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5월 1일

기획 | 최고인민회의 소폭 인사…주민통제강화 시사 2011년 5월호

기획 |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4차 회의 키워드는?

최고인민회의 소폭 인사…주민통제강화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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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12월 1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자강도 강계시 편직공장 시찰 사진이다. 오른쪽 끝에 위치한 인물이 이번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4차 회의에서 국방위원에 보선된 박도춘이다.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4월 7일 예정대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4차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2010년 내각의 사업정형과 2011년 과업 △2010년 국가예산집행 결산과 2011년 국가예산 △조직 및 인사 문제를 의제로 상정하고 토의하였다. 이 글은 조직 및 인사문제에 초점을 두기로 한다.

이번 회의에서 결정된 주요 조직 및 인사는 △전병호 국방위원회 위원 소환과 박도춘 보선 △국방위원회 결정을 통한 이명수 국방위원회 행정국장의 인민보안부장 임명이다. 이 밖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통한 이태남 부총리 해임(신병관계) △장병규 최고인민회의 법제위원회 위원장 임명이 있으나 논외로 한다.

이번 조직 및 인사를 개별 차원과 종합 차원에서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개별 차원에서 보자. 첫째, 전병호 국방위원의 소환은 85세(1926년생)의 고령으로 일선에서 사업하기 어려운 점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전병호는 1986년 당 중앙위원회 비서에 임명된 지 24년 만인 2010년 당 중앙위원회 ‘9월 전원회의’를 계기로 비서직에서 탈락하였다.

따라서 전병호는 현재 당 중앙위원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직을 기본직책으로 갖고 있는 가운데 보직으로는 내각 당 위원회 책임비서와 내각 정치국장직만 유지하게 되었다. 이는 작년 ‘9월 전원회의’에서 실세 전병호의 내각 정치국장 임명을 두고 내각에 대한 당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한 해석이 시기상조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국방위원에 보선된 박도춘은 67세(1944년생)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자력갱생의 모범인 자강도정신(강계정신)의 화신, 연형묵 전 자강도당 책임비서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2005년 사망)에 이어 자강도당 책임비서직을 맡아오다가, ‘9월 전원회의’에서 비서직에 올랐다. 박도춘은 전병호의 뒤를 이어 중앙당과 국방위원회에서 군수공업 부문을 총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군수공업 부문 총지휘자 교체

둘째, 주상성 인민보안부장의 해임과 이명수 국방위원회 행정국장의 임명은 사회안정 및 주민통제 강화 의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78세(1933년생)로 2004년 인민보안상에 임명된 주상성의 해임은 화폐개혁 실패 이후 권력 이양기에 무엇보다 사회안정이 중요하다는 김정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문책성으로 풀이된다.

특히 경제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탈북 행렬을 막지 못해 중국과 불편한 관계를 조성했다는 측면에서 책임졌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가장 활발히 수행한 최측근으로 신임이 두터운 이명수 행정국장(74세)을 인민보안부장에 기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명수는 인민군 내 핵심 보직인 총참모부 작전국장직을 맡고 있던 2002년, 임동원 특사의 김정일 면담 시 김정일이 ‘이명수 와보라’고 하자마자, 곧바로 나타났을 만큼 지근거리에서 김정일을 보좌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명수는 국방위원회 행정국장으로 국방위원회 산하 인민보안부의 사업을 관장해 온 인물로 이번 인민보안부장 기용은 권력 이양기에 증대하는 사회안정과 주민통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장 적합한 대안으로 선택된 것으로 해석된다.

다음으로 종합 차원에서 분석하기 위해서는 우선 최고인민회의 제12기 4차 회의의 의미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번 회의는 2009년 헌법개정과 2010년 연이은 두 차례의 최고인민회의 개최를 통해 국가체계 정비를 완료한 이후 처음으로 개최되는 회의라는 점과 2010년 9월 당대표자회를 개최하여 중앙당 체계를 정비한 이후 최초로 열리는 회의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김정일 최측근 인민보안부장 기용

이런 만큼 외부의 시각은 이번 회의의 결과에 거는 기대가 컸다. 특히 후계자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국방위원회 진출 여부와 국방위원회 및 내각의 개편 방향이 주요 관전 포인트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이번 회의에서 후계자 김정은이 국방위원회에 진출하기는 커녕 관례적인 의제들을 처리하고 아주 소폭의 인사를 단행하는 데 그쳤다.

이번 회의 결과의 부진을 두고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먼저 이미 2009~2010년에 걸쳐 국가체계 정비를 추진해 왔으므로 후계자의 국방위원회 입성을 제외하고는 국가체계 정비가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음으로는 현재 당 체계정비 작업이 진행 중이므로 아직까지는 여기에 노력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밖에도 국방위원회 무실화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과 권력이양의 속도조절 때문이라는 주장들도 있다.

이러한 설명 및 주장들과 관련하여 필자는 북한의 권력구조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유의해야 할 두 가지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것은 ‘제로섬(zero-sum)’의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인데, 하나는 북한의 권력구조, 특히 당·국가 또는 당 중앙위원회와 국방위원회의 관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령유일영도체계와 후계자유일관리제의 관계를 제로섬의 시각으로 보는 데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후계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당과 국가 및 당 중앙위원회와 국방위원회의 공존 속에서 각기 주어진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하는 이중전략을 추구할 것이며, 수령유일영도체계 강화와 후계자유일관리제 구축을 병행하여 권력의 누수를 최소화하는 안정화 전략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김정일과 김정은이 당 중앙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확대하면서 국방위원회의 그것들을 축소 또는 무실화 할 것이라거나, 후계자유일관리제의 강화가 수령유일영도체계를 침식할 수 있기 때문에 후계자유일관리제 확립을 미룰 것이라는 해석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이기동 /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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