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9월 1일 0

박계리의 스케치北 | 보석화가 신봉화 불변의 재료를 화폭에 싣다 2013년 9월호

print
박계리의 스케치北 21 | 보석화가 신봉화 불변의 재료를 화폭에 싣다

신봉화, , 조선보석화 Ⓒ연합뉴스

신봉화, <비둘기 춤>, 조선보석화 Ⓒ연합뉴스

지난 2003년 8월 28일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북측 응원단이 숙소로 돌아가던 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담긴 환영 플래카드가 빗속에 방치되어 있다며 걷어서 들고 행진한 사건이 있었다. 플래카드 속의 김정일이 비에 젖은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어여쁜 북한 여성들의 모습이 TV를 통해 우리들 안방 속으로 전달되자, 식탁에 앉아서 저녁을 먹던 가족들이 이에 대해 모두들 한마디씩 하던 기억이 새롭다.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은 TV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 예쁜 북한 여성들의 응원 모습보다, 빗속에 플래카드가 “방치되어 있다.”면서 화를 내며 우는 모습에서 더 큰 이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플래카드에 걸린 김정일의 모습, 그 시각이미지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반응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김일성·김정일이 그려져 있는 작품이 훼손당했을 때의 북한 주민들의 반응이다. 그러나 미술 작품이란 그 재료의 성질에 의해 시간이 지나면 훼손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오랫동안 북한 미술계가 풀어야 할 숙제였다. 더욱이 북한 사회가 설립된 지 30년이 넘어가면서 김일성·김정일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비롯한 주체미술의 기념비적 작품들이 세월의 눈비 속에 점차 퇴색되어 화폭의 생동성을 잃어 가기 시작하자, 불변색 안료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는 미룰 수 없는 절박한 문제로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돌가루로 만들면 돌 수명만큼 오래가지 않을까”

먼저 북한 미술계에서는 고분벽화에 주목하였다. 고구려 고분 속에 남겨져 있었던 벽화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형상과 색채를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면서 불변색 안료에 대한 논쟁도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첫 연구는 고구려 벽화 안료 연구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연구가 진행되면서 어떤 연구자들은 고분벽화 안료자체의 영구성을 주장했는가 하면, 다른 연구들은 고분 내부에서 일어난 화학적 작용에 의하여 색이 굳어진 것이라는 견해를 제기하였다. 그래서 물리화학적 방법으로 불변의 안료를 얻어보려는 노력들도 여기저기에서 시도되었다. 그러나 최종 성공을 이루어 내지 못하면서 하나, 둘 손을 떼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천연물질을 안료로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만수대창작사 미술가들이 천연돌가루를 안료로 이용한 실험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 중심에 신봉화라는 화가가 있었다. 그가 1980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 학부를 졸업하고 만수대창작사 조선화단 미술가로 활약하고 있을 때였다. 신봉화는 당시 미술계의 가장 큰 과제였던, 불변하는 안료를 어떻게 개발해낼 수 있을까에 골몰하던 중 1984년 한 시멘트 공장에서 미술작품을 창작해야 할 일이 생겼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이 시멘트 공장에서 창작을 하던 중 공장 건설장에서 쓰이고 있는 천연돌가루를 보면서 ‘이 돌가루를 가지고 회화적인 형상을 창조하면 돌의 수명만큼 수명이 오래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연구사업에 착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몇 년에 걸친 실험이 이어졌다. 전국 각지를 답사하면서 여러 색깔의 천연돌가루를 채집하기 시작하였다. 전국에서 채집된 이들 보석은 눈과 같은 흰색으로부터 진한 검은색에 이르기까지 색깔이 한없이 다양하였으며, 단일한 색으로 이루어진 것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색깔들이 층을 이루어 구름무늬, 파도무늬 같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천연문양을 나타내는 것도 있어 다양한 창조 활동에 적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들 천연돌가루를 토대로 1988년 인물화와 풍경화, 동물화에서 천연돌가루로 형상을 창조하는 데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렇게 개발된 보석화는 1988년 10월 중국에서 열린 ‘베이징 국제발명전람회’에 출품돼 금메달과 국제발명권을 얻고 국제적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신봉화는 ‘김일성청년영예상’을 수상하게 된다.

보석화는 천연색 돌가루를 기본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일기 조건이나 시간성에 관계를 덜 받아 유화나 수묵채색화에 비해 색채의 영구성을 담보하는 데 용이하며, 천이나 종이 또는 알루미늄판이나 대리석판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재료들을 다양하게 선택하여 그 위에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야외나 실내, 자연환경과 계절에 관계없이 전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북한에서는 주로 야외작품에 설치되는 미술에 먼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효과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야외 건축 장식물 또는 묘지와 같은 야외 공간에서 사용할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활용해 볼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석화는 북한 사회의 특수성이 단초가 되어 탄생된 독특한 미술 장르다. 이처럼 21세기 지금의 상황은 두 사회의 동질성을 찾아냄으로써 우리가 같은 민족임을 끊임없이 확인해 나가는 작업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 그 다른 점들을 담담하게 확인하고 인정하며 그 활용의 방법까지 차분히 모색해보는 작업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