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온 내친구 | 고향을 묻지 마세요 2015년 3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1
고향을 묻지 마세요
나는 우연한 기회에 탈북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하게 되었다. 그들을 만나기 전 나는 탈북자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탈북 아이들과 웃고 울며 4년이 지나고 나니, 어느 정도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탈북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을 것이다. 이 지면에 내가 보고 들은 탈북 아이들에 대한 모든 것을 그려 나갈 생각이다.
“북한말 쓰면 무시하고 깔볼까 겁나요”
흔히 북에서 온 사람들은 말투부터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탈북 친구들을 만나며 알게 되었다. 탈북 아이들 대부분 평이한 서울말을 쓴다. 아니 쓰려 노력한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너는 고향이 무산이라며 전혀 사투리를 안 쓰네.” 늘 가까이 지내던 선희에게 어느 날,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탈북 친구들에게는 무엇이든 직설적으로 묻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가족이야기라든가 탈북 동기에 대한 것 등.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아픔을 묻는 것일 수도 있기에.)
“일부러 안 씁니다. 인천 공항에 내리는 순간, 예전의 나는 뭐든 잊고 싶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여기서 북한말 쓰면 사람들이 무시하고 깔볼까 겁납니다.” 나는 가볍게 물었는데 아이는 너무 진지하게 대답했다. 고난의 행군 시절에 병든 아버지가 굶어 죽은 모습을 실제로 보았다는 선희. 그 아이의 시니컬한 말은 많은 걸 내포한 듯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수업 시간의 주제가 ‘아르바이트’였는데 선희가 쓴 글은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나는 고향에 있는 엄마를 모셔오기 위해 주말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자리를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내 말투 때문에 손님들이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점장님이 나를 불러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함경북도 무산임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쩐지 말투도 다르고, 손님들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게 이상하다 했다.” 아저씨는 외계인 보듯 나를 쳐다보았다. 다음 달, 나는 TO가 없다는 이유로 잘렸다. 억울하고 기가 막혔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 이후로 텔레비전을 보며 서울말을 피나게 연습했다. 이제 나는 어딜 가든 북에서 왔다는 말을 절대 안 한다.
이 글을 읽은 뒤, 선희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모두가 다 같지 않으니 마음을 풀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선희가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얻은 경험일 테니 말이다.
한편 선희와 다르게 진규는 어디를 가든, ‘북에서 온 사람’임을 떳떳이 밝힌다. 자기 고향인 ‘청진’ 이야기를 옛날이야기 하듯 술술 전하기도 한다. “우리는 노는 게 바닷가에 나가 미역 줄기를 따오는 거에요. 옥수수밥에 미역국이라도 실컷 먹기 위해서죠.” 이 말을 하며 진규는 추억에 잠긴 듯 북쪽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엄마가 가끔 밥솥 가장자리에 옥수수 가루 잘 버무려서 해 준 꼬장떡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북에서 온 사람 욕먹는 게 싫어 더 열심히 살아요”
어느 날, 피자를 먹으며 남과 북의 음식에 대한 차이를 말할 때도 신선했다. 그런 진규를 색안경을 끼고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공부하는 과정이라든가 진로 등에 대해 진솔한 마음으로 돕기를 자청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다며 싱긋 웃는다. 진규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한다. 진규는 자신의 신분을 말한 만큼 매사에 책임을 지려 애쓴다. 책임감도 강해서 주위의 칭찬을 많이 받는 학생이다. 진규가 언젠가 이런 말을 내게 한 적이 있다. “전 탈북자는 자기 이권만 쫓아다니고, 게으르다는 말이 가장 듣기 싫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살려는 거지요. 나 때문에 북에서 온 사람들이 욕을 먹는 건 싫으니까요.”
이런 저런 사연을 안고 이 땅에 온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이 바뀔 때가 되었다고 본다. 단지 자라 온 환경이 다를 뿐 같은 형제요, 자매라는 인식을 갖고 그들을 바라본다면 그들이 굳이 신분을 숨겨야 할지, 아닐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택시 운전을 하시는 분들도 손님에게 가장 먼저 지켜야 하는 수칙 중에 “고향이 어디세요?” 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지역색이 강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그 선입견의 옷부터 벗는 것이 탈북민을 끌어안는 첫 걸음이 아닐런지.
박경희 / 하늘꿈학교 글쓰기 지도교사
Q. 남한에서 시작할 학교생활에 기대가 가득해요.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재미있는 학교생활도 하고 싶은데 친구들에게 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제가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말하면 저를 불편해 하거나,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까요?
A. 입학부터 졸업까지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바뀌지 않는 북한과 달리 남한에서는 매년 새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새롭게 사귀는 친구들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할지가 중요한 문제겠죠?
많은 탈북청소년 친구들이 자신이 북한출신이라는 것을 숨기고 생활합니다. 편견으로 인한 무시와 차별을 걱정하기 때문이죠.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없을 만큼 남한생활에 적응한 친구들의 경우 오히려 숨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남한 친구들이 듣기에 어색한 말투가 아니라면 더욱이나 드러낼 필요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불편할 수 있겠죠? ‘작은 말실수로 인해 들통이라도 나면 어쩌지.’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먼저 온 탈북청소년들의 경험에 의하면 처음에 용기내기가 어렵지, 막상 말하고 나면 한결 마음도 편하고 학교생활도 자연스러워진다고 합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탈북청소년의 경우,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고 친구들에게 알린다면 학업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학교생활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것을 물어봐도 오해가 생기지 않고 이해받을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 정답은 없습니다. 북한 출신이라는 것을 밝히겠다고 결심했다면 용기를 가지고 친구들에게 알리세요. 그리고 드러내기가 꺼려진다면 마음의 용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며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보세요. 담임선생님께 이러한 마음을 풀어놓으면 헤아려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밝히길 강요하기보다는 이러한 결정을 지지해 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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