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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훈의 취재수첩 | 눈물의 상봉 … “살아줘서 고마워”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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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용훈의 취재수첩  

눈물의 상봉

살아줘서 고마워

장용훈 /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지난 8월 25일 북한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박봉렬(85) 할머니가 남측 동생 박춘자(77) 씨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연합

지난 8월 25일 북한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박봉렬(85) 할머니가 남측 동생 박춘자(77) 씨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연합

“살아줘서 고맙다” 60여 년 넘게 헤어졌던 남북한 이산가족의 상봉행사가 2015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만에 금강산에서 다시 열렸다. 남북이 지난 6월 적십자회담 당시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8월 20∼26일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이후 양측은 생사확인 의뢰서(7월 3일), 생사확인 결과가 담긴 회보서(7월 25일), 최종 상봉대상자 명단(8월 4일)을 순차적으로 교환하고 상봉시설 개보수 등 상봉행사를 준비했다. 행사는 남측 이산가족 89명이 북측 가족과 상봉하는 1차(8월 20∼22일)와 북측 이산가족 83명이 남측 가족과 만나는 2차(8월 24∼26일)로 나뉘어 진행됐다.

8월 20일 금강산호텔에 마련된 남북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장은 반백년이 훌쩍 넘은 기간 헤어졌던 혈육을 만나 부둥켜안은 가족들의 오열로 채워졌다. 남측 황우석(89) 할아버지는 세살 때 헤어졌던 북측의 딸 영숙(71) 씨와 반갑게 악수를 했다. 영숙 씨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게 물들었다. 38선 이남 미수복지 황해도 연백군 출신인 황 할아버지는 1951년 1·4후퇴 때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홀로 배를 타고 피난길에 올랐다. 그 길로 부모님과 세 여동생은 물론 영숙 씨 등 처자식과도 생이별했다.

얼마나 어렵게 살았을지애들은 몇이나 뒀니?”

황 할아버지는 딸과 “출가 전에는 누구랑 살았느냐?”, “동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황 할아버지는 북측의 손녀 고옥화(39) 씨와도 감격스러운 만남을 가졌다. 고 씨는 황 할아버지의 손을 계속 매만지면서 대화를 주도하고 귓속말을 하기도 했다. 황 할아버지는 단체상봉을 마친 뒤 취재진에게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돼 아주 기쁘다”면서 “얼마나 어렵게 살았을지 싶다. 지금까지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만날 수도 있고…”라고 말했다.

남측의 이금섬(92) 할머니는 상봉장에 도착해 아들 이상철(71) 씨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오자마자 아들을 끌어안고 “상철아”라고 부르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상철 씨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사진을 보여주며 “아버지 모습입니다. 어머니”라며 오열했다. 이금섬 할머니는 전쟁통에 가족들과 피난길에 올라 내려오던 중 남편과 아들 상철 씨 등과 헤어져 생이별을 견뎌야 했다. 이 할머니는 단체상봉 2시간 내내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채 가족사진을 보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눴다. 그는 아들에게 “애들은 몇이나 뒀니? 아들은 있니?” 등의 질문을 쏟아내기도 했다.

남측 한신자(99) 할머니도 북측의 두 딸 김경실(72), 경영(71) 씨를 보자마자 “아이고”라고 외치며 통곡했다. 한 할머니는 전쟁통에 두 딸을 친척 집에 맡겨둔 탓에 셋째 딸만 데리고 1·4후퇴 때 남으로 내려오면서 두 딸과 긴 이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는 “내가 피난 갔을 때…”라고만 하고 미처 두 딸과 함께 내려오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울먹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북측 딸들은 “고모가 있지 않았습니까?”라며 오랜만에 만난 노모를 위로했다. 북측 딸들은 부모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을 꺼내놓았지만 정작 한신자 할머니는 “이게 누구야?”라고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다.

유관식(89) 할아버지도 북측의 딸 연옥(67) 씨를 만났다. 유 할아버지는 애써 눈물을 참는 모습이었지만 딸은 아버지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유 할아버지는 전 부인과 헤어졌을 당시에는 딸을 임신한 상태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번 상봉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남측의 안종호(100) 할아버지는 북측 딸 정순(70) 씨와 해후했다. 정순 씨는 아버지에게 “저 정순이야요. 기억 나세요? 얘는 오빠네 큰 아들이예요”라고 울자 안종호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지 눈물만 흘렸다.

