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 | 통일 DNA를 깨워라! 2015년 3월호

동행취재

통일 DNA를 깨워라!

 

“선생님, 개성공단에 가보고 싶어요.” “야, 거길 어떻게 가.” 교실은 금세 웃음바다가 됐다. 그럼에도 “나도 가보고 싶다.”란 말이 여기저기서 새어나왔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한마디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서울외국어고등학교에서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통일 이후의 사회를 그려보는 ‘터놓고 통일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수업이 시작되기 전 10개 반 학생들에게 통일·북한에 대해 궁금한 점을 메모지에 받았다. 반응은 뜨거웠다. “북한에도 치킨집이 있나요?”, “탈북자가 중국에서 낳은 아이는 국적이 어떻게 되나요?” 등 800여 개의 질문지가 모였다. 통일교육 담당교사 이나영 선생님은 학생들이 직접 궁금해 하던 것을 중심으로 정규수업을 구성했다. “통일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을 창구가 없어 궁금한 것이 해소되지 않았던 거더라고요.”

“선생님, 개성공단에 가보고 싶어요”

선생님은 개성공단에 가고 싶다던 학생의 바람을 이뤄줄 수는 없지만 방법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중 문뜩 떠오르는 한 인물에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메일을 보냈다. 통일부 차관을 역임하고 얼마 전까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었던 홍양호 박사였다. 그가 아이들에게 개성공단에 대한 특강을 해준다면 더 할 나위없을 것 같았다. 며칠 후, 의외의 답신이 돌아왔다. “자발적으로 통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정말 기특하네요. 특강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개성공단에서 가장 가까운 남북출입사무소를 방문하는 것은 어떤가요?”

이렇게 뜻하지 않은 기회로 지난 2월 14일 서울외고 학생 12명은 개성공단에서 가장 가까운 남북출입사무소(도라산 CIQ)를 찾게 되었다. “학원도 빠지고 왔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은 이제 고3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관심 있던 현장을 방문해서 그런지, 아이들의 눈빛에는 기대가 한가득 안겨있었다. 버스는 1시간여를 달려 민간인통제구역을 지나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국가 간 이동을 위해 출입국사무소가 있듯이 남북에는 출입경사무소가 있습니다.” 남과 북을 오가는 이들이 모두 거쳐 가는 이곳. 학생들은 이곳을 지나며 북한으로 가는 길을 만나보았다. 출입경사무소는 마치 공항의 출국현장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다만 북한으로 가기 위해서는 남북한 당국의 허가가 필요했다. 또한 잡지, 신문, 휴대전화 등을 가지고 갈 수 없다. 보안검색대를 지나 간단한 신고를 한 후, 북한으로 향하는 입구에 섰다. 10분 거리의 북한에 가는 것이 다른 나라를 오가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더 힘든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을까. 비록 오늘 학생들은 북한 땅을 밟을 수는 없었지만 훗날 이 경계를 직접 건너가 볼 날을 상상하는 듯 했다. 이어 도라산역에 들러 서울에서 출발하여 도라산에 도착한 DMZ 열차를 둘러보았다. 이런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고 하는 아이들 말처럼, 도라산역에는 내국인들보다 외국인의 방문이 훨씬 많았다. 한국에 관광 온 외국인들이 많이들 방문하는 곳이지만, 정작 우리의 관심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개성공단은 남북 모두 필요한 자산”

짧은 시간 현장의 여운을 뒤로 하고, 홍양호 전 위원장의 개성공단에 대한 설명이 시작됐다. 학생들은 귀를 기울였다. “현장에서 보니 생생하죠?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서 10분 정도 가면 북측 출입사무소가 나옵니다. 개성공단은 6km만 가면 되요. 2003년 첫 착공식을 한 개성공단은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음에도 현재 125개 기업에 북측 근로자 5만명 정도가 일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선진화 산업으로 가고 있죠. 대신 인건비가 너무 비싸졌어요. 제조업 공장들은 문을 닫거나 인건비가 싼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옮겨야 할 상황에 처했답니다. 그때 개성공단이 문을 열게 된 거죠. 문 닫을 위기에 놓여 있던 공장들이 개성공단이 생기며 살아났습니다. 개성공단의 인건비는 월 평균 160달러 정도 되니 가격 경쟁력이 높죠. 한편 처음 공단이 세워질 때 개성사람들은 ‘굴뚝산업이 들어오면 북한 땅이 오염된다.’고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오염폐수는 임진강을 거쳐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니 폐수는 물고기가 살 수 있을 정도로 정화하여 내보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개성시민들도 안심하고 있죠, 거기다 식수도 공급해주고 있어요. 개성공단은 우리 산업을 위해, 통일정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남북 모두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자산이 됐죠.”

학생들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이야기들이 나오니 더욱 관심을 가졌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김연아 신발, 전기밥솥, 아웃도어, 딱풀 등의 제품이 개성공단에서 생산됩니다. 지금 여러분이 입은 옷 중에도 북한에서 만든 옷이 있을 수 있어요. 개성공단 내에 가장 크게 보이는 건물은 종합지원센터에요. 남북은 이 건물을 같이 쓰며 함께 일하고 있어요. 1층에 진출한 우리은행 창구에는 북한 여직원들이 일하고 있고, 공단 내 편의점 CU에도 북한 직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현대아산에서 면세점도 만들었는데 화장품의 인기가 좋답니다.” 그는 지난해 있었던 개성공단 중단사태에 따른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남쪽에서 사람과 차는 못가고 개성공단에 있는 것은 가지고 올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화물차가 나갔는데 나중에는 승용차만 남으니 뒷좌석도 모자라 운전석 앞만 보이게 해서 물건을 날랐죠. 도로는 군사지역이라 물건이 떨어져도 내릴 수 없어요. 따라서 항상 꼼꼼히 확인하고 차가 떠나고 나면 남한에서 하는 생중계 방송을 통해 제대로 도착했는지 확인하곤 했답니다. 하나의 사고도 없었던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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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렇게 가까이 살고 있다니”

강연이 끝난 후 도라산전망대에 들러 북녘 땅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개성시내까지 보인다는데 이날은 아쉽게도 안개가 앞을 가렸다. 대신 개성공단에서 물자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남쪽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북한 근로자들의 손으로 완성된 그 제품들은 남한 소비자의 손으로 건네질 것이다. 이처럼 가려져 있던 일상의 교감이 학생들에게도 전해질까. 김소은 학생은 “남북한이 이렇게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는 걸 직접 보고 들으니 놀랐어요. 더구나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 살고 있다니, TV에서 보던 북한이 진짜 옆에 있더라고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김태윤 학생은 “우리가 사용하는 풀이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졌다니 신기했어요. 앞으로 친숙한 물건을 보면 더 애용할 것 같아요.”라며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변혜인 학생은 “교실에서는 한정적으로만 배웠는데 학원도 빠지고 온 보람이 있어요. 남북한이 교류도 점차 늘리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돌이나 북한의 모란봉악단이 교류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라며 앞으로의 남북교류를 기대했다.

오늘 하루의 체험을 통해 아이들의 삶이나 가치관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다르지 않은 모습,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하는 모습에서 아이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나영 선생님은 아이들이 오늘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길 바랐다. “수업시간에 한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통일이 되면 제가 가르칠 애들이 북한 사람일 수도 있겠네요.’ 아이들에게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통일을 한번 생각해보고 내 삶으로 받아들여 통일이 되었을 때 내 자리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계속해서 아이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통일 DNA’를 깨워줘야겠죠.”

선수현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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