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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선언과 협정, ‘수단’으로 접근해야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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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선언과 협정

수단으로 접근해야

김재한 /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제3조 제3항은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에 9월 하순 유엔 총회는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공동으로 한반도 종전을 선언할 때와 장소로 거론되고 있다. ‘정전협정 → 종전선언 → 평화협정’의 로드맵은 적절한 방안일 수 있겠지만, 평화를 위해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추진해야 할 로드맵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수립과 국민의 정책 이해에 도움이 될 몇 가지 사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첫째, 평화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없이 이룬 경우가 더 많다. 평화협정으로 불리는 조약 대부분은 19세기 이전의 것이다. 20세기 이후, 특히 두 차례 세계대전 이래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가 다시 평화협정이 체결된 사례는 많지 않다. 또 동일한 협정을 정전협정으로 부르고 동시에 평화협정으로 부르기도 한다. 예컨대 1973년 1월 파리에서 체결된 베트남전쟁의 평화협정은 정전협정으로 불리기도 한다. 더욱이 1973년 파리 평화협정을 1954년 제네바 베트남 정전협정 및 인도차이나 종전선언의 후속 평화협정으로 보는 견해는 별로 없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지 않은 사례는 많은 것이다.

선언과 협정만으로 평화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한반도의 경우 1972년의 ‘7·4남북공동성명’, 1991년의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2005년의 ‘9·19공동성명,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10·4정상선언 등은 이미 종전선언에 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선언과 협정만으로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둘째, ‘선(先) 종전선언 후(後) 평화협정’의 순서가 늘 그렇지는 않다. 예컨대,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선언은 1919년 6월 베르사유 평화협정보다 훨씬 이후에 이뤄졌다. 미국의 공식적인 종전선언은 1921년 7월에 이뤄졌고, 영국은 상대국에 따라 1920년 1월부터 1924년 8월까지 다섯 차례(독일,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헝가리, 터키)에 걸쳐 종전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종전선언 이후에는 무장, 전투 가능성 시위, 실제 전투 행위가 어렵기 때문에 종전선언은 대체로 늦게 이뤄진다. 이미 끝났다고 선언한 전쟁에서 전투행위나 전투준비를 전개하는 것이 어렵고 그러려면 전쟁을 처음 시작하는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종전선언은 기존 전쟁에 대해선 일종의 불가역 행위에 가깝다.

셋째, 종전선언은 일방의 정치적인 행위일 때가 많다. 사실, 선언은 혼자서 해도 가능한 행동이다. 2003년 5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 해상의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갑판 위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주요 이라크 전투의 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실제 전쟁은 종전선언으로부터 8년이 지난 후에야 끝났다. ‘임무완수’ 현수막 앞에서 연설하는 부시 대통령을 촬영한 사진은 오늘날 종전선언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보여주는 예가 되고 있다. 정치적 행위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 필요하면서도 지나치다 보면 역효과를 내기도 하는 것이다.

넷째, 정전협정, 종전선언,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다자 간 전쟁에서는 정전협정 당사자와 평화협정 당사자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흔하다. 예컨대 제1차 세계대전에서 1918년 11월 콩피에뉴 정전협정의 당사자와 1919년 6월 베르사유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일치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는 정전협정의 당사자부터가 논란거리다. 한국은 정전협정 서명국이 아니기 때문에 평화협정 당사자가 아니라고 보기도 하지만, 한국은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했고 정전협정에는 유엔군 총사령관이 대표 서명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 당사자가 맞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전자의 입장을 취하면서 동시에 한국군의 정전협정 위반을 지적하고 준수를 주장하여 왔다. 한국이 정전협정을 위반했다는 주장은 한국이 정전협정 당사자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면 정전협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당사자 자격은 현재 인정되고 있고 또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정전협정의 중국 측 서명자는 펑더화이(彭德懷)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이다. 미국·북한과 달리 중국 내 직책을 병기하지 않았다. 중국인민지원군은 의용군이라 중국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군대가 아니고 또 1958년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해체되었기 때문에 현존하는 당사자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진정한 평화 위한 종전선언 시기 제대로 판단해야

끝으로, 전쟁과 평화는 종잇장보다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된다. 현재 북한은 종전선언의 조속한 이행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폐기로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어떤 면에서는 전쟁상태였기 때문에 북한 체제가 잘 보장되기도 했다. 65년 이상 종전선언 없이 북한 체제가 유지되었다는 사실에서 종전선언이 체제유지의 필수조건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불편하게 느끼는 중국은 종전선언을 전략적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종전선언이 유엔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한·미동맹 해체, 북방한계선(NLL) 해체, 현행 「헌법」과의 충돌 등을 야기할 것에 대한 우려가 등장하고 있다. 모두 종전선언이 이뤄졌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전개되어야 할 사안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그러한 목소리가 강해질 가능성은 크다. 북한과 중국의 요구에 대한 대응뿐 아니라 한국 내 일부의 주장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지의 과제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선언과 협정은 의도한 결과를 가져오려는 수단일 뿐이다.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기와 상황에서 종전선언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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