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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 계란 훔치면 할머니는 덤으로? 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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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45 | 계란 훔치면 할머니는 덤으로?

함경남도 함흥시 성천구역 농민시장. 습한 여름이 지난 가을이어서 그런지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로 뽀얀 먼지가 쉴 새 없이 일어난다. 여러 줄로 길게 늘어앉은 사람들의 지친 모습이 보기에도 안쓰럽다. 중국제 크림 한 두통을 놓고 입이 찢어지게 하품하는 아주머니가 보이는가 하면 먹일 것이 없어 끌고 나온 듯한,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강아지를 안고 나온 사람도 보인다. 특이한 광고판도 보였다.

어슬렁대며 나타난 세 명의 날강도들

“팽 돔, 꺽 막힘, 한 모금 빨면 전봇대 잡고 30분!” 누런 종이에 쓴 오리발 글씨다. 담배가 너무 독해 한 모금만 빨아도 머리가 팽 돌고, 목이 꺽꺽 막히며 전봇대를 잡고 30분쯤 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전혀 꾸밈새 없이 소박한 우리식 상품광고다. 북한 사람들은 이젠 잎담배에 절어 독하지 않으면 담배라 여기지도 않는다.

점심 때가 거의 되어갈 무렵 갑자기 장마당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떡이며 두부며 국수 같은 것을 가지고 나와 손님을 기다리던 아낙네들은 서둘러 그걸 감추고 위에 보이지 않게 덮느라 정신들이 없다.

웬일일까? 살펴보니 보기도 싫은 낮도깨비 셋이 나타났다. 계급장을 보면 분명 군인인 것 같은데 몰골을 보면 그걸 뭐라 해야 할지, 아무래도 도깨비라 해야 맞을 것 같다. 셋 중 둘은 신발조차 군대에서 내주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서 뭣과 바꿔 먹었는지 군화는 안 신고 늙은이들이 집에서나 신는 넓적 고무신을 꿰고 철떡거린다. 한 놈은 군모조차 없다. 쓰긴 했는데 여자들이 쓰는 꽃모자다. 꽃모자이긴 한데 필요에 따라 아무데서나 깔고 앉았던 듯 소똥처럼 누렇게 때가 얼룩졌다.

어디서 한 잔 걸쳤는지 얼굴은 수수떡 빛이고 뭔가 질겅질겅 씹어대는 모습이 참 가관이다. 그것들 때문에 결국 사람들은 서둘러 감출 것은 감추고 숨길 것은 숨기느라 정신이 없다. 그게 되레 기분 좋았는지 셋은 걸치는 사람들을 밀치며 가운데로 다가왔다. 다가온 곳은 다름 아닌 음식을 파는 곳이다.

모두가 자기 물건들을 부여잡고 그놈들이 지나가기만 기다리는데 할머니 하나만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연세 때문에 가는 귀를 잡수셨는지 주위가 그토록 술렁대는데도 계란 담긴 광주리를 앞에 놓은 채 끄떡끄떡 졸고 있다.

‘이런 긴박한 때에 저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모두가 조마조마해서 손에 땀을 쥐는데 셋은 태연하게 그 앞을 지나간다. 천만다행으로 그냥 지나가는 것 같다. 그것들도 사람이라 아무렴 연세 높은 할머니 걸 빼앗을 용기는 없었는지, 하지만 일은 바로 그 순간에 터졌다. 셋 중 마른 소똥모자가 비호같이 손을 날린다. 독수리가 병아리 채듯 불시에 할머니의 계란 광주리를 통째로 들고 내뺀다.

TS_201411_45“이 나쁜 놈아! 사람 죽는다. 이거 놔라!”

저게 글쎄 장군님이 키워낸 무적의 군대모습이란 것인가? 낯 두꺼운 강도로선 한 점 손색이 없다. 사람들이 기가 막혀 ‘우- 우-’ 하고 소리를 치는데 기상천외한 일이 펼쳐졌다. 광주리를 들고 도망치는 놈은 물론이고 할머니까지 허깨비처럼 먼지 덮인 길바닥에 넘어져 질질 끌려간다. 할머니가 끌려가며 비명을 지르는데 그래도 그 놈은 광주리를 놓지 않으려 힘을 쓴다. 장터 사람들이 욕지거리를 하며 왁 몰려들었다.

“야, 이 나쁜 놈아! 사람 죽는다. 이거 놔라!” 할머니는 그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알았던지 계란 광주리에 매단 밧줄 끝을 당신의 발목에 단단히 매놓고 있었다. 더는 어쩔 수 없어 광주리를 내려놓고 도망가는 소똥모자를 보고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폭소를 터뜨렸다.

요즘 북한 내 장마당을 살펴보면 특이한 일이 많이 눈에 띈다. 음식 같은 것을 덮쳐 먹던 꽃제비들도 슬슬 눈치만 볼 뿐 옛날처럼 마구 덤비지 못한다. 살펴보면 덩치 큰 다른 꽃제비 몇이 음식 파는 시장 안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장사를 하는 아주머니들이 점심과 저녁을 제공하고 세워 둔 일명 파수꾼이다.

그걸 보호자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 덩치 큰 꽃제비들은 하루 두 끼 얻어먹기 위해서라도 하루 종일 음식장사 아주머니들 주위를 돌며 틈을 노리는 꽃제비들로부터 음식그릇들을 아주 믿음직하게 지킨다.

이지명 / 망명작가펜(PEN)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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