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4년 12월 1일 0

세계분쟁 25시 | 세계 최대 유랑민족, 중동의 집시 ‘쿠르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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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시 8 | 세계 최대 유랑민족, 중동의 집시 ‘쿠르드족’
 
 
시리아의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피해 고향을 떠나 온 쿠르드 난민들이 지난 10월 24일 터키의 수루크 부근 유물탈리크 국경 검문소 철조망을 넘어서고 있다.

시리아의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피해 고향을 떠나 온 쿠르드 난민들이 지난 10월 24일 터키의 수루크 부근 유물탈리크 국경 검문소 철조망을 넘어서고 있다.

 이슬람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사 중의 한명으로 인식되고 있는 살라딘을 배출한 쿠르드족. 그들은 오랜 숙원인 독립 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오늘도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선사시대부터 이란-러시아 국경 부근 아라라트 산 북서쪽에서 티그리스강 지류인 디알라강 유역, 그리고 현재는 이라크, 이란, 터키, 시리아, 구소련 국경을 접하는 쿠르디스탄이라 불리는 험난한 산악지대에 살고 있다. 4천년 역사 속에서 ‘중동의 집시’라는 별칭을 가진 이들은 2천만명이 넘는 인원이 고유한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터키의 동부를 비롯하여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르메니아 등지에 흩어져 유목생활을 하면서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무장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다.
 
 쿠르드족 민족주의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면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발표한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힘입어 쿠르디스탄 국가를 수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하지만 1920년 연합국과 오스만 제국이 체결한 세브르조약에서 쿠르디스탄을 단일 국가로 승인하는 것이 지켜지지 않았고, 1923년 로잔조약에서 쿠르디스탄의 국가 수립에 대한 조항마저 삭제됐다.
 
독립국가 11개월 만에 좌초 … 유혈과 수난 되풀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어진 중동의 정치적 국경선은 쿠르디스탄 지역을 더욱 세분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쿠르드족 민족주의자들은 여러 차례의 무장 투쟁을 통해서 독자적인 국가를 수립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주변 국가들의 무력에 의해 번번이 좌절되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이 점령하고 있던 이란 영토 내의 쿠르드족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쿠르드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으나 소련군의 철수로 11개월 만에 좌초되고 말았다. 그 후 오늘날까지 쿠르디스탄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무장 투쟁을 통해 반란을 일으키고 박해를 받는 유혈과 수난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터키는 현재 쿠르드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국가이다. 터키 전체 인구의 약 25%에 해당하는 약 1,200만명의 쿠르드족이 터키의 동남부에 거주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쿠르드족을 ‘산악 터키인’으로 부르며 쿠르드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주요 도시에서 쿠르드족의 고유 의상을 입는 것까지 금지시키고 있다. 이러한 터키의 탄압에 대항하여 쿠르드족은 1978년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을 중심으로 쿠르드 노동당(PKK)을 결성하여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다. PKK는 1984년부터 본격적인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는데, 지금까지 3만2천여 명의 쿠르드측 인원이 터키 정부와 PKK의 충돌로 사망했으며, 터키측은 6,482명의 군인과 5,560여 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지난 10월 11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수천명의 쿠르드인들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시리아 쿠르드족 도시 코바니 공격을 비난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들고 있는 깃발 속 인물은 터키 쿠르드족 반군 ‘쿠르드노동자당(PKK)’ 지도자로, 종신형을 받고 복역 중인 압둘라 오잘란

지난 10월 11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수천명의 쿠르드인들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시리아 쿠르드족 도시 코바니 공격을 비난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들고 있는 깃발 속 인물은 터키 쿠르드족 반군 ‘쿠르드노동자당(PKK)’ 지도자로, 종신형을 받고 복역 중인 압둘라 오잘란

 반면 이란은 쿠르드족의 동화를 유도하는 유화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수니파인 이란의 쿠르드족은 이란의 시아파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종교적인 박해를 받고 있다. 이란의 쿠르드족 역시 이란 혁명 이후 현재까지 자치권 확보를 위해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라크 지역에 거주하는 쿠르드족도 다른 국가와 비교해 볼 때 별반 나은 상황에 놓여 있지는 않다. 이들은 이라크의 북부 지역에 거주하면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이라크 정부와 격렬한 내전을 전개했다. 그래서 1970년 이라크 바스당 정부는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쿠르드족에 자치권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발발하자 이란은 이라크 내의 쿠르드족에게 무기를 제공하여 이라크군을 공격하게 했다. 그 결과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88년 이라크는 쿠르드족의 거주지인 북부 이라크 지역에 독가스를 살포하여 많은 쿠르드족을 학살했다. 당시 후세인 정권은 이것을 쿠르드족의 아랍화라고 불렀고, 쿠르드족이 떠난 지역에 이라크인들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다.
 
 한편 미국은 1991년 걸프전을 종결하면서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라크 남부에 거주하는 시아파와 북부의 쿠르드족의 무장봉기를 조장하고 독립운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행동을 감지한 터키가 불만을 표시하자 미국은 그들이 추진하던 대쿠르드 지원정책을 철회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국제사회는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독립 문제를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IS, 쿠르드족 집단학살
 
 2012년 시리아 정부군과 쿠르드족 단체들과의 충돌은 전년도에 비해 악화되어 3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을 입었다. 터키에서는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폭력이 지속되어 500명 이상이 사망했고, 이란 정부군과 쿠르디스탄 자유생명당과의 충돌로 4명이 죽고 4명이 다쳤다. 2013년에 터키지역에서는 충돌이 다소 완화되었지만 40여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시리아지역에서는 이슬람국가(IS)에 의한 쿠르드족 탄압으로 320여 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을 입었다. 2014년에도 IS가 쿠르드족을 집단학살하는 등 쿠르드족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중동세계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미국과 쿠르드족 거주지역을 둘러싼 여러 중동국가들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쿠르드족이 4천년의 방랑을 청산하고 완전한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쿠르드족 문제는 21세기 중동 지역의 평화 정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이며 지구적인 평화와 인류공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세계 최대의 유랑민족 쿠르드족의 염원인 ‘쿠르드족 거주지역에 독립국가를 건설’이 21세기 지구촌이 해결해야 할 매우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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