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9월 1일 0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교육부문 심판장 ‘테제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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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9 | 교육부문 심판장 ‘테제총화’
 
 
평양에서 진행된 10만명 규모의 집회 모습 Ⓒ연합뉴스

평양에서 진행된 10만명 규모의 집회 모습 Ⓒ연합뉴스

 북한의 9월 5일은 교육절이다. 1977년 김일성은 ‘사회주의교육에 관한 테제’를 발표해 이 날을 교육절로 정해놓고 전국에서는 해마다 ‘테제총화’를 실시하고 있다.

부정부패로 점철된 교육현장

 교육부문에 종사하는 모든 관계자들이 모여 사업실적과 결함을 사상적으로 검토하고 대책을 토의하는 총화사업이다. 매년 기념사업을 개최해 교육강령에 따른 공산주의 혁명인재 양성을 강조하고, 교원의 사명과 의무, 교종별, 교과별 내용이 노동당의 의도와 김일성주의 및 주체 교육으로 자리잡게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문제는 테제총화가 36년째 이어져오고 있지만, 교육의 질적 향상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방법에서는 주체와 우리식의 깨우쳐 주는 방법을 요구하고 있지만, 북한의 교육은 여전히 러시아 주입식 교육이 일반화되어 있다. 원인은 역시 경제 사정과 밀접해 있다. 교육부문에 국가 지원을 강화하고 교원들에 대한 대우를 개선하여 교육의 질적 제고 환경을 마련해야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부정부패로 점철된 교육현장에 바른 교육을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꼴이다. 또한 30여 년째 바뀌지 않는 필기전달식의 수업만으로는 학생들의 실력이 높아질 수 없으며, 획일적인 입시방법 역시 교육의 혁명을 달성하기는 어려운 요인으로 남아있다. 현재 날로 발전하는 세계적 추세에 비해 북한의 교육이 많이 뒤처지고 있다는 것은 북한 교육 현장에서도 암암리에 다 아는 공통된 견해다. 그러나 이를 해결할 뚜렷한 방도가 없다는 것도, 노동당에 바른 말로 이의제기 할 영웅이 없다는 것도 공통된 견해다.

 이제 9월 5일을 전후한 북한의 테제총화 현장으로 가보자. 테제총화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되는데 하나는 교육부문 후원단체의 전시회고, 다른 하나는 테제총화이다. 각 학교에는 지정된 후원단체가 있는데 워낙 지원이 없다보니 학교장들조차 잊어버리기 일쑤다. 수백여 개의 기관기업소들 중 절반도 참여하지 않으며, 보고가 들어간다는 소식을 받아야 겨우 중고 TV나 DVD를 후원한다. 이마저도 소위 잘나가는 기관들의 이야기고 보통은 빗자루나 곡괭이 자루를 내놓는 정도이다.

 테제총화는 원칙적으로 중앙, 지방에서 동시에 진행되나 1990년대 들어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며 행정구역별 총화로 바뀌었다. 전국적 규모의 중앙총화는 형식뿐이고 평양은 평양대로 각 도는 도 단위로 진행한다. 보통 9월 3~4일 이틀간 진행되는 테제총화에는 교육부문 관계자들과 강좌장(남한의 학과장), 분과장, 모범 교원들이 참가한다. 이 날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몇 백리 떨어진 농촌학교의 교장들과 교원들은 버스를 비롯한 교통수단이 없어 며칠씩이나 걸어 도회지로 오기도 하고, 숙박시설도 없어 친척집이나 동창네 집에 쌀이나 부식물을 대충 내놓고 눈치를 보며 지내기도 한다.

“당에서 있는 걸 안줘? 학부형 동원 궁리는 안하고”

 그렇게 모여 행사가 시작되었다. 주석단에는 도급 간부들이 가지런히 앉아 있었고, 학교장들과 교원들이 모여 성과토론을 시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작은 것들을 크게 부풀려 만든 영웅담으로 포장된 것들뿐이다. 모범 교원 소개시간에는 새 교수방법이 소개되었는데, 중학교 2학년 생물 과목 첫 시간에서 하는 ‘생물 과목에서는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를 재연하였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동영상 교수법, 내레이션이나 자막, 프레젠테이션 사용 등과는 달리 컴퓨터로 여러 가지 동식물 사진만 보여주던 원초적인 방법이 당시에는 너무 신기해 입을 벌리고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오후에는 비판토론이 시작되었다. 군 교육부장의 자아비판과 도당책임비서의 훈시에 이어 나이 지긋한 한 시골학교 교장이 연단에 올랐다. 내용을 들어보니 그 해 여름 장마철 태풍으로 인해 학교 지붕이 다 날아가고 한쪽 벽체가 허물어졌다고 했다. “작년 가을에 군 교육부장 동지께도 직접 제기하고 군 교육부에도 여러 번 제기하였지만 누구 한 명 학교에 와 실태를 요해하는 일꾼들이 없었습니다.” 틀린 말은 없었다. 하지만 교장의 발언으로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예 작심하고 나온 듯했다. 아니, 연령대로 보아 이제 말년인 것 같은 이 교장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교장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무슨 일을 당하려고 저러나?’하고 걱정하는 무리, 혹은 ‘우리가 말 못한 내용 시원하게 질러주는구나’하고 영웅처럼 바라보는 무리 등 만감이 교차하는 회의장의 공기는 팽팽했다. 순간 책상을 ‘꽝’하고 내려치는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도당책임비서는 “근로비서 동무, 저 동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당에서 신임해 교장까지 시켰으면 믿음에 보답해야지. 저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합니까?” 그 말에 근로단체비서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야, 너 이놈. 농촌에 지붕감이 없다는 게 말이 돼? 교육부장은 이 사람 이렇게 될 때까지 뭐했소? 당장 사상 검토를 시작하시오. 당에서 있는 걸 안줘? 학부형들 동원할 궁리는 안하고.”

 현실의 비서들은 인자하고 교양있는 모습의 영화와는 달랐다. 만약 이 자리에서 비서가 영화 속 모습처럼 행동했다면 어느 입을 통해 상급 당에 보고될지 모를 일이었다. 학교의 현실보다는 당과 수령의 권위보전을 위해 없는 치적도 만들어내야 하고, 권위훼손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반드시 도마 위에 올라야 하는 총화마당. 본연의 목적은 퇴색하고만 이 총화마당이 교육부문에서는 심판장이 아닐 수 없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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