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8년 12월 3일

화폐타고 세계여행 | 이슬람의 시간, 메카를 중심으로 … 사우디아라비아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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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타고 세계여행 21

이슬람의 시간, 메카를 중심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시나씨 알파고(Şinasi Alpago) / <하베르코레> 대표

지난 10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유력 언론인이자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의혹 사건으로 다시 한 번 전 세계가 사우디 정부의 행보에 주목하게 되었다. 중동의 친미 아랍국가 1위로 꼽힌 동시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회가 없는 나라. 또한 표면상으로는 이스라엘과 관계가 우호적이지 않은 듯하지만, 물밑에서는 무척 깊은 상호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나라 사우디. 여러모로 아리송한 사우디에 대해 보다 깊게 알 수 있는 간단한 접근법은 바로 사우디 화폐를 살펴보는 것이다.

2015년 사우디 전 국왕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Abdullah Bin Abdulaziz)가 사망하자 동생 살만 빈 압둘아지즈(Salman bin Abdulaziz)가 국왕으로 즉위되었다. 이어서 2016년에는 사우디 화폐에 큰 변화가 있었다. 사우디 화폐 앞면에 실린 전 국왕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의 초상화가 현직 국왕 살만 빈 압둘아지즈의 사진으로 교체된 것이다. 사우디 화폐의 역사를 살펴봐도 새로운 국왕이 즉위하면 제일 먼저 바뀌는 것이 화폐 앞면 사진이었다. 사우디 왕가는 동남아나 유럽 왕가와 다르게 왕자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현직 왕의 권력 장악이 최우선 과제다. 그래서인지 화폐 속 사진 같은 상징적인 것부터 모든 사소한 것이 급격하게 변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슬람의 자부심, 최고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화폐 속에!

사우디아라비아 500 리얄

사우디아라비아 500 리얄

사우디 화폐 중 최고액권은 500리얄이다. 한화로 약 15만원이 넘는 500리얄에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현 국왕이 아닌,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세운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 알사우드(Abdulaziz Al Saud)의 초상이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초대 국왕 이후 차례로 국왕에 즉위한 6명이 모두 압둘아지즈 알사우드의 아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더 이상 초대 국왕의 2세 아들이 없기 때문에 향후 새로운 국왕이 선출될 경우 왕좌는 3세로 넘어갈 것이다. 500리얄 앞·뒷면을 장식하고 있는 곳은 메카(Mecca)에 있는 이슬람 신전 ‘카바(Kaaba)’다.

이슬람 교도들은 카바를 향하여 예배한다. 전 세계 인구 20%인 약 15억만명이 카바 건물을 향해 하루 5회 예배를 드리며, 카바로 순례를 향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사우디 정부가 이슬람 종교 핵심 건물인 카바를 자국 지폐에 넣음으로써 그 자부심을 통해 이슬람 세계에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것 같다.

사우디아라비아 100 리얄

사우디아라비아 100 리얄

500리얄 다음으로 최고액권 사우디 화폐는 100리얄이다. 500리얄이 이슬람 성지 1위인 메카를 상징한다면 100리얄은 이슬람 성지 2위인 메디나(Medina)를 대표한다. 100리얄에 그려진 건물은 ‘사도의 사원’이라는 의미를 가진 알 마스지드 알 나바위(Al Masjid al Nabawi)다. 알 마스지드 알 나바위는 이슬람의 첫 사원이고, 무함마드 사도의 묘지가 있는 성스러운 장소다. 이슬람교에서 메카의 카바 다음으로 성스럽게 여기는 곳이다. 평생 한 번은 성지순례를 떠나야 하는 의무를 가진 이슬람 신도들은 카바를 돌아본 후, 메디나에 가서 알 마스지드 알 나바위를 방문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 유적지를 화폐에 담은 이유?

사우디 화폐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역시 50리얄이다. 50리얄 앞면에 있는 건물은 ‘바위돔(Dome of the Rock)’이라고도 불리는 마스지드 쿱밧 아스-사크라(Kubbet es Sakhra)다. 현존하는 이슬람 건물 중 가장 오래됐으며, 사우디가 아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있다. 그리고 뒤쪽에 있는 건물은 알 악사(Al-Aqsa) 사원으로 이슬람에서 카바, 알 마스지드 알 나바위 다음으로 성스럽게 여기는 사원이다. 이 사원도 역시 마스지드 쿱밧 아스-사크라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위치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50 리얄

사우디아라비아 50 리얄

타국이 자국의 역사 유적지를 지폐에 담았다면 유적지를 보유한 나라의 국민들은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위협으로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불국사가 아르헨티나 화폐에 그려져 있다면 한국인 눈에는 자랑스러울 수 있지만, 한국과 근접해 있고 침략의 역사가 있는 중국이나 일본이 자국 화폐에 새긴다면 꺼림직하게 느껴질 것이다. 현재까지 사우디는 다수의 이슬람 국가들처럼 이스라엘과 공식 수교를 맺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불안감을 느낄지도 모르나 아직까지는 이스라엘이 이 문제에 대해 그렇게 불안해 보이지는 않는다.

알 악사와 쿱밧 아스-사크라 사원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에 있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애초부터 두 사원이 위치한 지역을 자국 영토에 합병하려 했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는 2009년부터 알 악사 사원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사우디를 포함한 많은 이슬람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 두 곳의 성지를 자국 화폐에 담았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협박하는 것이 아닌, 팔레스타인과 함께 이슬람 문화권에서 3번째로 중요한 지역의 독립을 원한다는 의미다.

사우디 가문의 내부 분위기는 처음 국가가 세워졌을 때 평화롭지 않았다. 초대 국왕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가 별세한 뒤 그를 이어 아들 사우드 빈 압둘 아지즈가 왕이 되었지만, 가문 내 잦은 파벌투쟁으로 반란이 일어나 왕권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 다음 왕은 조카에게 살해당했고, 이후로도 왕권에 얽힌 형제들의 슬픈 사연들이 오고 갔다. 지난 10월 카슈끄지 사건으로 사우디 왕가에서 또 무슨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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