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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타고 세계여행 | 제국의 위엄, 티무르의 후예 … 우즈베키스탄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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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타고 세계여행 20

제국의 위엄, 티무르의 후예

우즈베키스탄

시나씨 알파고(Şinasi Alpago) / <하베르코레> 대표

서구 역사학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기 전 인도 전역을 다스렸던 나라를 ‘무굴 제국’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제국을 ‘무굴’이라고 한 이유는 영국이 이 제국을 몽골 제국의 후손으로 생각해서 ‘Mughal’이라고 명칭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제국은 진짜로 ‘몽골족’이 세운 제국일까? 민족적 관점을 가지고 역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의 대다수 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우즈베크족’이라는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하나 주어진다.

무굴 제국을 세운 민족, 몽골족? 우즈베크족?

우즈베키스탄 500솜

우즈베키스탄 500솜

몽골 제국을 세운 칭기즈칸은 제국의 최고위 관료나 장군들을 모두 몽골족으로 임명했지만, 2차적으로는 ‘돌궐족’을 가장 많이 등용했다. 칭기즈칸은 몽골족 고유의 글자를 만들기 위해 위구르족(동아시아 고대사에서 돌궐족으로 불림) 학자들에게 글자 창시를 지시하기도 했다. 즉, 몽골 글자는 위구르족 글자에서 파생되었으며 제국의 한 축인 언어를 맡아 관장할 만큼 몽골제국 시대 돌궐족의 후손들은 중책을 맡고 있었다.

한편 칭기즈칸의 차남인 차가타이는 칭기즈칸에게 물려받은 영토를 바탕으로 차가타이 칸국(Chaghatai Khanate, 1227~1369)을 세웠는데, 이 나라가 1370년에 티무르 제국이 된다. 그리고 훗날 이 티무르 제국에서 배척당한 바부르 장군이 인도로 넘어가 터를 잡고 큰 제국을 세우게 되는데, 이게 바로 무굴 제국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무굴 제국은 몽골족이 세운 나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1370년 차가타이 칸국이 티무르 제국이 되는 과정에서 지배 민족이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교체 과정을 설명하자면 우즈베키스탄 화폐 500솜의 뒷면을 봐야 한다.

500솜 뒷면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있는 아미르 티무르의 동상이 있다. 아미르 티무르는 티무르 제국을 세운 장본인으로 세계사를 통틀어 몇 안 되는 유명한 장군 중 한 명이다. 또한 티무르는 제국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우즈베크 민족의 역대 국부이기도 하다.

티무르 제국 바로 이전에 차가타이 칸국은 유목민 정세에 알맞게 조직된 국가로, 처음에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중앙정부가 영향력을 잃어갔다. 바로 이 시점에 티무르는 차가타이 칸국의 임명장을 받아 현재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위치한 발흐(Balkh) 부근의 통치권을 얻게 된다. 티무르는 칭기즈칸의 직계 후손이 아니었기 때문에 칭기즈칸의 증손녀와 결혼하여 아군의 패권을 강화시켰다.

그렇게 패권을 키워가면서 티무르는 오랜 권력 싸움 끝에 1370년 차가타이 칸국의 황제로 즉위했고, 칸국을 티무르 제국으로 바꾸었다. 그 당시에 돌궐족의 후손인 투르크멘족은 이미 유목민 생활을 접었고, 이란을 통해 이슬람을 받아들인 채로 중앙아시아에서 정착하고 있었다. 그렇게 티무르는 이란의 문명, 투르크멘의 언어 그리고 몽골의 정세를 섞어서 ‘차가타이’의 정체성을 확립했는데, 이 티무르 시대에 ‘차가타이’인들이 바로 오늘날 우즈베크족의 조상들이다.

국부이자 영웅 아미르 티무르, 민족주의 열기 타고 각광

우즈베키스탄 1000솜

우즈베키스탄 1000솜

티무르 제국은 오랫동안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인도 북부부터 터키 서부까지 다스렸다. 그러나 티무르 제국은 1507년에 분단하면서 역사 무대에서 사라졌다. 아미르 티무르의 증손자 바부르 장군이 인도에 가서 다른 제국을 세웠지만, 티무르 제국의 본 영토에서 부하라, 히바, 코칸드 칸국이 생겼다. 러시아가 이 세 칸국을 정복할 때까지 우즈베크 민족은 소위 말하면 ‘삼국시대’를 보낸 셈이다.

러시아 제국이 소련으로 바뀌고 중앙아시아를 민족별로 다스리는 과정에서 우즈베크족이 대대적으로 살아온 지역은 ‘우즈베키스탄 소비에트 공화국’이라는 행정지로 묶이게 되는데 그 지역이 바로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이다.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높아진 민족주의 열기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고, 한국인들이 일제식민지 시절 민족 주체성을 부르짖고 뿌리를 찾아 ‘단군’의 위상을 강화했듯이 우즈베키스탄 국민들도 국부 아미르 티무르의 역할을 강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1996년 티무르 탄생 660주년을 기념해 화려한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을 세우기도 했다.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은 1,000솜 뒷면에 있는 건물이다.

우즈베키스탄 200솜

우즈베키스탄 200솜

오랫동안 공산주의 지배 아래 있었던 무슬림 국가 우즈베키스탄은 오늘날 이슬람 세계에서 영향력이 큰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티무르 시대에는 이슬람 문명을 비롯해 전 세계를 통틀어 학문의 메카 중 하나였다. 우즈베키스탄이 한때 학문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200솜 뒷면에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 있는 광장 ‘레기스탄(Registan)’에 새겨진 무늬이다.

200솜 뒷면에 보이는 독특한 호랑이 무늬는 레기스탄에 있는 마드라샤(옛날 대학교) 건물들의 디자인에 쓰였던 무늬다. 레기스탄에 있었던 학교들은 17세기까지 우주학을 비롯한 수많은 학문 분야에서 세계 1위의 대학기관이었다. 아미르 티무르는 단지 전술에 뛰어나고 정치를 잘해서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것이 아니었다. 티무르와 그의 후손들이 당시 강력한 교육기관들을 세웠기 때문에,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늦게 형성된 민족 역사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시대를 잘 극복하고 오늘날까지 민족이 이어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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