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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산업 재편과 글로벌화 직면 … 통일 성장통 겪은 베를린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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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통일과 번영, 도시 변화의 눈으로 보다

산업 재편과 글로벌화 직면

통일 성장통 겪은 베를린

알렉산더 볼프 / 독일 한스자이델재단 베를린사무소 대표

지난해 8월 10일 독일 수도 베를린을 찾은 관광객들이 웨스트 사이드 갤러리에서 과거 베를린장벽을 활용해 설치된 통일 테마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

지난해 8월 10일 독일 수도 베를린을 찾은 관광객들이 웨스트 사이드 갤러리에서 과거 베를린장벽을 활용해 설치된 통일 테마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

독일이 통일된 지 28년이 지났고 정치·경제·사회는 물론 도시계획 측면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베를린이라는 도시도 통일 이후에 매우 큰 도전 과제를 맞았다. 특히 경제적인 분야에서 동·서(東·西)베를린은 모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서베를린이 지금 생각하는 전형적인 시장경제의 체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서베를린은 사회주의와 바로 대면하고 있던 장소였기 때문에 서독이 국가 차원에서 서베를린에 대해 많은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베를린은 말할 것도 없고 서베를린 역시 독일이 통일되면서 하루아침에 글로벌 경제에 바로 직면하게 된 형국이었고 구조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제조업 취약했던 베를린, 마이너스 성장 겪어

동·서베를린은 각각 고유한 성격의 도전 과제를 안게 되었다. 가장 특징적인 분야는 바로 일자리의 변화였다. 서베를린 일자리의 경우 1991년과 2001년을 비교했을 때 거의 10만개 가까이 줄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동베를린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게 된다. 통일과 함께 맞이한 사회경제적 도전에 서베를린은 일정 수준의 가용한 정책적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이었지만 동베를린은 완전히 구조적인 전환을 요구 받는 상황을 맞게 된다.

동베를린 지역의 기업은 약 90%가 통일 이후에 새로 신설된 업체였고 남아 있는 기업은 단지 10%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이 독일통일 이후 28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베를린에 제조업을 비롯한 각종 산업 분야의 일자리가 매우 부족한 상황을 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단순히 분단과 통일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어 왔던 산업재편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일자리를 양산하는 측면에서 보면 제조업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제조업의 기반이 확보되어야 이에 따르는 서비스 업종이 뒤따라 발생하고 전체적인 일자리 양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를린은 앞서 언급했듯, 제조업 분야가 취약한 바탕을 가지고 있다보니 일자리의 절대량이 부족한 상황이고 이에 따른 실업률도 높게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통일 이후 국가 차원에서 지원이 이뤄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지되며 베를린에 큰 타격이 되었고 이를 대체하는 추가 지원책이 생겼지만 기존의 지원과 비교해서는 굉장히 부족한 수준이었다.

전통적으로 베를린은 경제적 측면에서 자립의 능력을 온전히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통 한 국가의 전체 GDP를 보면 이 중에서 수도가 창출해내는 부분이 크다. 특히 유럽 지역의 국가에서 두드러지는데, 예를 들어 그리스 아테네의 경우 전체 국가 GDP의 50%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베를린은 마이너스 요인이다. 국가 GDP에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깎아먹는 형국이다.

과연 통일 이후 베를린이 어떠한 경로를 걸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까? 서베를린의 경우 통일 이후 5년의 시간이 도시 경제의 첫 번째 단계로 볼 수 있다. 1990~1995년 서베를린은 19%의 거대한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 시기다. 이 시기에는 베를린에 상당한 대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통일독일의 수도이기 때문에 거대한 발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 심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속되지는 못했고 이후 1996~2004년은 성장이 정체 국면을 보였다. 당시 베를린의 총생산이 감소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동베를린 지역에 있는 기업들이 도산하는 경우가 많았고 서베를린 지역에 있던 기업들도 현상유지를 못한 채 도시에서 이탈하는 수가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는 통일 직후부터 약 15년간의 시기보다 나은 상황인데, 이는 독일 전체의 경제가 상승하는 국면에 편승한 동시에 서비스 부문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도시 인구 11%, 정치 분야 종사 관광업도 성장 중

경제적인 변화 이외에 베를린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정치·사회적인 의미로 수도의 기능을 다하게 된 것이다. 통일 이후 베를린은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과거 서독 시절에는 수도가 본이었고, 따라서 본에 소재했던 연방의회나 부처들이 대부분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대사관과 관저 등 외국의 공관이 거의 베를린으로 옮겨왔고 따라서 도시 전체적으로 국제화 성향이 제고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 베를린 총 인구의 약 11%가 정치 분야 종사자로 조사되기도 했다. 또한 IT 분야와 의약 및 보건 분야에도 상당수의 종사자가 있고 특히 관광 분야에서 많은 일자리가 생산되고 있다. 베를린은 유럽에서 런던과 파리에 이어 세 번째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다. 이는 베를린이 갖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 즉 분단되었던 도시와 그 상징이었던 장벽을 볼 수 있는 것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편 베를린은 통일 이후 일정기간 동안 부동산이나 물가가 매우 저렴한 도시에 속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대규모의 인구이동 때문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여느 대도시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공유하는 측면도 있다. 특히 구조적인 측면에서 도시 내 상대적으로 열악한 경제력을 갖춘 지역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 동베를린 지역에 속했던 곳에 집중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베를린과 베를린을 둘러싸고 있는 주(州)인 브란덴부르크주를 병합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자는 의견이 부상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러한 제안이 집중되었고 실제로 베를린 시의회와 브란덴부르크 주의회에서 모두 가결되었지만 이후 주민투표에서 브란덴부르크 주민들의 반대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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