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6월 2일 1

북에서 온 내친구 | “사람들 눈이 무서워요” 201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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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4

“사람들 눈이 무서워요”

 

탈북자 중에는 여성이 훨씬 많다. 그것은 북한의 여성들이 어려운 살림을 돕기 위해 중국 장마당을 오가며 경제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국경선을 넘은 북한의 여성들이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조선족과 억지 결혼을 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 속에서 겪는 인권 침해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청소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혼이 뭔지도 모르고 단지 신분 세탁을 위해 아버지 같은 조선족 남자와 결혼을 해 뜻하지 않게 아기 엄마가 된 미희를 생각하면 절로 가슴이 아프다.

미희를 만난 건 얼마 전 남북 청소년들이 함께 모인 통일캠프에서였다. 미희는 하나원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선지 매우 낯설어 했다. 함경북도 화대에서 태어난 그녀는 가난해서 학교도 제대로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부잣집 딸보다 더욱 기품이 넘치며 단아했다. 처음에는 나와 눈 마주치는 것도 쑥스러워 하던 미희가 시간이 지나자 마치 막내 동생처럼 살갑게 다가왔다. 미희는 어딜 가나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곤 속삭이듯 말했다. “제 손 놓지 말아 주세요!”

“제 손 놓지 말아 주세요!”

땀으로 손이 끈적거려도 내 손을 놓지 않는 미희를 보며, 뭔가 속에 할 이야기가 많아 보였다. 꿈같은 일주일이 지나고 어느덧 캠프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운동장에는 캠프파이어를 위해 장작이 가득 쌓여 있고 아이들은 둥글게 모여 있었다. 스텝이 장작더미에 휘발유를 붓고 성냥을 긋자 타다닥, 소리와 함께 불꽃이 피어났다. 밤하늘이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환한 불빛이 대낮이라도 되는 줄 아는지 매미가 목청껏 울었다.

남과 북의 아이들, 그리고 스텝들은 어깨동무를 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모두가 상기된 얼굴들이었다. 밤하늘의 별들도 더욱 영롱한 빛으로 열기를 더해주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모두 캠프파이어의 열기 속에서 흥분한 상태인데 유독 미희만은 얼굴을 펴지 않았다. 처음에는 쑥스러워 그런가보다 싶어 모른 체했다. 급기야 미희가 얼굴을 감싼 채 어둠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미희의 뒤를 따랐다. 미희는 본부석이 있는 등나무 밑 의자에 앉아 오열하고 있었다. 들썩이는 미희의 등이 너무나 서글퍼 보였다. 깊은 사연이 있는 듯 싶었다. 미희는 한참을 울고 난 뒤, 벌건 눈으로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한 세상 다 산 여자처럼 신산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미희가 내 앞으로 사진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난 얼떨결에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에서 갓난아기가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어쩐지 아기의 해맑은 눈이 미희를 닮은 것 같았다. 순간, 예감이 이상해 미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미희는 부끄러운 듯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가 국경선을 넘어 와 연길에 숨어 지낼 때 낳은 아이예요. 버리고 떠날 때는 몰랐는데… 오늘밤처럼 행복한 날에는 아기가 더욱 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아요!”

쿵, 내 가슴에서 들려오는 굉음이었다. 갓 스무 살 밖에 안 된 미희가 아기 엄마였다니. 내 눈엔 미희 자체가 털보송이 아이일 뿐인데. 난 미희가 날 놀리는 게 아닌가 싶어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오늘처럼 행복한 날엔 아기가 더 보고 싶어요!”

“몇 날 며칠을 굶으며 수비대의 눈을 피해 찾아 간 곳이 용정의 깊은 농촌이었어요. 주인아저씨가 하얀 이밥에 맛있는 돼지고기를 내놓으며 맘껏 먹으라고 했어요. 정말 맛있었어요. 고마웠지요. 북에서는 생일날에도 못 먹던 음식이었으니까요. 근데 그게 덫이었어요. 주인아저씨가 저를 나이든 한족 늙은이한테 팔아 버린 거예요. 늙은이의 노리개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배고픈 북한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어요. 임신이 뭔지도 모르던 내가 아이를 낳고 만 거지요. 그러다 아랫동네에 나와 비슷한 처지인 언니를 만나 밤에 몰래 도망쳤어요. 아이에 대한 미련 따위는 없었어요. 내가 원해서 낳은 아이도 아니고… 징그러운 조선족 아저씨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아기가 너무나 보고 싶어요.”

미희는 길고도 험한 인생 역정을 마치 연극 대사 외듯 담담한 톤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얼마나 아팠으면 저토록 무심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나는 가슴이 아프다 못해 저릿저릿 해져 왔다.

그동안 탈북 여성들이 겪은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일부분일 것이라 믿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언론에서 너무 부풀려 보도하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꽃다운 나이에 원치 않는 상황에서 엄마가 되었고, 아기를 버리고 자유를 찾아 왔지만, 밤마다 아기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다는 애 같은 엄마 미희! 이 아이의 눈물은 누가 닦아 줄 것인지. 미희 개인의 불행사로만 그냥 밀어 놓기에는 너무도 아픈 우리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미희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긴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 미희가 며칠 전 나를 찾아 와 하소연을 했다. “전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요. 북한 여성들이 중국에서 당하는 걸 방송에서 본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아요. 그들이 제 과거를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숨고 싶어요. 특히 방송에서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겪은 일 등이 방송되고 난 다음 날은 더욱 그래요.”

어쩔 수 없이 아기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캐묻는 듯한 언론이 무섭다는 미희를 보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미희 자체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도 치유 받아야 하지만, 우리가 탈북 여성들을 바라보는 선입견 또한 지양되어야 할 항목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박경희 / 하늘꿈학교 글쓰기 지도교사

 

Q. 우리 반에 북에서 온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에게 탈북과정을 물어봐도 될까요?

A. 북에서 온 친구에게 탈북과정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고 아픈 기억일 수 있는데 친구에 대한 배려 없이 무턱대고 물어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이가 된 이후에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서 물어볼 수야 있겠지만 우선 탈북과정에 대해 궁금한 것은 다양한 책과 자료들을 통해 알아두는 편이 현명합니다. 북에서 온 친구들은 탈북하는 과정에서 많은 일들을 겪습니다. 소위 사선을 넘어온 셈인데 보통의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겪으며 탈북한 친구들도 있고, 먼저 온 가족의 도움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탈북한 경우도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이 탈북을 하게 된 주된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과 자유가 없는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나지만 탈북청소년의 경우 가족을 따라 탈북한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계획하지 않고 우발적으로 친구를 따라 집을 나서는 바람에 갑자기 탈북하거나 못된 사람들의 거짓말에 속아 탈북해 오랫동안 중국 시골에 머물며 지내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에 입국하기까지 중국 외에도 제3국을 거치게 되는데, 중국 사막을 걸어 몽골을 거쳐 오는 방법, 베트남을 거쳐 캄보디아나 라오스, 태국을 거쳐 오는 방법, 중국에서 미얀마와 태국을 거쳐 오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북에서 온 친구들이 주로 거쳐 오게 되는 동남아의 외국인 보호소는 열대지방의 좁고 밀폐된 시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신변의 위협과 인권유린, 기본권 박탈 등을 경험하게 되어 남한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전지현 / 화성시청 북한이탈주민 담당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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