남측의 최기호(83) 할아버지는 북측 조카 최선옥(56), 광옥(53) 씨가 가져온 형의 사진을 보며 손수건을 한참 눈에 대고 말을 잇지 못했다. 남측 이금연(87) 할머니는 북측 올케 고정희(77) 씨를 만나자마자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를 지켜보던 이금연 할머니의 아들과 딸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족끼리만 오붓하게 오찬하며 못 다한 이야기 나눠

특히 이번 상봉부터는 상봉 이틀째 되는 날 2시간 가량 객실에서 개별상봉을 진행한 뒤 1시간 동안 함께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 때마다 개별상봉 시간은 있었지만, 가족끼리만 오붓하게 식사를 하는 건 처음이다. 8월 21일 객실로 배달된 도시락은 북측이 준비했고 삼색찰떡, 오이소박이, 닭고기편구이, 낙지후추구이, 오이절임, 삼색나물, 숭어완자튀김, 돼지고기 빵가루튀김, 금강산 송이버섯 볶음, 소고기 볶음밥, 사과, 가시오갈피차, 금강산 샘물 등으로 구성됐다. 이산가족들은 개별상봉에 대해 “아무래도 자유롭고 훨씬 낫다”고 말했고, 따로 점심을 한 데 대해선 “얼마나 맛있어. 기분도 좋고”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2박3일간의 상봉을 마치고 헤어지는 마지막 만남인 작별상봉은 여전히 슬프고 애틋함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이번 작별상봉은 점심을 포함해 오후 1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됐다. 당초 2시간이었다가 남측 제의를 북측이 수용해 3시간으로 늘었지만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8월 24일부터는 이번 상봉행사의 두 번째 만남이 시작됐다. 남쪽의 상봉단 81가족 326명은 이날 동해선 육로를 통해 상봉행사가 열리는 금강산 지역으로 들어갔다. 한때 한반도를 관통할 태풍 ‘솔릭’의 영향에 대한 우려 속에 행사가 연기될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하늘도 60여 년만의 상봉을 도우려는 듯 태풍의 위력이 약화하면서 예정대로 치러졌다.

첫날 단체상봉에서 조정기(67) 씨는 북측 아버지 조덕용(88) 씨와 상봉했다. 이번 상봉단에서 부모와 자식이 만나는 유일한 사례다. 조정기 씨는 “살아계실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조덕용 씨는 한국전쟁 때 홀로 북으로 갔고, 당시 조정기 씨는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 어머니는 안타깝게 상봉 연락을 받기 불과 50여 일 전에 세상을 떠났다.

우기주(79) 씨는 휠체어를 탄 북측 언니 우기복(86) 씨와 만나자 “살아줘서 고마워”라며 눈물을 흘렸다. 경기도 양주에 살던 우기주 씨는 언니 우기복 씨가 전쟁 직후 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친척을 따라나선 이후 더는 언니를 만나지 못했다. 상봉단의 최고령자인 강정옥(100) 할머니는 북측 여동생 강정화(85) 씨를 꼭 안아주고 쓰다듬었다. 동생은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상봉에서는 남북한의 시인들이 가족들에게 헤어짐의 아픔과 재회의 기쁨을 담은 시를 적어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금강산을 찾은 남측 가족에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오세영(77) 시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 시인이 외가에서 자라며 여덟살 때 보고 못 본 네살 아래 북측 사촌 여동생 라종주(72) 씨가 남측 가족을 찾은 덕분이었다. 사촌오빠를 만난 라 씨는 상봉행사 첫날 단체상봉 때 시를 한편 지어달라고 했다. 네살배기 라 씨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는 오 시인은 이튿날 아침 <사랑하는 동생 종주야>라는 제목의 시를 써 오전 개별상봉 때 라 씨에게 직접 전달했다.

“그때 그날처럼 아직도 / 그 자리에 서 있을 외갓집 마당가 / 살구나무 꽃그늘 아래서 다시 만나자”

오 씨는 “8살 때 당시 4살인 종주를 만났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가족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오 시인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고 2011년부터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시집 <반란하는 빛>과 평론집 <한국 현대시의 행방> 등을 다수 출간했다.

