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11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北 | 첨예한 대립 속 ‘약속’의 시간을 되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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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47

첨예한 대립 속 약속의 시간을 되짚다

군사적 대치가 첨예하게 이뤄지고 있는 공간에서 ‘약속’이라는 주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고 있는 작가가 있다. 김진주는 비무장지대를 접한 지역인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서 휴대전화 보관소 사물함을 이용하는 대중들과 함께 ‘약속’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퍼포먼스를 추진했다. 작품 <약속한 시간의 흐름(동송)>은 이러한 퍼포먼스를 작가의 육성 내레이션과 촬영화면을 편집해 제작한 것이다.

철원군 동송읍 지역에는 군부대가 많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적 특수성에 맞게 특별한 업종이 성업 중인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휴대전화 보관소다. 군복무를 수행하고 있는 일부 병사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이곳에서는 군인들의 휴대전화를 보관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작가는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군 부대가 밀집한 특수한 지역적 조건으로 인해 생겨난 ‘휴대전화 보관소’에서 16개의 보관함을 빌려 자신의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 8월 13일부터 동송읍 금학로 일원에서 예술 축제인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2015 : 동송세월’이 개최되고 있는데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은 프로젝트에 출품된 다른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이곳 휴대전화 보관소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맡겨둘 수 있다. 그리고 보관소에 게시된 퍼포먼스 안내에 따라 작품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 관람객들은 16개의 보관함 중 한 곳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넣어두기 전 작가의 연락처로 메시지를 전송한다. 관람객이 작품 속으로 들어가 참여하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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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예고도 약속일까?”

 

우선 관람객이 휴대전화를 맡기기 전 작가에게 “약속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작가는 “약속이 성립되었습니다.”라고 답함으로써 퍼포먼스는 시작된다. 관람객은 이어 자신의 휴대전화를 넣을 보관함, 즉 1~16번 중에서 하나의 번호를 선택하고 휴대전화를 되찾아 갈 시간을 작가에게 알려주면 작가는 해당 보관함에 대한 비밀번호를 알려준다. 작품에 참여한 관람객은 휴대전화를 맡긴 뒤 다른 작품을 감상하게 되고 그동안 작가는 각 보관함 번호에 해당되는 특별한 메시지를 전송해준다. 무기와 전쟁, 휴전과 냉전 등 수많은 대립적 이미지들이 가로지르며 비무장지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지금까지 이뤄져왔던 다양한 ‘약속’에 대해 다시금 깊게 고민해 볼 수 있는 독창적인 메시지를 보내놓는 것이다. 메시지 중 몇 개를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무장지대의 약속 하나] ‘그날 리틀보이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1. “공습예고도 약속일까?”

[()무장지대의 약속 다섯]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 제1조 제6항. 쌍방은 비무장지대 안 또는 비무장지대로부터 또는 비무장지대를 향하여 어떠한 적대적 행위도 감행하지 못한다.

  1. “과연 적대적인 약속은 없을까?”

작가는 1~16번까지 총 16개의 메시지를 통해 DMZ에서 1945년 12월 27일 미국과 소련이 협의한 38선과 관련한 내용, 투항하면 평화가 주어진다는 내용의 안전보장 패스, 언제 어디를 공습할 것이니 대피하라는 전단 또는 경보, 1953년 7월 27일 연합군과 북한군 및 중국군 대표 사령관의 서명으로 체결된 휴전협정, 남북한이 침범하지 않겠다고 정한 비무장지대, 경계태세에서 통용하기로 정한 작전명과 암호, 민간인 출입통제선과 검문소, 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가족들이 서로 만나자고 한 기약, 전쟁의 고통 속에서 스러져간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 등을 떠올리는 메시지를 보관함 속 휴대전화에 남겼고 관람객들에게 ‘약속’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휴대전화를 되찾은 관람객들은 작가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통해 무엇을 생각할까? 지난 시기 남과 북은 많은 약속을 했다. 남과 북이 만날 때 의전부터 문구 하나하나를 정하는 모든 과정이 약속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 과정은 매번 지난했던 것이 사실이다. DMZ에서 ‘약속’을 떠올렸다는 김진주 작가의 작품이 강렬하게 다가왔던 건 우리 역사 속 남과 북이 했던 많은 약속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수많은 과거의 ‘약속’들이 만들어 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현재 2015년 11월의 ‘약속’이란 무엇인가. 또 다음 세대들이 살아가야 할 시공간, 그것을 만들어 낼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약속’은 무엇인가. 김진주 작가의 ‘약속’과 이에 대한 질문들에 우리들 각자의 대답이 궁금해졌다.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2015’에서 선보였던 김진주 작가의 영상작품은 11월까지 선재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박계리 / 통일디자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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