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5월 1일

세계분쟁 25시 | 동서갈등의 진원지,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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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시 13

동서 갈등의 진원지,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러시아를 제외하면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영토의 대부분은 비옥한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온화한 기후 탓에 세계에서 가장 기름진 땅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과거 소련 시절, 연방 전체 농산물 생산량의 50% 이상을 담당했던 농업기지이기도 하다. 전 국토의 80% 이상에서 경작이 가능하고 전통적으로 밀의 곡창지대인 까닭에 ‘유럽의 식량창고’로 불리기도 한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유라시아대륙의 패권 장악을 위한 권력투쟁의 주요 무대였다. 유럽인들에게 우크라이나는 동방진출을 위한 교두보였고, 아시아 유목민에게는 유럽침략을 위한 발판이었으며, 러시아인에게는 해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출구였다.

유라시아 권력투쟁의 주요무대 … 정체성 혼재

9세기 중반에서 10세기 초, 오늘날 러시아 서북부와 우크라이나 키예프 일대에 국가가 형성되었다. 이것을 키예프 공국으로 불렀는데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로루시 국가사의 공통된 출발점이 되었다. 몽골의 침입으로 키예프 공국 시대는 막을 내린다. 몽골지배를 물리친 모스크바 공국은 1667년 리투아니아-폴란드 왕국과 안드루소보 조약을 체결해 모스크바가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르 강 동부를, 폴란드가 서부를 지배하면서 동서 분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795년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의해 폴란드가 분할되면서 폴란드가 지배하고 있던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분할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신생 폴란드에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이 편입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크라이나 전체는 당시 소련으로 넘어갔다. 이렇게 우크라이나는 동서 지역이 러시아와 서유럽의 영향을 받아 그 정체성에서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동부지역은 오랜 러시아의 지배로 러시아어 사용비율이 높고 러시아 문화가 일반화되어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정치적으로 친러시아 경향을 나타내고, 중앙정부의 친서방 정책 추진에 반감을 가진다. 반면 서부지역은 역사적으로 유럽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관계로 우크라이나어와 문화가 일반화되어 있다. 그래서 탈러시아 경향이 강하고 중앙정부의 친러시아 정책을 추진할 때는 노골적으로 저항을 했다. 이와 같은 정체성의 차이는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와 서방의 대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난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2014년 5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서 독립여부를 묻는 주민투표 가운데 각각 96%와 89%의 지지율을 나타내 이 두 개 주가 자체 독립을 선포하고 유엔과 국제사회에 공화국 독립인정 및 러시아에 합병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주민들의 투표결과를 존중하고 사태해결을 위한 모든 중재노력을 환영한다고 발표하며 동부지역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는 크림반도 합병 이후 우크라이나에서의 지정학적 우위를 확인한 러시아가 자신의 영향력을 동부지역까지 확대해 친러

완충지대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이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선전극에 불과한 불법투표라며 신속하게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투입해 동부지역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반응은 크림반도 합병과정에서 얻은 교훈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유럽연합을 비롯한 서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이후 동부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리·독립 움직임을 방관하고 심지어 뒤에서 부채질한 것을 비난하며 대 러시아 제재를 확대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23일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우크라이나 군 의료진과 그 관계자들이 드발쳬프 근처에서 사망한 동료들에 대한 애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23일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우크라이나 군 의료진과 그 관계자들이 드발쳬프 근처에서 사망한 동료들에 대한 애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전 합의 … 우크라이나 평화, 봉합되나?

2015년 4월 현재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으로 사망한 사람이 6,200명을 넘었고, 부상자는 약 1만5천여 명이며, 난민은 193만명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2015년 2월 13일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독일,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정상이 모여 정전에 합의한 것이다. 이 합의에 따라 2월 15일 0시를 기해 무조건적인 정전상태에 돌입하기로 했다. 정전과 동시에 대포와 다련장 등과 같은 중화기들을 전선에서 철수하고 50㎞의 완충지대를 설치하도록 했다. 중화기 철수는 향후 14일 이내로 하고 그 이후 5일 이내에 양측이 억류하고 있는 모든 인질과 포로를 석방하기로 했다. 그러나 중화기를 철수하는 기준선을 우크라이나 측은 현 접촉선으로 할 것을 주장하고, 반군 측은 2014년 민스크 협정 당시 진출선으로 할 것을 주장하고 있어 난항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합의에서는 유럽안보협력기구가 참여하여 우크라이나 국경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를 실시하고, 지방선거 종료 후에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국경을 통제하도록 했다. 그리고 동부지역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유럽안보협력기구 감독 하 우크라이나 영토 내 모든 외국군대, 군사장비 철수 및 불법 무장단체에 대한 무장해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2015년 말까지 반군 장악지역에 대해 특별지위를 보장하는 법률 도입과 개헌을 통한 지방선거 실시를 약속했

다. 그러나 이번 합의에는 분쟁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해 이행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의 유럽화 정책과 이를 저지하려는 러시아의 입장변화가 없어 양측의 견해차가 커질 경우 교전이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이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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