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9월 3일

통통인터뷰 | “‘다름’이 공존했던 그 속의 삶이 궁금했죠”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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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인터뷰 | 박계리 <개성공단> 전시총괄기획(홍익대 융합예술연구센터 연구교수)

“‘다름이 공존했던 그 속의 삶이 궁금했죠

조두림 / 본지기자

박계리  전시총괄기획(홍익대 융합예술연구센터 연구교수)

박계리 <개성공단> 전시총괄기획(홍익대 융합예술연구센터 연구교수)

Q. 반갑습니다. <개성공단>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A. 저는 남북한 미술문화 연구자입니다. 연구 활동을 지속하면서 자연스럽게 남북한이 함께 시간을 공유했던 개성공단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개성공단이 흥미로웠던 점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었죠. 남쪽과 북쪽의 소위 ‘욕망’이 서로 교차하면서 ‘윈-윈’의 결과를 만들기 원했던 공간이라는 점 때문이었어요.

자본주의적 욕망과 사회주의적 욕망을 비롯해 갑과 을의 욕망 등이 모두 얽혀 있었던 매우 독특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관계된 이들이 개성공단으로 이끌려온 결핍과 욕망은 무엇 때문인지, 서로 다른 삶의 연장선에서 만난 이들이 삶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긴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복합적인 상황 속에서 바라보고 싶었고 그 속에서 어떠한 관계 맺음이 생성되었는지에 집중하게 됐어요. ‘관계의 미학’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모습이 어떻게 발휘됐을지가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2015년 겨울에 들어 다른 전시회를 하면서 작가들과 개성공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2016년 2월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결과를 맞으면서 사회적으로 급부상하는 이슈가 되었고 개인적인 관심이 증폭된 계기가 되었죠. 그러면서 우선 대중들과 개성공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주변 작가들과 이번 기회에 개성공단에 대한 보다 내밀한 기억을 호출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그래서 ‘예술을 통해서 기억을 호출하고, 미래를 이야기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개성공단>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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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개성공단> 전시를 직접 참관해보니 공간 구성이나 작품 안에 담긴 메시지 등에서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특히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A. 개성공단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너무 잘 알죠. 그런데 처음에 막상 스스로 ‘개성공단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나?’라는 생각을 해보니 사실 별로 아는 것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개성공단에서 10년 넘게 남쪽과 북쪽 사람들이 함께 살며 삶을 공유했는데 그 속에서 어떠한 갈등이 빚어졌고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 반대로 어떠한 부분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는지 등이 너무 궁금했죠. 물론 남북의 문화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남북이 함께 만들어간 일상의 문화들을 정확히 인지하고, 이를 기록하고 보관하는 아카이빙(archiving) 작업이 중요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기도 했어요. 앞으로 남북한이 다시 새로운 경제 모델을 만드는 등 교류사업을 시작했을 때 개성공단 10년 동안 일상문화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검토와 아카이빙 작업은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야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과거보다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제가 전시를 준비하면서 너무 놀랐던 것은 개성공단이 10년 넘게 가동됐지만 아무런 ‘문화적 아카이브’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보통 이러한 전시를 시작할 때 기획 단계에서부터 언어학자나 문화학자 등이 채집한 ‘잘 정리된 아카이브’를 토대로 미술가들이 작업에 착수하는데 이러한 자료가 전무하다보니 <개성공단>을 준비하면서 저와 미술가들은 일일이 개성공단에 참여했던 분들을 만나 근로자들은 휴식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로보 물자는 무엇이 있었는지, 새롭게 만들어진 언어는 무엇이었는지 등 개성공단의 일상문화에 대해 직접 인터뷰하며 채집해야 했어요. 따라서 전시 준비기간이 2년을 넘길 정도로 길어졌죠. 이번 전시의 준비과정이 말해주듯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설계할 때는 문화 아카이브 구축도 처음부터 고려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특히 남북 교류협력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현시점에서 과거와 같은 시행착오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더더욱 필요한 작업이죠. 정치·경제·행정 분야뿐만 아니라 문화적 기반 구축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개성공단 관계자 및 남측 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전시였다는 점인데요. 저는 전시 기획 초기 단계부터 이것을 미술가들만이 만드는 전시가 아니라 개성공단과 관련된 모든 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전시라고 생각했어요. 개성공단의 경험을 토대로 작품화한 사람만이 예술가가 아니라 개성공단이라는 공간을 처음에 상상해낸 사람, 그 공간 안에서 삶을 영위한 사람 모두가 예술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원래 개성공단은 군사지역이었잖아요. 그런데 그 군사지역을 뒤로 밀어내 공단 부지를 만들었고, 아무것도 없는 땅에 남과 북의 사람들이 만나 하나씩 규칙을 정하고 이에 맞게 대규모 공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함께 물건들을 생산해 냈어요. 그 모든 과정이 저는 너무나 훌륭한 예술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들을 오마주(hommage)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요.

