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북한 사과 여부가 남북관계 좌우 2011년 5월호
<편집자주>
지난해 3월 26일 서해5도 수역을 방어하던 우리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미국과 스웨덴 등도 참가한 국제적,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격침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우리 정부는 지난해 5월 24일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대북교류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인도적 대북지원이 중단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방북 자체가 사실상 전면적으로 불허됨으로써 남북관계는 빙하기에 들어갔다. 군사적으로도 미국의 항공모함까지 참가하는 한·미연합 해상기동훈련을 포함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면서 서해 북방 수역을 보다 확고히 지키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졌다. 그리고 이제 1년이 지났다. 북한은 여전히 천암함 사건에 대해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는 조작이자, 특대형 모략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연평도에 대한 포격까지 자행하였다.북한은 사과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의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일부 인도적 지원이 허용되었고, 북한 핵문제를 다루기 위한 6자회담 재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지만 북한의 사과가 없는 상태에서 남북관계 개선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이에 천안함 침몰 사건에 따른 5·24조치 1년을 맞아 남북관계 현황을 당국 간 대화를 포함한 정치, 군사, 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보고 전망해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특집 | 5.24조치 1년…남북관계 현주소는?
북한 사과 여부가 남북관계 좌우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에 대해 한국은 민군 국제합동조사단의 철저한 조사를 통해 북한의 소행임을 밝혀낸 후 지난해 5·24조치를 통해 남북경협을 중단했다.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심화되고 경제난은 악화되었다. 천안함 조사결과가 ‘날조극’이며 검열단을 보내겠다고 주장하던 북한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다, 6월 12일에는 ‘서울 불바다’ 발언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북한의 강경한 태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7월 8일) 직후 돌변하였다. 북한은 6자회담의 복귀와 평화체제 논의를 언급함으로써 천안함 국면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중을 내비쳤다.
9월 초부터는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납북된 대승호를 송환하고 수해물자 지원을 요청하였으며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은 천안함에 대한 사과는 외면한 채 지원에만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한국으로부터 기대했던 호응을 받지 못했다. 돌파구 마련 시도가 벽에 막히자, 북한은 11월 9일 방북한 미국의 핵전문가 헤커 박사 일행에게 원심 분리기 수백 기를 공개함으로써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 했다. 이 역시 북한의 의도대로 되지 않자, 북한은 연평도 포격 도발을 함으로써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다.
연평도 포격은 한국민들의 대북 여론을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전국에 생중계된 포격 도발을 시청한 국민들은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었고 정부의 강경한 대응을 촉구했다. 국방부장관과 대통령 국방비서관이 경질되고, 정부는 북한의 추가도발에 대한 보복응징을 다짐했다.
“연평도 도발 전후 똑같을 수 없다”
2010년 11월 29일 대통령 담화에서 밝혔듯이, 기존의 대북정책은 “언젠가는 북한도 변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에 근거하였으나, 이제 북한 스스로 군사적 모험주의와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2011년 1월 3일 ‘신년특별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연평도 도발 이전과 이후가 똑같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북한의 추가 도발과 우리의 보복 응징으로 인한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자, 미국과 중국은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1월 19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의 긴장 고조와 북한의 우라늄 농축에 대하여 우려를 표시하고, 진정성 있고 건설적인 남북 대화가 필수적이며 6자회담이 조속히 재개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후 긴장완화와 북한의 3차 핵실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국은 조속한 식량지원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미·중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북한은 대남 대화공세를 개시함으로써 불과 며칠 전 군사적 긴장을 무색케 했다. 북한은 1월 5일 <노동신문>을 통해 남북 당국사이의 회담을 ‘무조건, 조속히’ 개최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대화를 촉구하다가, 1월 20일 “천안호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조선반도 군사적 긴장을 해소할 데 대하여” 제하의 기사를 통해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의하였다. 이후에도 북한의 대화요구가 거의 구걸에 가까울 정도로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2월 초 개최된 군사실무회담이 연평도와 천안함에 대한 사과 문제로 결국 결렬되었으나, 북한은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려 하였다. 2월 초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표류한 북한 어부 31명 가운데 귀순 의사를 밝힌 4명을 송환대상에서 제외하자, 북한이 ‘엄중한 후과’를 들먹이며 강력하게 반발하기도 하였으나 오래 가지는 않았다.
백두산 화산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북한의 전문가 회담 제안을 우리 측이 받아들여 3월 29일과 4월 12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와 개성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주변국이나 남북 모두 대화의 필요성은 있으나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사과 여부가 향후 남북관계를 좌우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의 불안정을 우려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을 시급히 다루고자 한다.
중동발 자스민 혁명으로 예민해진 북한은 내부안정을 최우선시하고 있으며 시급히 식량지원을 받아 주민들의 불만을 가라앉히고 ‘강성대국’을 여는 내년을 준비해야 한다.
일반 주민뿐만 아니라 군대를 포함한 체제보위의 선봉에 있는 기관들에까지 식량사정이 긴박해지고 있다. 한국 역시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매듭을 풀고 새로운 차원의 남북관계를 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북한 사과 불가능 단정할 필요 없어
3월 31일 북한 국방위원회 검열단 대변인은 “대화를 해도 통이 큰 대화를 하고, 전쟁을 해도 진짜 전쟁 맛이 나는 전쟁을 해보자는 것이 우리 군대의 입장”이라며 전쟁이냐 대화냐 결정하라는 식의 압력을 가했다.
하루 뒤 2011년 4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해 사과표시를 해야 한다. 그게 있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함으로써 다시 한 번 ‘사과’가 남북대화의 조건임을 밝혔다.
향후 남북관계는 전쟁이냐 정상회담이냐의 극과 극을 오갈 정도로 전망이 불투명하다. 5·24조치 이후 북한은 엄청난 압박을 받았고, 이것이 자존심을 버리고 우리와의 대화를 요구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식량지원과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은 자칫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원칙을 고수하고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켜 진정성 있는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대북 압박과 함께 우리가 주도하는 대화의 장에 들어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는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사과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필요도 없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정말 절박하다면 한국에 사과를 못 할 이유도 없으며,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사과가 어렵다면 간접적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물밑대화나 특사파견 등을 고려할 수도 있다.
최진욱 /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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