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8월 1일 0

박계리의 스케치北 | 조선호랑이 기상을 한 올 한 올 꿰다, 수예가 이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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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20 | 조선호랑이 기상을 한 올 한 올 꿰다, 수예가 이원인
 
 
, 이원인, 수예, 1965년 180×97cm, 조선미술박물관 소장 Ⓒ연합뉴스

<호랑이>, 이원인, 수예, 1965년 180×97cm, 조선미술박물관 소장 Ⓒ연합뉴스

 금강산과 개성 관광이 한창일 때 관광지에는 미술 작품을 파는 가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장르 중에 하나가 수예였다. 사실적인 표현의 정교함에 즉각적으로 감탄을 하게 되고 분명 뒤가 비쳐서 보이는 천인 것 같은데 앞 뒤 문양이 다름에 놀랐던 기억들이 새롭다. 이러한 북한 수예를 대표하는 작가가 이원인이다. 그는 여성 미술가로서는 최초로 공훈예술가의 칭호를 받은 미술가일 뿐만 아니라 북한 수예 역사에서 최초로 김일성의 모습을 수예로 형상화한 작가라고 하니 그녀의 북한 미술계에서의 위치를 상상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호랑이>는 그녀의 창작 생활의 분수령이 되는 작품이며, 북한 수예사의 대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이 작품이 어떤 작품일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호랑이>는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1979년 사회주의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 알제리에서 열린 제1차 비날리아미술전람회에서도 1등상을 수상한 바 있다.

황소 보고 철창 매달려 으르렁 대던 호랑이 모습 담아

 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수예의 형태적 특성과 고유한 기법을 가장 뚜렷이 살릴 수 있는 묘사 대상을 선정하였다.”는 작가의 언급이 주목된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먼저 고민했을 것이라는 우리의 상상력과는 달리, 수예의 장르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을 선정했다는 언급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는 예술적 형상을 잘 창조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장르의 특징과 예술적 형상성이라는 두 개의 화두가 창작과정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론 그녀가 선택한 조선호랑이는 조선의 기상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택되었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이 작품의 제작 과정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먼저 이원인은 문헌자료를 연구하고 평양동물원에 여러 차례 방문하여 스케치한 것을 토대로 초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만든 초안이 호랑이의 형태적 특징은 보이는 대로 잘 표현하였지만, 표현하고자 하였던 주제인 호랑이의 기상을 담아내지 못하였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호랑이의 형태와 질감을 수예로 잘 표현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훌륭할 수는 있으나, 이는 결코 예술적 창작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러 생각 끝에 이원인은 호랑이를 깜짝 놀라게 함으로써 이 때 드러나는 호랑이의 성질을 고찰해보기로 하였다. 하루는 개 한 마리를 끌고 호랑이 우리로 갔다. 그러나 호랑이는 개의 등장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여전히 심드렁하게 누워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마침 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때 이원인은 소의 소리를 듣고 호랑이의 눈에서 순식간에 시퍼런 불이 일어나고 털이 쭈뼛쭈뼛 일어서는 변화를 포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 때 발견한 호랑이의 맹수적 기질을 자신의 작품에 담아내기로 결심하고 보다 정확히 호랑이의 기질과 기상을 파악하기 위해 이번에는 황소 한 마리를 끌로 호랑이 우리 앞으로 가 보았다고 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 퍼져 있던 호랑이는 황소의 출현에 갑자기 뛰쳐 일어나 황소가 오는 방향으로 바람같이 달려 나가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공중으로 날아 철창에 매달려 으르렁 거렸다고 한다. 이 모습을 세심히 관찰해서 창작으로 이룩해낸 성과가 그녀의 <호랑이>였다는 회고였다.

 이러한 이원인의 제작과정은 외형의 닮음을 넘어서 대상의 본질, 법칙, 기운까지 담아내고자 하는, 동양화론에서 이야기하는 ‘형사적 사의론(형태를 그림으로써 뜻을 담아낸다)’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우리 미술계뿐만 아니라 북한의 수예 장르도 갖고 있는 공통된 고민이 수예를 제작할 때 밑그림이 되는 도안의 문제다. 역사적으로 수예를 작업할 때 도안은 화가들이 그려주거나, 화가들의 작품을 도안으로 사용하는 예가 많았다. 따라서 밑그림을 수예가가 스스로 해결하는 문제가 현대에 와서 제기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이원인이었던 것이다.

 방금 살펴본 바와 같은 제작과정을 통해 수예의 원화를 수예가 스스로 창작해 내었다는 점 또한 그녀가 북한 수예계를 대표하도록 하는 토대가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1978년 이후 그녀가 만수대창작사 수예단에서 수예가들을 지도할 때 수예가들에게도 원화창작을 위해 화가들과 같은 전문적 역량을 요구했다는 점은 일면 자연스럽다.

 또한 그녀는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였다. <호랑이>에서는 털을 모실로, 눈과 수염은 비단실로, 소나무는 나이론실로 하여 질감의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북한 미술계에서도 주체사실주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많은 작가들이 재료의 실험들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과, 있는 그대로 보고 그리는 형태적 사실주의를 넘어서 대상의 기상과 본질까지 표현해내는 것이 예술적 창작이라고 사고하고 있다는 점을 수예 장르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이원인의 재료 실험과 예술적 창작의 열망이 사실주의에 대한 다양한 해석 안에서 보다 확대되기를 바란다.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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