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9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추석이 반갑지 않다 201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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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추석이 반갑지 않다

고향에 갈 수 없는 탈북자에게 추석은 반가운 명절이 아니다. 오히려 서럽고 외로운 마음만 더해지는 날이다. 북에 두고 온 선조의 묘소가 걱정되고, 남아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추석을 명절답게 보낼 수 없게 한다. 그래서 추석은 기다려지는 명절이 아니라 오히려 비껴갔으면 싶은 명절이다.

필자도 북한에 두고 온 묘소가 있다. 증조부로부터 부모님까지 그리고 외할머니 묘까지 내가 아니면 돌볼 사람이 없다. 증조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까지 3대 외독자로 내려오다 보니 필자가 도맡아 봐야 했다.

고모가 있었지만 너무 멀리에 살고 있어 있으나마나였다. 거기다 외할머니 묘도 내가 지켜야 했다. 외삼촌이 멀쩡하게 두 분이나 있었지만 멀리 평양에 살았다. 여행의 자유가 없고 교통수단도 신통치 않은 북한에서 추석에 제사나 한번 지내자고 그 먼 거리를 이동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온갖 고생 다해가며 공부시켜 출세시켰더니 평양에 틀어박혀 폼만 잡고 있는 것 같아 부아가 치밀었다.


“두고 온 묘소, 돌볼 사람 없는데…”

그러나 이제는 나까지 고향을 떠나버렸다. 아마 지금쯤은 봉분이 주저앉아 평토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아도 묘소 주변의 협동농장 사람들과 멱살을 잡고 싸웠었다. 소를 몰아 밭을 갈던 농민들이 휴식시간이면 밭 주변에 있는 우리 묘에 소를 매놓아 묘지가 마구 짓밟혔기 때문이다. 내가 있을 때도 그 정도였는데 이제는 아예 봉분을 갈아엎고 콩을 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북에서 살 때 추석이 명절로 생각되지 않았다. 추석은 그저 하루 쉴 수 있는 날이고 제삿날이었을 뿐이다. 달력에 추석을 ‘빨간 날’로 표기하긴 했지만 추석연휴라는 말은 없다. 추석 당일만 휴일이었다. 그래서 집집마다 새벽부터 서둘렀다. 일찍 묘소에 다녀와야 일가친척이나 친구들과 술잔이라도 기울일 시간이 있었다. 그나마 묘소가 가까이 있는 사람은 다행이지만 멀리 있는 사람은 집에서 제를 지낸다.

멀리 있는 사람도 몇 해에 한번은 묘소를 찾아 벌초도 하고 봉분도 돋구어줘야 한다. 그럴 때면 추석을 계기로 휴가를 신청한다. 그러나 휴가가 승인되면 다행이지만 직장에서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거부하면 갈 수 없다.

한편 북한의 추석은 통행의 자유가 보장되는 유일한 날이기도 하다. 추석에는 승인번호(비자와 비슷한 의미)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평양시 출입도 자유다. 주민들이 제사지내러 다니는 데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이를 이용해 해마다 추석이면 평양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추석 전에 미리 평양시 주변에 가서 대기하다가 추석 당일 통근열차나 자동차를 타고 들어간다.

탈북자들은 남한에 와서 추석연휴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 그리고 추석이 민족 최대의 명절로 되어 있고 추석연휴가 며칠씩 되는 것도 놀랍다. 북한에서 민족 최대의 명절은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과 김정일의 생일 2월 16일이다. 추석과 설은 민속명절일 뿐이다.

국경절인 9월 9일이나 노동당 창립기념일인 10월 10일보다도 가치가 없는 날이다. 그런데 남한에선 설과 추석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니 처음에는 의아했다. 대통령 생일날은 명절도 아니고 그날을 아는 사람도 못 봤다.

추석을 준비하는 모습도 눈길을 끈다. 추석이 한창 멀었는데도 일찍부터 추석준비에 바쁜 아줌마들, 추석상품을 광고하며 경쟁적으로 할인행사를 하는 대형마트와 백화점들. 물론 북한에서도 추석준비는 미리 해야 했다.

그러나 북한의 추석준비는 누구에게 선물을 주거나 연휴를 즐겁게 지낼 준비가 아니라 제사상에 놓을 음식 마련이다. 그런데 남한에선 돈만 있으면 뭐든 아무 때나 살 수 있고 제사상은 추석 전날이나 당일에 준비해도 별 지장이 없겠는데 왜 그렇게 일찍부터 서둘러야 할까 싶다. 추석에 찾아갈 고향도 묘소도 없고 보통날과 별로 다를 것 없이 지내야 하는 탈북자들의 처지에선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 당연하다.


“민족 대이동? 텅 빈 자유로 보면 울적해”

추석연휴가 시작되어 고속도로를 꽉 채운 자동차 행렬이 방송에 나오고 그것을 ‘민족 대이동’이라 부르는 것을 들으며 방구석에 우두커니 앉아 외로움을 홀로 달래는 탈북자들이 많다. 그래도 탈북자들을 위해 경찰서, 시민단체, 사회복지 시설들이 추석선물도 마련해 주고 다채로운 위로행사도 조직해주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가.

추석 때 도로 상황을 보면 북으로 향한 자유로가 한적해 더없이 울적하다. 그러나 통일이 되면 그 길도 정체를 겪을 것이다. 남쪽으로 향한 ‘민족 대이동’이 북으로도 이어지는 그날이 오면 아무리 길이 막히더라도 고향으로 가는 탈북자들의 마음은 마냥 즐겁기만 할 것 같다.

도명학 /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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