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12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몸은 따뜻한데 마음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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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53 | 몸은 따뜻한데 마음이 춥다
 
 
 필자가 북녘에 있는 고향 생각을 제일 많이 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가을 단풍이 지고 찬바람이 불 때부터 이듬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까지 고향 사람들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기상예보에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진다고 나오면 멀리 북쪽 날씨는 영하 30도쯤 될 것이라 짐작해보며 누가 얼어 죽지나 않는지 걱정한다.

 북한에서 살 땐 가을 단풍만 보아도 다가오는 겨울이 두려웠다. ‘올 겨울은 또 어떻게 보내나, 땔나무와 석탄은 어디서 장만하나.’하는 걱정에 한숨만 나왔었다. 하지만 지금의 남쪽 생활은 지상낙원이 따로 없는 생활이다.

북한 주민들의 탈북과 남한 정착을 지원하는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목사가 지난 2월 13일 북한의 한 시장에서 주민들이 장작을 사고파는 모습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북한 주민들의 탈북과 남한 정착을 지원하는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목사가 지난 2월 13일 북한의 한 시장에서 주민들이 장작을 사고파는 모습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올 겨울은 또 어떻게 보내나’

 창밖에 아무리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불어도 따뜻한 아파트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아까운 장작을 하나 둘 세어 가며 떨리는 손으로 아궁이에 넣던 지난날은 이제 옛말이 되어 버렸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는 중앙난방이 되어있어 방마다 온수가 돌아 어디나 따뜻하다. 그런데도 아내는 고급 전기매트를 사왔다. 집이 춥지 않은데도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 등을 따뜻하게 지져대고 싶은 생각이 들어 산 것이다. 그러는 아내에게 나는 옛날 생각을 벌써 다 잊은 게 아니냐며 나무랐다. 왕복 40km도 넘는 먼 곳에 걸어가 손수레에 나무를 해오다 지쳐 쓰러지던 일, 몰래 잘 사는 집 울타리를 넘어가 연탄을 훔치던 일이 어제 같은데 말이다. 해마다 강추위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할 때마다 나라에서 국민들의 협조를 호소하는데 우리도 따라주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전기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는 탈북자들이 잘 알고 있다. 북한에서 살 때 전기때문에 겪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전압이 낮아 집집마다 가정용 변압기를 놓고 써야 했고 마치 경쟁이나 하듯 서로 더 용량이 큰 변압기를 구입했다. 변압기는 용량이 클수록 값이 비싸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얼마나 좋은 변압기를 쓰는가에 따라 그 집의 경제력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변압기를 놓을 형편이 못 되는 집은 전구에 뻘건 실 줄만 보이는 정도에서 살았다. 차라리 촛불이 더 밝았다.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있는 전기히터나 전기밥솥을 몰래 쓰는 사람이 많아 수시로 ‘전기검열대’가 도둑고양이처럼 동네를 돌아다녔다. 땔나무나 석탄은 많은 돈이 들지만 전기는 국가 것이므로 들키지만 않으면 몰래 쓴 것만큼 이득이었다. 집집에 측정계기를 달아놓기도 했지만 주변에 있는 공장의 전기를 훔쳐 썼다. 때로는 측정계기 바늘이 돌아가지 못하게 눈금판 유리 위에 강한 자석을 붙여놓기도 하는데 그러다 발각되면 경을 치기도 했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사시사철 따뜻해

 그러나 지금 나의 생활에서 전기는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이 됐다. 가정용 변압기도 필요 없다. 전기밥솥, 히터,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텔레비전, 냉풍기, 온풍기, 공기청정기 등 별의별 가전제품들을 다 갖추고 살자니 우리 가족이 쓰는 전기만 해도 많은 양이다. 그래도 전기요금은 수입에 비해 얼마 되지 않는다. 요즘 전기장판 사용으로 전기를 많이 썼는데도 이달 요금이 6만5천원밖에 안 나왔다. 나와 아내가 벌어들이는 한 달 수입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에 불과하다.

 음식을 만들 때도 전기보다 가스를 쓰면 비용이 훨씬 적게 들지만 전기를 쓰는 것이 편리해 전자레인지를 자주 쓴다. 요리할 때 사용한 한 달 가스요금은 4천원 안팎이다. 북한에선 사람이 쌀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아궁이가 쌀밥을 먹는다.”는 말이 돌 정도로 땔감이 비싼데 고급연료인 가스 값이 이렇게 싸다니.

 남쪽에서 겨울을 겪어 보니 밖에서 추위 속에 보내는 시간이 별로 없다.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직장에 나가도 난방이 잘 되어 있다. 건설현장만 제외하면 학교, 병원, 극장, 도서관 등 어디나 가스와 전기로 난방이 되어있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다. 또 길에 나서도 교통이 발달하여 조금만 걸으면 지하철이나 버스가 있어 오래 기다릴 일도 없고 차내 난방이 잘 되어 있다. 승용차에도 냉온풍장치가 되어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집에 가보아도 사시사철 더운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처음엔 실감 나지 않았다.

 산마다 저절로 죽어가는 잡관목이 많고 많지만 농촌에도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 나무들을 전부 모아 북한에 보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남한에 살아보니 자연에는 겨울이 있어도 생활에는 겨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누리는 이 행복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다.
 
 
도명학 / 망명북한작가펜(PEN)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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