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6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아프리카노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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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59 | “아프리카노 주세요”
 
 
 종업원이 무슨 커피를 마시겠는지 묻는 것이었다. ‘무슨 커피라니?’ 당황한 나는 다른 이들과 같은 것을 달라고 해 마신 것이 ‘아메리카노’다. 먹어보니 쓴맛이었다. 그때를 시작해 아는 것이 아메리카노 밖에 없으니 주문할 때마다 아메리카노만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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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서 커피를 마셔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외국에 다녀왔거나 해외 친척의 도움을 받는 사람, 고위간부, 무역일꾼, 그리고 장사를 통해 큰돈을 거머쥔 신흥갑부들을 제외하면 없다. 그 마저도 가끔씩 마셔보는 정도지 일상적으로 커피를 즐기는 사람은 극히 적다.
 
 영화의 배경은 남한인데 그 때마다 미국인이나 국군특무대 사람들이 서로 상대에게 “커피를 드릴까요?”하면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하고, 그러면 종업원을 향해 두 손가락을 펴들고 “커피 둘”하고 멋진 포즈로 주문한다. 종업원은 “선생님, 설탕을 넣을까요?” 하면 손님은 “아니오. 난 순수한 걸 좋아하오.” 하고 대답하는 장면들, 그 땐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지적이고 멋지고 고급스러워 보이는지 거기에 매료되어 친구들끼리 숭늉이나 사이다를 마시면서도 농담 삼아 그 흉내를 냈다. 그 때부터 커피란 내 머리에 ‘문명’과 ‘신사’의 상징처럼 새겨졌다.
 
커피, ‘문명’과 ‘신사’의 상징처럼 느껴져
 
 그러다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것이 1989년이다. 당시 구소련 기술자들이 내가 다니던 회사에 기술 전수를 왔었다. 소련사람들은 일을 하다가도 따로 마련된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식했다.
 
 한번은 내가 북한 측 기술자와 함께 용무가 있어 그 휴게실에 들어갔다. 마침 원탁에 앉아 소련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커피를 권했다. 난생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들 중 한명이 커피를 타는 것을 보고 있는데 문을 열고 간부가 나를 불러냈다. 그 바람에 생애 처음 커피를 마셔볼 기회를 놓쳤다. 간부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북한 기술자는 커피를 마시고 나왔다. 그런데 그가 소련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소문이 났다. 그 기술자는 당연히 커피를 어떻게 마시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소련 사람이 권하는 커다란 냉커피 한 컵을 선 자리에서 단숨에 들이켰다. 사이다나 맥주 같은 청량음료쯤으로 여긴 것이다.
 
 소련사람들은 눈이 등잔만큼 커지고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그러자 제 편에서 더 놀란 북한 기술자가 무슨 큰 실수를 했나보다 하고 당황하여 황급히 사라졌다. 소련사람들은 혹시 몸에 탈이라도 생겼을까 걱정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연을 얘기했는데, 그 때문에 온 회사에 화제 거리가 되었다.
 
 또 북·중 국경에 살던 필자의 한 친구는 어느 날 중국 상인으로부터 많은 양의 커피를 선물 받았다. 그는 더운물에 타 먹으면 된다기에 미숫가루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식량난이 극심한 때라 그는 커피를 배가 부를 만큼이나 물에 타 마셨다. 더 마시다 못해 나중엔 사무실 동료들이 통째로 들고 나가 큼직한 그릇에 한가득 쏟아 붓고 한 그릇씩 돌리는 커피 잔치를 베풀었다.
 
아프리카노? 아메리카노?
 
 필자는 남한에 와서야 커피를 처음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커피의 종류가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커피는 다 한 가지인 줄 알았다. 어느 날 광화문역 대형서점에 있는 커피숍에 여러 사람과 함께 갔다. 그런데 종업원이 나에게 무슨 커피를 마시겠는지 묻는 것이었다. ‘무슨 커피라니?’ 당황한 나는 다른 이들과 같은 것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마신 것이 ‘아메리카노’다. 먹어보니 쓴맛이었다. 이것을 왜 먹나 싶었다. 그러나 그때를 시작해 아메리카노가 내 단골메뉴가 되고 말았다. 아는 것이 아메리카노 밖에 없으니 주문할 때마다 아메리카노다.
 
 그것도 순조롭게 단골메뉴가 된 것은 아니다. 아메리카노를 마셔본 후 혼자 커피 마시러 갔었다. 그런데 뭐 아는 것이 있어야 말이지, “아프리카 커피 주세요.”했다. “예? 아프리카 커피요?” 종업원이 되물었다. “아프리카 커피 중 어떤 커피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아차, 이 이름이 아니던가. 찰나에 얼핏 떠오른 이름이 튀어나왔다. “아, 거 아프리카노 말입니다.” 그 말에 종업원이 웃는다. “고객님, 지금 아메리카노를 말씀하시는 거죠.” 이크! 그게 아메리카노였지. 이런 망신이 어디 있나.
 
 그래서 아메리카노를 받았고, 그 다음번엔 거기에 시럽을 타면 쓴맛이 완화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내 입맛에 맞게 단맛 쓴맛을 혼합할 줄 안다. 이 정도면 필자는 그래도 괜찮은 축이다. 남한에 온 지 20년이 되어오는 어떤 분은 아직도 커피 이름을 한 가지도 모른다. 안다는 것은 자판기 커피뿐이다. 그분도 평양에 살 때 어쩌다 생긴 커피를 솥에 푹 끓여먹으려다 타버려 그냥 버렸다던가. 그분을 보면 나의 무지도 위안을 얻는다.
 
 남한에선 누구에게나 일상이 된 커피문화, 손님이 찾아와도 커피를 권하는 것이 예의로 되고 그것을 어울려 마시며 소통하는데, 북한에선 커피가 아니라 손님에게 담배를 권한다. 그래서 담배를 ‘인사초’라고 말하기도 한다. 언제면 북한 주민도 남쪽처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세상이 열릴지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도명학 / 망명북한작가펜(PEN)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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