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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관 속 북한 직업 이야기 | 효율이 곧 혁신! 생산량 극대화를 위한 선택은?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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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관 속 북한 직업 이야기10 <분조의 주인> | 분조장

효율이 곧 혁신!

생산량 극대화를 위한 선택은?

전영선 /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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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조의 주인>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2011년에 제작한 54분 길이의 예술영화다. 단편소설 『안해의 성격』을 원작으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시집온 ‘소영’이라는 새댁이 모범적인 분조장으로 거듭난다는 내용이다.

북한의 농업관리체계는 1960년대까지 협동농장 단위 경영과 국가 식량배급제를 기본 구조로 하는 중앙집권적인 관리체계로 진행되어 왔다. 농업성 아래 도농촌경리위원회,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협동농장에 이르는 수직적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협동농장 안에는 다시 작업반을 기본 단위로 여러 개의 분조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조는 협동농장 내에서도 가장 작은 생산단위로, 분조원은 식량생산의 핵심 일꾼이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농업생산량과 직결되는 분조원을 이끄는 분조장의 리더십과 혁신, 근면 성실함을 강조하고 있다.

도시 처녀 소영, ‘퇴비생산 혁신으로 농촌에 새바람을!

‘강삼’이 분조장으로 있는 3분조에는 도시에서 시집온 소영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협동농장 작업반 기술원인 ‘문일’의 아내 소영은 도시에서 자라 군대에 자원입대하고 제대 후에 남편을 따라 농촌으로 왔다. 농사는 분조단위(10명)로 진행되었는데, 소영은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 모자라 협동농장원들은 소영을 신경 써주었다. 소영이 일하는 3분조는 퇴비 거름 경쟁에서 3등을 하였다. 분조장은 더욱 열심히 하자면서 작업량이 미달한 사람을 불렀는데, 소영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문일이 분조장에게 부탁한 덕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소영은 남편을 설득해서 미달한 분량만큼의 퇴비를 지고는 남들 몰래 자기가 맡은 밭에 옮겨놓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밭에 거름 옮겨 놓은 것을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한편 분조장 강삼은 농업대학 진학을 원하는 딸 ‘윤이’를 문일에게 보내 공부 지도를 받게 하였다. 문일은 윤이에게 ‘니탄을 이용하여 비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였다. 둘의 이야기를 듣던 소영은 자기도 공부하겠다면서 비료 만드는 방법을 배워 나갔다.

농장에서는 열심히 퇴비를 더 많이 생산해서 알곡생산량을 높이자고 결의한다. 소영은 효율성 높은 후민산비료를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강삼은 “후민산비료를 만들자는 소영의 제안은 좋지만 핵심 재료인 리탄이 있는 곳이 설봉산 밑이고, 강과 산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우리 분조 포전까지 날아올 수 없다”라고 반대하였다. 하지만 소영은 퇴비 수십t과 맞먹을 비료를 포기하지 않았다. 소영의 의견은 협동농장 전체 문제로 제기되었다. 소영은 군인시절의 경험을 살려서 무동력 삭도를 제안하였다. 마침내 협동농장에서도 소영의 의견이 받아들여졌고, 소영이 제기한 관성 삭도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한편 분조장 강삼은 어느 날 아침 작업을 지시하다 급성충수염으로 쓰러졌다. 강삼은 응급차에 실려 가면서 ‘분조일지’를 소영에게 맡겼다. 임시 분조장이 된 소영과 협동농장 사람들은 삭도 건설을 위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문제가 많았다. 기둥을 세우는 문제는 발전소 건설을 위해서 세워두었던 임시 전봇대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곧 소영이 군대 있을 때 경험과 협동농장원들의 경험이 결합되면서 삭도 건설이 완성되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강삼은 짧은 기간 동안 달라진 놀라운 변화를 보면서 소영이야말로 혁명가라고 칭찬하였다.

분조 역할 강조한 ‘6·28방침농업생산량 증가에 전력

북한의 농업정책은 김정은 체제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였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지나면서 식량난 등으로 시장의 기능이 확장되면서 사실상 식량 배급이 중단되고, 시장 거래가 확산되었다. 또한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이중곡가제를 폐지하고, 임금과 가격을 현실화하였다. 이후 식량증산을 위한 고민 끝에 농업생산량에 대한 정책 변화를 시도하였고, 정책 발표의 하나로 나온 것이 2012년에 나온 이른바 ‘6·28방침’이었다.

‘6·28방침’의 핵심은 생산단위를 최소화 하는 것이었다. 10명에서 25명의 분조에 더 작은 단위인 3명에서 5명 단위의 포전책임담당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외형적으로는 공동생산 체제를 유지하지만 생산단위를 최소화함으로써 책임성을 높인 것이었다. 이와 함께 목표 생산량 초과분을 국가와 농민이 일정한 비율로 나누어 분배에 대한 책임성은 높였다. 제한적이지만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 체제 이후 북한의 농업생산량은 낮은 수준이지만 증가 추세로 나타났다. 쌀을 비롯한 곡물생산량이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농업 생산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큰 자연재해가 없었던 것도 식량 증가의 한 원인이었지만 자체적으로 농업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정책도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존의 농업관리체계로 협동농장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생산자인 농민의 생산의욕을 높이고자 관리체계를 개선한 것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식량생산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의 식량은 60만~100만t 정도 부족한 상황이다. 농업정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센티브 도입과 최소 생산 단위인 분조의 역할을 주문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4년 2월에 있었던 ‘전국 농업부문분조장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인 ‘사회주의농촌테제의 기치를 높이 들고 농업생산에서 혁신을 일으키자’를 통해 농업정책에 여러 가지 주문을 하였다. 생산량 증대에 효과적인 유기질 비료에 대해서도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농업생산의 주인은 농업부문 일군들과 농업근로자들”이라면서, “분조의 역할을 높여야 사회주의 농촌경리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으며 농업생산에서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라며 분조를 핵심으로 지목하였다. 또한 최첨단 농업시설을 갖춘 평양남새과학연구소를 대회 참가자들의 견학 코스에 넣기도 했다. 첨단 시설을 통한 생산 증가를 현장에서 구현하도록 한 것이다. 이와 함께 경제개발구에 농업을 추가 지정한 것도 농업생산량 증가를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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