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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 바람 부는 대로 돛 다는 ‘터널 인생’이란…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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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스토리 56

바람 부는 대로 돛 다는 터널 인생이란

평양 지하철은 두 개의 노선으로 이루어졌다. 수십 개의 역으로 이루어진 노선 상 전동차가 논스톱으로 통과하는 역이 광명역이다. 광명역 지상은 바로 주석궁이 있는 구역이기 때문이다. 평양 지하철은 100m 정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전동차를 탈 수 있게 만들었다. 전쟁 시 공중폭격으로부터 평양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장소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광명역에는 50~100m 정도 더 아래로 내려가면 탱크 두 대가 교차할 정도의 비밀 지하터널이 또 있다. 이 비밀 지하터널은 시 중심은 물론 외곽까지 연결된 터널이다. 군사정변 같은 난이 일어났을 경우 호위국 산하 기갑장비들이 신속히 빠져나가 평양 중심가를 일거에 장악해 소위 ‘장군님’의 신변을 지키기 위함이다. 지하터널은 평시에 김정일 혼자만이 사용하는 비밀통로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이 통로를 이용했다면 그건 말 그대로 자살행위였다고 당시 호위국 군관으로 있었던 A씨는 증언했다.

김정일 집권 시 이 독식 비밀통로에서 있었던 일을 그는 아주 재미있게 들려줬다. 지난 2001년 1월 초였다. 그해따라 폭설이 많이 내렸는데 어느 날 교외에 나가 있던 장성택은 김정일의 긴급호출을 받고 눈길을 달리다가 차가 갇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비밀통로를 이용하려 했다. 그러나 입구에서 장성택은 호위군관의 제지를 받았다. 차에 앉은 사람이 다름 아닌 장성택임에도 터널 경비 책임자인 군관 송정국은 마치 로봇처럼 “이곳은 최고 사령관 외에는 누구도 통과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장성택은 겸손하게 정말 미안하다며 장군님의 긴급호출인데 폭설 때문에 제때에 갈 수가 없어 그러니 장군님께는 내가 잘 말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장군님 전용 비밀통로 이용한 장군님의 매제

다른 사람도 아닌 장성택이 이렇듯 예의를 갖춰 손수 담배까지 권하며 사정하자 송정국은 다른 생각 없이 그를 통과시켰다고 했다. 장성택은 김정일의 매제였으니 그것이 그렇게 큰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출구경비 군관의 보고에 의해 이 사실이 곧 김정일에게 알려졌다고 했다. 군율을 어긴 사실에 대노한 김정일에 의해 송정국은 다음날로 군복을 벗고 양강도의 깊은 산골로 쫓겨 갔고 있는 사실을 원칙대로 보고한 군관은 해당 경비책임자로 승진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비밀통로 통과 사건이 잠잠해진 3년 쯤 지난 뒤에 현실로 나타났다. 인민보안성 무역회사로 근무지를 옮겼던 A씨가 어느 날 물자 때문에 장성택이 주관하는 인민보안성 35국에 갔는데 거기서 호위국 시절에 친구로 지냈던 송정국을 만나게 되었다. 35국은 장성택이 김정일을 위해 만든 초대소 형식의 유흥시설이었고, 보안성 특별관리로 정부 수반을 최상으로 모시는, 말하자면 전용 유흥시설인 셈이었다.

장 부장 때문에 쫓겨났다가 장 부장 때문에 승천했네

그런데 그런 곳에 송정국이 버젓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것도 바닥이 아닌 간부로 말이다. “어떻게 된 거야?” 하고 A씨가 묻자 송정국은 “장 부장 때문에 쫓겨났다가 장 부장 때문에 다시 승천했네.” 하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장성택이 인간다운 데가 있었다. 자기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을 잊지 않고 있다가 사건이 기억에서 사라질 3년 쯤 지난 후에 그를 자기 예하 기관인 인민보안성 35국 핵심부서로 올라오게 한 것이었다. 송정국의 말에 의하면 그때 승진했던 출구호위 군관은 지금 제대하여 지방에 쫓겨 갔다고 했다. 장성택이 한 일이라는 것이 알려졌지만 이제 와서 그걸 갖고 시비를 캘 사람이 누가 있을까?

즉흥적인 김정일의 인사 이동에는 훗날까지 책임져 준다는 담보가 없었다. 송정국은 A씨를 향해 허탈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들 그때 원칙을 어기며 장 부장을 통과시키고 싶었겠어? 근데 사정에 사정을 거듭하는 데는 어쩔 수 없더라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거 융통성이라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야. 인생 참… 이봐 우리네 터널 인생들이야 뭐 별거 있어? 그냥 바람 따라 돛을 달 수밖에. 난 참 운만은 좋았던 것 같아.”

그토록 운이 따른 데 대해 송정국은 친구 앞에서 좋아했지만 장성택이 김정은에 의해 처형된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심히 걱정된다며 A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지명 / 망명작가펜(PEN)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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