감사하게도 많은 개성공단 기업뿐만 아니라 개성공단지원재단, 각계각층의 관계자들이 여러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후원했고 전시에 함께 참여해 주었어요. 공적으로 남북이 논의한 부분부터 사적으로 북측 노동자에게 선물 받았던 물건에 얽힌 이야기까지 모두 반영한, 그래서 개성공단에 참여한 모두가 함께 어우러진 전시를 했다는 것이 기획자로서 가장 뿌듯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죠.

Q. 작가들과의 협업 과정은 어땠나요?

A. 작가들과 함께하는 작업은 굉장히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결과도 좋았습니다. 기획자로서 전시를 통해 “개성공단에서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메시지, 즉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 또는 사람과 사물의 관계, 사물과 사물의 관계 등을 포함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었거든요. 제가 추구하는 미학을 공유할 수 있어서 그 과정이 더욱 즐거웠고요.

아울러 ‘다름의 미학’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개성공단에서의 남북 일상문화를 봤을 때에도 어떤 부분은 같이 생활하면서 점점 비슷해지는 요소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절대 비슷해지지 않는 부분이 있겠죠. 그러한 ‘다름’이 공존할 수 있는 것도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또한 ‘다름’이 서로에게 주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과 이러한 내용의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20180830_150830예컨대 남북한의 시차 30분에 대한 미술가 ‘양아치’의 작품, <평양, 30분, 서울>이 있어요. 개성공단 가동이 갑자기 잠정 중단되어 평양에서 남측 짐차가 빠져나왔을 때 마치 이사를 하는 듯 짐을 가득 싣고 나오는 장면을 봤잖아요. 그 모습이 처음에는 우리에게 매우 아픈 모습으로 다가왔는데, 이번 전시에서 미술가는 요즘 남북한 평화무드 상황들 속에서 그 차가 다시 개성으로 들어가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연출했거든요. 평양시가 공표된 2015년에서 북한이 서울표준시로 복귀한 2018년 사이에 발생한 30분이라는 시공간의 간극, 그 ‘다름’이 주는 에너지에 담긴 예술적 함의를 작품으로 표현해 큰 울림을 줬습니다.

한편 전시기획자로서 저는 정확한 이슈를 잡고 그 속에서 주제를 발견한 다음 작가들과 함께 연구하여 신작을 전시하는 방식을 주로 쓰고 있는데요. 특히 개성공단과 관련해 이전에 나온 미술작품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번 전시는 한 작품 빼고는 모두 신작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유사하면서도 서로 다른 인식을 가진 다양한 작가들과 작업이 이뤄졌기 때문에 전시가 매우 풍부한 감성을 가질 수 있었고 이를 지켜보는 기획자로서 무척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Q. 전시를 준비하면서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애로사항은 무엇이었는지?

A. 개성공단이 시류에 민감한 이슈인 만큼 애로사항은 너무 많았죠. 일례로 개성공단은 국제사회 대북제재 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재가동이 우리만의 힘으로 가능하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데요. 지금 남북관계가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으니 이 전시가 마치 정부의 정책 추진 맞춤형으로 기획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선 비핵화 후 경제제재 해제’ 논의가 오가는 시점에서 이러한 전시를 선도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개성공단 재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았고요. 특히 이번 전시 전에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고, 북·미정상회담이 초미의 관심사 속에 기대감을 모으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되도록 민감한 이슈는 터뜨리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던 것처럼 전시 외적인 측면에서 시점을 둘러싼 불필요한 오해들이 많았어요.

