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5월 1일 0

윗동네 리얼 스토리 | “사회주의 사회에서 굶으면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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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 스토리 27 | “사회주의 사회에서 굶으면 쓰나”
 
 
 북한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다. 박 아무개 씨가 퇴근해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얼른 상을 펴고 밥그릇을 올려놓는다. 김이 솔솔 나는 흰 쌀밥을 보노라니 저절로 침이 꿀꺽 넘어가지만 본디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점잔을 잃지 않으려 “어험, 어험.” 기침부터 한다. 시장할텐데 어서 잡수라고 아내가 권해도 수저를 들지 않고 그냥 아내만 쳐다본다. ‘어디서 났냐’는 무언의 물음이다.

 없는 세월에 배급도 주지 못하는 직장에 만날 틀어 박혀서 집 살림엔 아예 뒷전인 남편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먹을 게 어떻게 생기는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아침에 시간 맞춰 출근하고 들어와서는 틈만 있으면 배고픈 아내와 딸을 앉혀놓고 일장 강의도 잘한다.

“그게 어떤 쌀인지 당신은 모르지?”

 나라가 어려운 때 백성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그게 근본 있는 사람이라는 둥 어려울 때 충신과 배신이 갈린다는 둥 나라 걱정을 하노라면 먹는 밥이 모래알 같다는 둥 그러며 때로는 가슴을 치기도 한다. 하루 한 끼 쌀 구해들이기도 버거운 때 무슨 놈의 나라 걱정이냐고 이따금 대들기도 했지만 본디 그렇게 생겨 먹은 양반이라 그런 건 소귀에 경 읽기다.

 “이번 2월 16일 (김정일) 장군님 생일을 맞아 내준 배급 쌀이외다.” 하고 아내가 꽁한 투로 대답했다. 그러자 박 씨는 “그게 어떤 쌀인지 당신은 모르지?” 하며 눈에 눈물이 글썽해 깊은 한 숨을 내쉰다. “어떤 쌀이긴, 명절 맞아 내주는 배급 쌀이지, 왜 눈물까지 흘리며 청승이요?”

 “아둔한 사람 같으니, 그게 나라 군량미를 박박 긁어 내준 쌀이란 말이요.” “그런데요?” “이런, 미국과 남조선이 호시탐탐 우릴 먹으려 기회를 엿보는데, 유사시에 쓸 비상 쌀까지 털어 백성에게 공급하는 이런 은덕에 당신은 눈물이 안 난단 말이요?” “안 나는데요.”

 아내는 그냥 빈정거렸다. 한참을 노려보던 박 씨가 한 발 다가와 앉았다. 또 강의가 시작되려나 보다. 딸이 없으니 망정이지 있다면 한바탕 말씨름이 벌어질 판이다. 선수치듯 아내가 먼저 말꼭지를 뗀다. “눈물은 안 나도 알건 다 아우다. 오죽했으면 정미도 안한 벼로 배급을 내줬겠소. 텔레비전에서도 말했잖소. 나라가 어려워도 인민이 중해 비상 군량미로 명절 배급을 푼다고. 자, 됐소? 어서 식기 전에 밥 잡수.” 아내는 그러며 얼른 숟가락을 박 씨의 손에 쥐어주었다. 먹어야 말이 없겠기에 하는 것이다.

“아버진 말 충신, 말만 번지르르 하지”

 “밥이 목구멍을 어찌 넘겠소.” 박씨가 또 푸념한다. “지금 뭐라 했소?”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는데 백성된 자가 흰 밥을 어찌 먹겠냔 말이요.” 박 씨의 두 눈에 고인 눈물이 드디어 주르르 흘러내렸다. 숟가락을 든 채 눈물짓는 꼴이 옆에서 보기에도 꼴불견이다. 어찌 보면 저런 충신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나라를 생각하면 먹는 밥이 모래알 같다는 평시의 말을 생각해도 오늘 저녁엔 분명 저 밥을 먹을 것 같지 않다. 마침 출입문이 열리며 딸이 들어섰다. 남편 밥만 듬뿍 담았던 탓에 둘의 밥은 한 그릇도 되나마나 한데 오히려 잘됐다 싶어 아내는 “당신 아무래도 밥 잡숫지 못할 건데 어서 저쪽 가서 눈물이나 실컷 흘리오.” 하며 밥상을 당겼다.

 그런데 웬걸. “어허, 이거 왜 이래” 박 씨는 날쌔게 밥상을 움켜잡았다. 주르르 흐르던 눈물도 어느 새 쑥 들어갔다. 그 모양을 보고 딸이 까르르 웃는다. “넌 왜 웃는 거냐?” 하자 “아버진 말 충신, 말만 번지르르 하지.”한다. “그 녀석 말 본때란! 그럼 내가 어찌해야 내 진정을 알아 줄 거냐?” 하자 아내가 덥석 “학습시간에 배웠잖수. 충신은 말이 아닌 행동, 즉 실천으로 보여줘야 그게 진짜라구.” 한다. 연달아 딸도 맞장구친다. “아버지, 어서 상 놔요. 오늘 저녁 진짜 밥 안 잡수면 그 충심 인정할게요.”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지 박 씨는 “그럼 오늘 저녁 날 굶길 거냐?” 하며 한 풀 꺾인다. 모녀는 “어이고 참, 나라를 생각하면 먹는 밥이 모래알 같아 목구멍을 안 넘는다며?” 쏘아붙인다. ‘어험, 어험’ 다시 건기침을 해대는 박 씨.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다. “그렇다구 사회주의 사회에서 밥 굶으면 쓰나…” 상을 도로 제 앞으로 끌어 당기는 박 씨를 앞에 두고 모녀가 서로 보며 한 바탕 뒤집어지듯 웃었단다.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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