓒ권리장전2018_분단국가 전진아

ⓒ권리장전2018_분단국가 전진아

곧 “이제는 너희 인생을 살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신 조총련 간부 출신 부모님의 말을 시작으로 준호와 준경은 수년간 묵혀온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 두 남매에게는 10년 전 귀국사업으로 북한으로 떠났다가 연락이 끊긴 큰오빠가 한명 있었다. 그때 큰형과 북한으로 같이 떠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살아온 준호는 형이 일본에 돌아올지도 모른다며 어느 국적도 선택하지 못한다. 망설이는 준호에게 준경은 “오빠가 노력한 것은 누구나 다 안다”라며 “이제는 오빠 인생을 살라”고 거듭 설득한다.

ⓒ권리장전2018_분단국가 전진아

ⓒ권리장전2018_분단국가 전진아

치료 가능한 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우파 의사로부터 때맞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조센징’이라는 꼬리표에 사회적 진출이 제한되어 무기력감을 느껴온 준경은 결국 한국 국적을 택했다는 사실을 준호에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곧 한국으로 떠난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에둘러 거절의 의사를 밝힌 준호는 동생이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어쩐지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수십년간 참아온 억압과 차별 속 내린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오빠에게 준경도 “한국 사람이 내 나라에 가겠다는데 그게 무슨 문제냐”며 서러움을 털어놓는다. 준경은 한국을 모국으로 선택했다.

한편 앞서 떠난 후미오가 만두가게로 돌아오면서 조총련 학교에 함께 다닌 세 사람이 수년 만에 한자리에서 조우하게 된다. 준경은 일본 국적을 선택한 후 돈 문제로 자신들을 압박해온 후미오에게 앙금을 품고 상대하지 않으려 한다. 머쓱해진 후미오는 빈 새장으로 화제를 돌린다. 비어있는 줄 알았던 새장 안에는 ‘민달팽이’ 한마리가 있었다. “일반 달팽이는 등껍질이 ‘집’이 되어 본체를 보호해주지만, 등껍질이 없는 민달팽이는 ‘집’이 없다”는 준경의 말은 극의 또 다른 메타포를 형성한다.

‘집이 없는’ 민달팽이를 매개로 재일동포 2세 3인의 정체성 이야기가 펼쳐진다. 분단 이후 남북한과 일본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조총련계 학교를 다녔던 학창시절을 회고하는 세사람의 입에서는 ‘조센징’이라는 차별과 물리적 폭력에 비일비재하게 노출되었던 과거가 폭로된다.

ⓒ권리장전2018_분단국가 전진아

ⓒ권리장전2018_분단국가 전진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사람이 고군분투하며 그 삶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 싸워주고 위로해주는 ‘서로’라는 이름의 공동체였다. 어쩌면 그들이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감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국적 선택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재일동포 2세 세사람은 각자의 속사정을 피력하며 입장정리에 들어간다. 하지만 극은 현재 인물 간 감정적 해후를 그려내는 대신, 과거의 좋았던 한때로 막을 내리며 해결되지 않은 갈등을 암시한다.

대학 시절 해외입양인 지원 법인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5살 남짓한 시기에 네덜란드로 입양 간 40대 초반 여성(S)의 수행통역을 맡았었다. 한국을 방문한 S는 20대 후반부터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오갔다고 말했다. 당시 네덜란드 입양인 S와 친어머니를 3박4일간 수행통역하며 의도치 않게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됐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S의 모국과 친부모에 대한 강한 열망이었다.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모르고, 한국 국적이 아니며 거의 모든 인생을 해외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S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했다.

ⓒ권리장전2018_분단국가 전진아

ⓒ권리장전2018_분단국가 전진아

그 인연을 계기로 반년 후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을 때 S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S는 본인과 같은 네덜란드 입양인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고 한국인의 모습을 지닌 두 자녀를 두고 있었다. 집은 한국을 상징하는 소품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네덜란드인들과 교제도 활발했지만 S의 주 지지기반이 되어주는 공동체는 네덜란드 한국인 입양 커뮤니티였다. S는 모국, 한국과 관련된 모든 연결고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모습도 인상 깊었지만, 사실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확신에 차 말하는 S의 자녀들은 더 깊은 인상을 주었다. 아는 한국말이라고는 간단한 인사말이 전부고, 한국을 방문한 적도 거의 없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거침없이 말하는 S의 10대 초반의 자녀들. ‘무엇이 저 친구들에게 한국인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주었을까’ 정말 신기하고도 궁금했다.

민족의 뿌리를 공유하는 한 우리는 하나의 집에 산다

이처럼 해외동포들은 집(Home)에 대한 갈망과 정체성 문제라는 ‘핫이슈’를 가지고 있다. 특히 재일동포들은 분단선이라는 물리적 경계뿐만 아니라 분단에서 비롯한 남한·북한·일본이라는 심리적, 정체성 측면의 경계에서 진정한 ‘집(Home)’을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연출을 맡은 공하성 감독은 “이 극을 통해 조총련이나 재일동포에 관해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 사회적으로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집은 진정 마음 둘 곳이다. 분단으로 인해 삶을 영위하는 공간과 국적이 다르다고 한들 한민족으로서 뿌리를 공유하는 한, 그에 속한 모든 우리는 하나의 집을 공유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또 다른 ‘우리’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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