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10월 1일 0

북에서 온 내친구 | “명절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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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8

명절이 싫어요!”

북에서 온 친구들 중에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혼자인 경우가 많다. 탈북 청소년들에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거주 문제이다. 탈북자 중 성인은 임대 아파트가 주어지지만 스무살 이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친척이나 지인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탈북 아이들, 음식보다 그리운 건 정()

내가 나가고 있는 하늘꿈학교에서는 기숙형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주거 문제가 가장 시급하기 때문이다. 학교 근처에 전세로 얻은 ‘그룹 홈’에서 학교 선생님이 함께 살며 아이들을 돌본다. 배고픈 것보다 정이 더 그리운 탈북 아이들에게 선생님들은 기꺼이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되어 주었다. 그 모습에 참 많이 놀랐다.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치고 밤에는 아이들을 일일이 챙기는 것은 물론 개인 상담까지 해 주는 선생님들. 나는 속으로 ‘도대체 무슨 힘으로 저 많은 일을 해 나가는 것일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선생님들은 대부분 북한 선교에 뜻을 둔 분들이었다.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감당 못할 일을 하늘의 도움으로 한다는 걸 알고는 더욱 존경스러웠다.

이런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사랑을 먹고 사는 아이들일지라도, 때로는 텅 빈 가슴으로 북녘 하늘을 바라볼 때가 있다. 바로 명절이다. 특히 텔레비전에서 손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고향을 찾아 가는 사람들을 보며, 아이들은 넋이 나간다. 부럽다 못해 금방이라도 울음보따리를 터뜨릴 것 같은 분위기다.

“함께 그룹 홈에 있는 아이들끼리 송편을 만들면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아요. 각자 생각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짠해요. 모두 고향 생각이 나기 때문이지요.”

오랫동안 아이들의 ‘기숙 맘’으로 일하는 김은희 선생님은 아이들이 아파할 때마다 함께 마음앓이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실은 명절에 나도 시댁에서 차례 준비하고 손님 맞느라, 어린 시절 나고 자란 고향엘 못 갈 때가 많다. 그 때마다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콧등이 찡했다.

하물며 자동차로 두 시간만 달리면 닿을 곳인데, 절대로 갈 수 없는 나라. 휴전선 너머에 고향을 둔 아이들의 심정은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불현듯 지난해 추석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외며느리인 나는 추석 전부터 분주했다. 차례상 준비에 손님 맞을 음식 준비하느라 양어깨가 시릴 정도였다. 왁자지껄. 추석 손님이 모두 다녀 간 뒤, 진이 생각이 났다. 진이는 남한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친척이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외출을 했는데, 진이는 그룹 홈에 홀로 남아 있을 때가 많았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릿했다. 송편이나 먹었나, 싶어 전화를 걸었다.

“송편 못 먹었지?” 나는 괜히 죄스런 마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닙니다. 선생님. 교회에서 송편 만들어서 보내주셨어요. 맛있게 잘 먹었어요. 걱정마세요.” 일부러라도 쓸쓸하지 않은 척, 목소리를 높이는 진이가 기특했다. “그런데 진아, 북한에서도 추석에 송편 해먹니?” 나는 통화가 된 김에 북한의 명절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북에서는 설날에 송편을 먹슴다. 고성 등에서는 조랭이 떡국을 먹는다지만 제 고향 청진에서는 송편을 최고로 칩니다. 명절에 송편을 해 먹기 위해 한 달간 식량을 아껴 마련한 떡이기 때문에 더욱 맛있었슴다. 그런데 설에 비해 추석은 그리 특별하게 지내지 않슴다.” 북한은 추석이 아니라, 설날에 송편을 먹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럼 북한은 어느 명절을 가장 거하게 지내니?”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이 또 발동했다. 나는 탈북 이야기를 쓰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아이들에게 물었다. 진이는 내가 어린아이처럼 공손하게 물었더니 기분이 좋은 듯 싶었다. 전화선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점점 더 낭랑해졌다.

이산가족의 명절 가슴앓이 대물림 되는 것 같아

“북한은 김일성 생일이나 김정일의 생일 등을 가장 큰 명절로 생각합니다. 그 밖에 설은 민속명절이라고 해서 여기와 마찬가지로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세배도 하고 덕담도 주고 받슴다. 한 가지 특이한 건 온 가족이 김일성 동상 앞에 생화를 갖다 바치는 것이지요. 배가 고파 죽어도 수령님에게는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하는 게 그 쪽 현실이니까요.” 나는 진이의 설명을 들으며 남과 북의 명절 풍습 또한 참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진이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대 위에서 혼자 독백하는 배우처럼 슬픈 목소리였다. “선생님, 저는 대한민국에 와서 명절이 오는 게 가장 싫습니다. 내 처지가 찬비 맞은 새처럼 처량 맞아 보이고 쓸쓸합니다.” 급기야 자기 속내를 털어놓는 진이에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가까우면 선생님이 만든 음식이라도 나눠 줄 텐데. 미안하다. 미안하다…….” 간신히 이 말만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명절이 싫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에도 한동안 진이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들렸다. 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된 어르신들도 명절 때면 더욱 가슴앓이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 아픔은 나이 어린 탈북 아이들에게도 대물림 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 모든 것의 해결은 통일이 속히 되는 것이리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이여 오라.” 이 노래가 그 날처럼 절절하게 와 닿았던 적은 없었다.

박경희 / 하늘꿈학교 글쓰기 지도교사

 

Q. 명절이 되면 고향이 더 그립고, 우울감 마저 들어요. 이런 마음 어떻게 달래면 좋을까요?

A. 명절에는 북에 있는 가족, 친척, 친구들이 더욱 생각날 수밖에 없죠. 고향에 갈 수도, 온 가족이 모일 수도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의 일부 지역에서는 핸드폰으로 연락이 가능한데, 북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이 닿는 일부 북한이탈주민들은 명절이 되면 더 간절히 가족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을 돕는 기관들은 이런 사정을 이해해 명절에 다양한 행사를 진행합니다. 합동으로 차례상을 차리기도 하고, 고향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자 임진각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회단체에서 명절 음식을 만들어 나누기도 하고, 조그마한 선물을 증정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관심과 애정에도 불구하고 고향 생각과 그리움은 여전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명절마다 맞닥뜨리는 그리움을 그냥 내버려두지 말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이웃에게 관심가지는 것은 어떨까요? 최근 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북한이탈주민 봉사동아리가 자주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른들과 달리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돈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나눌 수 있습니다. 각 시·군·구마다 자원봉사센터가 운영되고 있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자원봉사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하고 봉사활동을 신청하면 됩니다. 봉사의 기쁨과 보람을 누리는 친구들을 기대해볼게요!

전지현 / 화성시청 북한이탈주민 담당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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