작가들도 사실 개성공단이 폐쇄된 직후 전시 참여를 결정했기 때문에 그때는 개성공단에 대해 이야기할 작품 구상에 대한 비교적 명확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후 정세가 시시각각 변하다보니 개성공단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구상해야 할지에 대한, 즉 작품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많이 힘들었죠. 만약에 <개성공단> 전시 개막 직전에 실제 개성공단이 재가동된다면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대중들을 대상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는지, 작품 구성과 표현이 달라질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한 맥락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죠.

Q. 전시를 참관한 관람객들의 반응이 궁금한데요?

이부록, , 2018. 서울역 컨셉스토어, 가변설치. ⓒ이부록

이부록, <로보다방-로동보조물자다방>, 2018. 서울역 컨셉스토어, 가변설치. ⓒ이부록

A. 전시를 본 많은 관람객들의 평을 들어보면 사실 개성공단에 대해 그간 잘 몰랐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 속의 삶이 표현된 작품에 대해 매우 생경한 느낌을 받죠. 예를 들면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시간대별 일정 24시간을 보면 탁아소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데요.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고 일하다가 시간이 되면 버스로 오가며 모유 수유를 해주고 오는 것이죠. 북한에서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인데 남한에 사는 우리에게는 그저 놀랍고 흥미로운 장면으로 다가오죠.

아울러 근로자 시간표에는 노동과 노동 사이, 우리네 옛날 국민체조를 상기시키는 ‘업간체조’라는 것도 있고요. 휴식 시간에 요즘 남한 사람들은 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보내는데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들은 기타치고 춤추며 노래 부르면서 놀거든요.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무엇인가 다르면서도 같구나’라며 여러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아요. 사실 이러한 느낌 안에 거창한 이데올로기가 개입하지는 않죠. ‘오랜 시간 분단된 남과 북이 개성공단에 모여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여태껏 정말 아무것도 몰랐구나’라고 표현하는 관람객도 있었고 예술가들의 상상력에 기반한 픽션이 섞인 전시를 꼼꼼히 보면서 매우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한 관람객도 많았죠.

미술가 정정엽은 작품을 통해, 개성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관람객들이 쓰도록 했는데, “개성에 있는 어떤 분이든 이 주소를 보면 우리 편지해요”라고 기재한 사람도 있었고 “우리 아버지가 살던 곳인데 개성에 가봤으면 좋겠다”,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내비치는 사람도 있는 등 반응은 각양각색으로 다양했어요.

특히 전시회 장소인 문화역서울284 앞에 소위 ‘태극기 집회’가 자주 열리잖아요. 집회 참가자들이 처음에는 <개성공단>이라는 타이틀 자체를 어떤 면에서 이념지향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태극기 집회도 토요일마다 열리고 <개성공단> 전시도 무료로 계속 열려 있으니, 날씨 덥고 비도 올 때면 한두 명씩 들어와 전시를 돌아보는 경우도 많았어요. 물론 전시회장 밖에서는 개성공단을 둘러싼 여러 정치적 이슈들을 기반으로 이 전시를 판단했을 수도 있지만, 안에 들어와서는 자연스럽게 천천히 둘러보고 가는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Q. 지난 76일부터 시작한 전시가 92일로 막을 내리는데, 전시기획자로서 소회가 어떤지? 향후 또 다른 전시계획이나 연구계획이 있나요?

A. 남북정세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개성공단> 전시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정말 지난한 과정이었어요. 그러나 미술가들이 그 과정들을 함께 통과해내며 울림이 있는 예술작품들을 만들어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다양한 연령의 많은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러 왔고, 특히 젊은 관람객들이 SNS를 통해 많은 현장사진을 올려서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문화예술진흥기금 시각예술창작산실 전시지원 선정작으로 이번 전시를 선택하고 후원해준 문화예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개성공단 기업협의회 관계자께도 감사드립니다. 이번 <개성공단> 전시는 스스로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나중에 언젠가는 북한의 미술가들이 바라본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들이 바라본 개성공단의 문제를 함께 전시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요. 그 다음 전시는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 공개 단계는 아니라 믿고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는 가을에는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연구 생활을 하며 지내게 될 것 같아요.

최원준, , 2018. 영상, 12분, 세트 가변설치. ⓒ최원준

최원준, <피륙의 결>, 2018. 영상, 12분, 세트 가변설치. ⓒ최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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