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7월 1일

통통 인터뷰 | “탈북 아이들,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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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 인터뷰 | 이승주 | 바이올린 강사
“탈북 아이들,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ITV_201407_37음악은 사람을 치유하고 세상과 교감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지닌다. 이승주 씨는 탈북 청소년들에게 음악의 힘을 선물하고 있다. 그는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의 하모니네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두리하나국제학교에서 바이올린 수업을 진행 중이다. 하모니네이션은 음악을 통한 즐거움으로 휴머니즘을 실현하는 음악교육이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이승주 씨는 재단에 조금씩 후원하며 지금의 아이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 음악만 알고 살았던 평범한 그의 일상에 탈북 청소년들이 자리 잡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수업에는 어려움도 따랐다. 처음 닥친 난관은 예상치 못한 의사소통 문제였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북한 사투리는 알아듣기가 어려워 되묻는 일이 다반사였다. 강한 북한의 억양은 의도와 달리 공격적으로 들려 종종 당황하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중국에서 오래 살아 한국어를 못한 채 중국어만 사용기도 했다. 아이들도 답답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선생님, 왜 이렇게 못 알아들으세요?”라고 말하면 오히려 미안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두리하나의 수업은 다른 그룹과는 조금 달랐다. 아이들은 너무나 뻣뻣했다. 강인한 성격을 대변하는 것일까, 몸에 들어간 긴장이 아직껏 풀리지 않은 탓일까, 아이들은 턱에 바이올린을 얹고, 활을 쥐는 과정에서는 유독 굳어있었다. “악기를 다룰 때는 힘을 빼야하는데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또래 친구들보다 유난히 투박한 손은 그동안의 짧은 생이 얼마나 거칠었는지를 말해주기도 했다. 이승주 씨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천천히, 반복적으로 아이들과 호흡해갔다. 그러자 투박한 손가락은 현을 하나하나 눌러가며 서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무대 위의 아이들, 정말 예쁘게 빛났어요”

지난 1월 11일 서울 영산아트홀에서 열린 ‘2014 하모니네이션 페스티벌’ 공연 모습. 악기를 다루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지난 1월 11일 서울 영산아트홀에서 열린 ‘2014 하모니네이션 페스티벌’ 공연 모습. 악기를 다루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음악을 통해 마음을 여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 우리 각자가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연주해볼까? 그럼 즐거운 소리가 나올 거야.”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는 북한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던 것이 가장 즐거웠어요.” 두리하나학교에서는 가급적 북한에서의 삶이나 개인적인 가정사를 묻지 않는다. 탈북 과정에서 가족의 해체를 겪고, 정착 과정에서 생긴 어려움을 안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평범하게 하는 질문들이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친구가 먼저 북한에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것은 서로가 정을 쌓고 그만큼 믿음이 자랐다는 증거였다. 작지만 눈에 띄는 변화였다.
 
 음악을 배우는 학생들의 표정도 점차 밝아지고 있었다. 멜로디, 리듬, 좋은 소리를 만드는 데 정성을 쏟으며 마음의 벽도 허물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 행동에도 한결 여유가 생김을 느낄 수 있다. 처음 바이올린을 배울 때 딱딱했던 몸짓은 한결 가볍고 부드러워졌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음악이 삶을 즐기는 도구가 되길 바라죠. 잠시나마 숨을 돌리는 과정에서 마음에 여유를 갖는 시간을 제공하고 싶어요.”
 
 드디어 그동안 쌓아온 실력을 뽐낼 기회가 생겼다. 지난 1월 재단에서 마련한 ‘2014 하모니네이션 페스티벌’ 일정이 잡혔다. 이날 공연을 위해 몇 달간 맹연습에 돌입했다. 합주는 혼자하는 공연이 아니기에 단원들과의 팀워크가 중요하다. 특히 각자가 처한 환경이 다르고, 개개인의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 ‘하나’라는 이름으로 뭉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연주 중 틀린 친구에게 불만을 호소하고, 조금 뒤처지는 친구에게는 답답함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균열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틀린 친구는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함을 나타냈고, 뒤처지는 친구는 개인적으로 연습하며 진도를 맞춰갔다.
 
 공연 당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아이들은 무대 위의 서로를 믿었다. 리허설도 없이 올라간 무대에서 아이들은 완벽한 하모니를 보여줬다. 몇 달간의 노력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무대 뒤에서 연주를 지켜보던 이승주 씨는 가슴 벅찬 뿌듯함을 느꼈다. “집중력을 발휘하는 아이들 한명 한명의 얼굴이 정말 예쁘게 빛났어요.” 이날 공연은 아이들의 자신감을 높이는 계기이기도 했다. 보통 자신의 배경을 부담스러워 하며 움츠려 있던 탈북 청소년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 한다. 하지만 자신들을 향한 4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모두 음악의 힘이었다.
 
 처음 바이올린을 잡은 탈북 청소년들은 기본적인 ‘도레미’ 음계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니며 쉽게 음악을 접하는 남한 아이들과 달랐다. 음계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공연에 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들이 일취월장 할수록 이승주 씨는 기쁨을 맛보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뜻 있는 후원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어요. 많은 배움의 기회를 나눠주기 위함이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지치진 않을까 걱정도 되요.” 악기라는 것이 연습량이 많을수록 실력이 향상되는 법인데, 아이들은 너무 바빴다. 북한에서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배움의 기회를 어른들의 욕심과 상대적 보상심리로 과하게 전달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물론 아이들을 위해서이지만, 음악뿐만 아니라 영어, 미술, 체육 등의 각종 수업을 받으며 어느덧 학원순례에 지치는 남한 아이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균형점이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북한 보는 관점이 바뀌었어요. 아이들의 고향이잖아요”
 
 이승주 씨는 가능할 때까지 이 일을 할 것이다. 한 학생이 “선생님, 끝까지 올 거예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너희가 있으면 계속 와야지.”라는 대답에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그럼 우리 끝까지 함께 해요.”라며 웃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수업에 참여했다가 오래지 않아 관둔 선생님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됐던 것이다. 정이 많이 들어서도 그렇겠지만, 순수한 마음도 느껴졌다. 수업을 하며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는 아이들을 보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훗날 이 아이들이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하면 굉장히 보람 있을 것 같은데 잘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라며 수줍게 소망을 털어 놓기도 한다.
 
 이승주 씨는 바이올린을 통한 음악교육을 제공했지만, 그 역시 아이들에게 배운 점이 많다. 무엇보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게 되었다. “예전에는 북한이 낯설고 통일을 어렵게 느꼈다면, 이제 북한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어요. 그곳 사람들도 우리처럼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을 거예요. 우리 아이들의 고향이잖아요.”
 
 교실에 울려 퍼지는 멜로디를 통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나눈 선생님과 아이들. “끼기긱” 거친 바이올린 소리가 점차 부드러운 선율로 바뀌어 가는 만큼 아이들은 나이에 맞는 미소를 찾아가며 꿈을 키워 나간다. 함께 연주하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 음악으로 하나되는 교실 속 작은 하모니는 차창을 넘어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진다.
 
 
선수현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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