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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남한예의지국? 201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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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51 | 남한예의지국?

지난 2월 7일 대전 유성구청 내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명절 예절을 배우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7일 대전 유성구청 내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명절 예절을 배우고 있다. Ⓒ연합뉴스

남한에 갓 왔을 때 내가 본 남한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 예의바르고 온화했다. 밝고 따뜻해 보이는 인상에다 북한지역 사투리에 비해 말씨까지 부드럽고, 인사말도 잘하고, 허리도 잘 굽히고, 미안함과 감사함도 잘 표현 했다. 혹시 이 사람들도 싸울 줄 알까, 싸우는 모양새가 어떨까, 호기심이 날 정도였다. 여성들의 말씨는 듣는 사람의 간장을 살살 녹이는 것 같았다. 어른들을 닮아선지 아이들도 예절이 밝았다. 무뚝뚝한 말씨인데다 선물을 받고도 고맙다는 말이 얼른 입술에 오르지 않아 쑥스러워 뒷머리만 슬슬 만지는 탈북자들에 비하면 딴판이었다.

언젠가 남한 생활 며칠밖에 안된 한 탈북여성이 들려준 말이다. 복지관에 모임이 있어 가던 중에 길을 잘 몰라 여기저기 살피다 그만 마주 오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과 부딪혔다. 그 바람에 여성의 가방이 땅에 떨어지고 물건이 쏟아졌다. 미안한 쪽은 앞을 잘 보지 않은 그 여성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먼저 “죄송합니다.”를 곱씹으며 물건을 황급히 주어주는 쪽은 학생이었다. 물건을 다 줍고 나선 “그럼, 조심히 가세요.”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종종 걸음을 쳤다. 그 여성은 북한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남쪽 아이들이 어쩌면 그렇게 예절이 밝은지 모르겠다며 감동스러워 했다. 나도 그와 비슷한 일을 몇 번 경험했다. 남쪽 아이들은 확실히 인사성이 밝다. ‘미안하다’, ‘감사하다’ 등 감정표현을 거침없이 잘한다.

北, 예의도덕도 최고권력자 대한 충성 속에서만?

북한 이 지난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근로자들과 청소년 학생들이 꽃바구니와 꽃다발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상에 헌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근로자들과 청소년 학생들이 꽃바구니와 꽃다발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상에 헌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아이들은 다르다. 북한 아이들은 예의표현에 익숙하지 못하다. 대신 폭언, 조롱, 멸시, 야유, 거친 농담이 능숙하다. 북한 사회가 아이들의 인성교육보다 어린 시절부터 계급교양, 혁명교양, 전쟁고취와 같은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교육에 치중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이들까지 공개처형장에 모아 놓고 사람이 총에 맞아 눈알이 튀어나고 두개골이 갈라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곳이 북한이다. 나도 어렸을 적엔 미군이나 국군, 지주, 자본가를 사람으로 생각해 본 것 같지 않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북한에서 공권력 종사자들이 감행하고 있는 인권유린 행위들도 따지고 보면 어린 시절부터 그런 교육으로 형성돼 온 인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애국적이고 충성스러운 ‘혁명전사의 기질’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인간의 원초적인 예의도덕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혈육의 정, 이웃 간 정, 남녀 간의 사랑, 목숨처럼 지키는 의리, 약자에 대한 배려, 명예, 체면유지, 양심, 보답 등은 남아 있다. 북한 당국이 오히려 그것을 장려한다. 그리고 그것을 북한 사회가 가진 도덕적 우월성이며 혁명투쟁을 승리케 하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건부가 있다. 그것이 수령과 체제에 반할 소지가 없어야 한다. 즉 최고권력자의 권위와 사상, 그에 대한 충성심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대가정론’,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일심단결’ 등으로 포장한다. 그렇지 못한 모든 도덕행위는 가족주의, 지방주의 등으로 지목되는 종파행위가 된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이 지켜가는 도덕적 성품은 원초적인 도덕적 감정, 혹은 유교적 관습으로 행해지는 측면이 더 크다. 일부 탈북자들이 남한보다 북한에 오히려 더 인정미가 남아있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점에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南, 덮어놓고 “미안합니다” … 속 다른 ‘매너’는 불편해

남한 생활이 몇 해 흘러가면서 처음에는 반듯해 보이기만 하던 남한 사람들의 예의도덕에도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인상과 따뜻한 인사말은 여전히 좋은데 어딘지 모르게 지어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있다. 전혀 감사하거나 미안해 할 일이 아닌 것에도 덮어놓고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피곤하다. 내가 그 말을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고 일부러 염장 지르는 건지, 질타인지, 별 것 아닌 것을 놓고 분별해 보느라 신경 쓰일 때도 있다. 앞에선 좋게 말하고 뒤에선 욕 잘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랬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인사가 아니라 입술로 하는 인사다. 자꾸 반복하다가 입술에 자동으로 프로그램이 입력된 건지 모르겠다. 어떤 때는 내가 먼저 해야지 하고 작심을 했는데도 상대의 입술이 더 빠르다. 빛의 속도다. 아마도 생각과 관계없이 입술이 먼저 작동하는 것 같다.

자라는 아이들은 어떨까. 식당에 가면 저들만 아이를 아끼는 것처럼 아이가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워도 귀엽다고 엉덩짝을 두드려 주는 얼굴 두꺼운 부모들이 있다. 남들에게 예의 없는 행동인줄 아는지 모르는지 감각이 없다. 그렇지만 어디 가서 얼굴 아는 사람 앞이라면 가장 예의바른 듯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재빨리 아뢸 것이다.

내겐 북에서 갓 데려 온 중학생 딸이 두 명 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집에 올 때가 있는데 역시 남한에 태어나 자란 애들이라 인사성이 밝다. 민망하게도 우리 애들은 그렇지 못하다. 학교에 갈 때나 집에 들어올 때면 부모에게 인사하는 걸 쑥스러워 한다. 확실히 다르다. 남한 친구들처럼 되자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렇지만 친구들을 위해 주는 일엔 극성이다. 그래서 남한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인사말 서툰 거 빼고 욕먹을 짓은 절대 안한다.

지금은 선생님 앞에서 책상 위에 발까지 올려놓는 남학생들까지 있다. 자기의 행동이 부모님을 욕되게 한다는 것도 모르는데 공부는 해서 뭐하는지, 학원까지 왜 다니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그런 아이들 중에 학원에만 가면 인사도 잘하고 수업태도가 좋은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일찍부터 그렇게 두 모습일 수 있나. 상대와 환경, 이해관계를 가려가며 예의를 분배하는 아이가 된 것이다.

가짜 인사, 가짜 예의가 지금은 매너 있는 모습으로 비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장차 통일시대가 오면 북한지역 사람들도 그것을 받아들일까? 속 다른 ‘매너’가 북한 사람들에겐 ‘여우귀신의 호들갑’으로 보일지 모른다.

도명학 /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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