북측 참석자 가운데도 시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남측의 언니와 네명의 여동생과 상봉한 북측 양차옥(82) 씨는 김일성대학교 문학과를 나와 40년간 <과학기술통신사>에서 기자로 일한 경력의 소유자로, 정식으로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양 씨는 상봉기간 자신이 쓴 시를 여러 편 자매들에게 읊었다고 남측 가족들은 전했다. 그중에는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은 <우리집에 코스모스>도 있었다.

“우리집에 코스모스 / 담장 밑에 코스모스 / 빨간 꽃은 피었는데 / 우리 엄마 어데 가고 / 너만 홀로 피었느냐 / 너만 보면 엄마 생각 / 너만 보면 고향 생각”

남측 동생 양경옥(74) 씨는 언니 양 씨가 <저 하늘의 밝은 달>이라는 시도 읊어줬다며 “밤에 달을 보면 그 달을 ‘나만 보는 게 아니라 언니도 봤구나’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될 것 같다”고 소회를 전했다.

그리고 다시 헤어짐의 시간. 8월 26일 오전 10시부터 3시간 동안 남북 이산가족들의 작별 상봉과 공동중식이 진행된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은 다시금 긴 이별 앞에 놓인 가족들의 울음으로 눈물바다가 됐다. 남측 동생 박유희(83) 씨가 이별을 앞두고 울기 시작하자 북측 언니 박영희(85) 씨는 “통일이 되면…”이라면서 조용히 달랬다. 그러나 유희 씨는 “그 전에 언니 죽으면 어떻게 해”라며 끝내 오열했고, 영희 씨는 “내 죽지 않는다, 죽지 않아”라며 동생을 다독였다.

그렇게 1주일간의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산가족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상봉의 시급성을 재확인했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가 함께 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7월 31일 현재까지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는 5만6,862명으로 집계됐다. 단순계산으로만 해도 2년 10개월 만에 성사된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신청자 638명 중 1명꼴로만 상봉 기회를 잡은 셈이다.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고령 등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지난 7월 31일 현재 7만5,741명으로 집계됐다. 7월에도 316명의 이산가족이 북측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또한 현재 생존자 중에도 70대 이상의 고령 이산가족이 전체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도 한 차례에 100명에도 못 미치는 이산가족이 북측의 가족과 만나는 상봉행사는 이산가족의 한을 풀기에는 태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70대 이상 고령 이산가족 85% 상봉 확대방안 절실

남북의 가족이 서로 헤어진 지 65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성사된 대면상봉은 1985년 9월에 이뤄진 남북 고향방문단 교환과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포함해 22차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전면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시작된 직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기적인 상봉행사는 물론 전면적인 생사확인과 화상상봉·상시상봉·서신교환·고향방문 등 상봉 확대방안을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한적) 회장은 8월 25일 북측과 연내 추가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개최하는 방안을 협의했으며 이르면 10월 말께 추가상봉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8월 25일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2회차 상봉행사 단체상봉이 끝난 뒤 이산가족면회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박 회장은 “박용일 북측 단장과 (이번) 21차 행사와 같은 방식의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올해 안에 한 번 더 하기로 협의했다”며 “구체적인 날짜 등은 국장급 실무회담에서 논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규모는 대강 이번과 비슷하게 한다”며 “제 생각에는 연내에 한다고 했지만, 날씨 등을 고려할 때 잘 되면 10월 말께 (가능할 것)”라고 덧붙였다.

특히 박 회장은 “박 단장과 제반 여건이 허락되면 고향방문단(교환)을 가급적 빠른 시일 내 하자는데 긍정적 협의를 이뤘다”고 전했다. 하지만 박용일 단장은 박 회장과의 협의 과정에서 고향방문단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채 ‘앞으로 협의할 일’이라는 수준의 원론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박 회장은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는 전에 없던 가족이 같은 방에서 공동식사를 한다든지, 어르신들이 버스에 탑승한 채 세관검사를 받는 등 (북측과) 성의 있는 협조 관계가 이뤄졌다”면서 “판문점 선언 이후 첫 번째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북측의 성의 있는 협조로 성공적으로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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