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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줄맞춰 노래하며 학교로, 그땐 그랬지… 201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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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32

줄맞춰 노래하며 학교로, 그땐 그랬지

내가 자라던 시기, 정확히 1980년대 중반까지 북한 학생들은 개별적으로 학교에 등교하지 못했다. 학생들은 붉은 스카프를 매고 목청껏 노래 부르며 대열을 지어 등교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아침마다 학급별로 지정된 집합장소에 모여 갔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등교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 지각생을 의미했다. 학교에 들어갈 시간이 되기 전에 학급장이 먼저 출석 장악(점검)을 했다. 이때 지각생은 당연히 수첩에 적어둔다. 그리고는 매일 하루 총화시간에 등교 지각생들부터 지적해 비판했다. 지각이 반복되는 학생은 담임선생님이나 학급장이 청소를 시켰다. 학교에는 단 조직이 있어 교문에 들어설 때마다 학급별로 출석률을 확인하고 순위를 매기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교문에서 학급별 인원 장악, 학생별 옷차림 검열, 제일 늦게 등교하는 학급 등을 확인한 후 단 위원회에 보고했다. 여기서 옷차림 검열은 학생들이 넥타이(붉은 스카프)를 착용했는지, 책가방은 가지고 있는지, 바지주름이 있는지, 상의가 깨끗한지 등 용의검사를 의미한다.

북한 청소년들이 단체로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걷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청소년들이 단체로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걷고 있다. ⓒ연합뉴스

함께 등교하던 그 시절, 돌아보면 그리워

등교뿐이 아니다. 하교할 때도 학급별로 대열을 지어 노래를 부르며 교문을 벗어나 일정 구간에 도착해야 헤쳐졌다. 당시 단 열성자들의 세도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다시 말해 단 위원장, 단 부위원장 등 단 최고 열성자들의 권세였다. 이 애들의 눈에 한 번 잘못 찍히면 몇 번씩이나 반복동작을 시켰다. 줄을 맞추지 않았다느니, 노래 소리가 약하다느니, 뒤에 선 일부 학생들이 키득거린다느니 등 온갖 트집을 잡아 반복동작을 시켰다. 아이들끼리의 문제가 선생님들 사이에도 번져 이것을 가지고 서로 얼굴을 붉힌 적도 한 두 번이 아닌 것 같았다. 담임들이 이에 대해 단 지도원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단 열성자들을 따로 불러 혼내는 현상도 있었다. 그러면 담임과 단 지도원과의 싸움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풍경이 사라져버렸다. 시기적으로는 1980년대 중반인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북한 학교에 대해 이런 모습을 떠올리며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광경은 낡아도 한참 낡은, 시대가 지나도 한참이나 지난 북한 학생들의 모습이다. 지금은 북한 천지 어디를 둘러보아도 학생들이 열을 지어 학교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오히려 지금 아이들이 옛날 영화를 통해 그런 모습을 보며 웃을 정도다. 노동당이나 교육성, 혹은 청년동맹에서 어떤 지시가 있어 이것이 없어진건지 이유는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자연스레 등교하는 현상이 어느 일개 학교가 아니라 모든 학교들에서 나타났다. 그렇지만 북한 사회 특성상 아침 등교에 대한 어떤 지시가 있었기에 없앴지 그렇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찌 보면 그 때 그 모습이 그리울 때가 많다. 교육현장에서 오래 일한 교사들일수록 옛 모습을 그리워하는 향수병 같은 것이 있다. ‘그래도 그때는 규율이라도 있었는데, 그때가 보기 좋았는데, 그때가 교사 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등등의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반면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규율은 단 열성자들이 정문 앞에 서서 등교하는 학생별로 옷차림 검열을 하고 지각생들을 장악하는 일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아침 등교시간이면 엄마, 아빠의 차를 타고 학교 앞에 내리는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교문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풍경이 북한에서는 없다. 우선 가정마다 자가용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리 간부집 아이들이라고 해도 사회적 비난 때문에 아버지의 관용차를 타고 학교에 올 수 없었다. 자전거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처럼 자전거를 보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 부유한 집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면 단단히 혼이 나고는 했다. 단, 외국어학원이나 예술학원, 1중학교처럼 지역학교가 아닌, 시나 도에 하나밖에 없는 학교들에선 통학거리가 먼 학생들을 위해 자전거를 허락했다.

자전거 등교, 할 수 없다?

문제는 자전거를 보관하는 장소와 분실이었다. 학교 앞에 보관하자니 미관상 보기 좋지 않았고, 당시 북한의 교육기관으로서 면모도 서지 않아 보였다, 할 수 없이 학교 뒷마당에 보관하니 도난사고가 이따금 일어났다. 북한에서는 자전거 가격이 비싸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자전거만 해도 중국, 일본 등지에서 수입해 온 중고 자전거였지만 일반 아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간혹 비싼 자전거를 타고 오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것을 학교 마당에서 도난당하면 학생이나 부모, 학교 입장에서도 난처한 것은 매한가지일테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북한의 등하교 모습이 점차 한국과 비슷해져 가는 것 같다. 사회주의 분위기가 퇴색되고 시장화 바람이 확산되면서부터일까. 조금씩 변화하는 북한의 모습을 기대해도 되려나.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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