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3월 1일

세미나중계 | “남조선 바람, 북한을 붕괴시키진 않는다” 2015년 3월호

세미나중계

남조선 바람, 북한을 붕괴시키진 않는다”

 

‘평양에서 그룹 소녀시대의 춤이 유행한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현빈 트레이닝복을 북한에서도 입는다.’ 한류가 북한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점은 탈북자들의 증언과 다수 매체의 보도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류가 북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통일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2월 13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는 ‘북한과 남한 사이 : 민족, 사상, 문화’를 주제로 북한사회문화학회 학술회의가 개최됐다. 이날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북한한류의 의미’ 발제와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오유석 성공회대 교수, 정은미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의 토론을 통해 북한한류의 실상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교수는 북한한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지난 2월 13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북한과 남한 사이 : 민족, 사상, 문화’라는 주제로 열린 북한사회문화학회 학술회의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13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북한과 남한 사이 : 민족, 사상, 문화’라는 주제로 열린 북한사회문화학회 학술회의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송혜교 머리, 한국식 춤 … ‘쟤는 좀 봤네’

2000년 이후 남북한 교류협력의 확대는 북한 내부에 남한의 사회문화적 가치가 점차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남조선 바람’이 북한 당국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확산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북한주민은 드라마, 영화, 가요 등을 통해 남한 연예인의 스타일도 모방하고 있다.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신라면, 초코파이 등 식량과 전기밥솥과 같은 전자기기, 일상용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평양, 신의주, 청진 등 일부 대도시와 중국과의 접경지역에서 시작된 북한의 한류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남한문화를 접하는 수단은 알판(CDR)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최근 USB와 포터블하드 사용도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류를 접한 탈북청소년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친구들과 ‘가을동화’를 봤어요. 송혜교의 매직 머리가 유행하기도 하고, 오락회에서 춤도 따라하고 했어요. 서로 얘기는 잘 안하지만 한국식을 따라하는 것을 보면 ‘쟤는 좀 봤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한류가 확산된 배경으로는 제도적 지원 사업, 경제협력 사업을 통해 남북 주민들 간의 접촉기회가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의 개방과 진전, 한·중관계의 발전에 따라 중국을 통한 남한문화의 유입이나 미국 북한인권법 제정에 따른 한류유입 활성화도 꼽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북한주민의 문화적 소비욕구가 맞물렸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북한 청년들, 한류를 일상의 놀이문화로 소비

한류에 따라 북한의 전통적인 선전선동 매체는 사회적 설득력이 약화되었고, 남한의 체제 및 사람들에 대한 인식 변화도 가져왔다. 남한문화는 안락한 삶을 꿈꾸게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현실과 차이가 있는 남한을 접함으로써 환상이나 부정적 인식을 조장한 측면도 있다. 이처럼 북한에서 한류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으나 남한문화 접촉이 체제 저항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북한 청년들은 폐쇄적 환경에서 한류를 일상의 놀이문화로 소비하고 있으며, 이는 억압적 권력에 대한 문화 저항이며 미시적 권력 생성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한편 2012년 김정은 체제가 성립되면서 북한의 국가체제가 전반적으로 복원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사회통제체제도 안정화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기본적으로 한류 유통과 경험을 불법적인 행위로 단속하고 있으며, 한류를 포함한 자본주의 문화유입을 ‘비법적 행위’로 규정하는 법령도 마련했다. 특히 한류에서도 정치적 의미가 높은 뉴스 등에 통제를 집중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두드러지는 문화적 변화는 ‘모란봉악단’으로 대별될 수 있다. 모란봉악단이 기존 문화적 흐름과 차이가 있는 것은 젊은 여성으로만 구성됐다는 점, 상대적으로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점, 대다수 악기구성이 일렉트로닉 악기로 편성되었다는 점이다. 모란봉악단은 연주하는 노래의 종류뿐 아니라 짧은 스커트를 입고 다양한 율동을 하는 등 과거 북한에서 보기 어려웠던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창단부터 최고지도자가 직접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문화와 자극적 문화의 수용이라고 할 수 있는 모란봉악단은 외부문화 유입확대, 젊은 세대의 문화취향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지속되고 있는 ‘시장화’는 외부문화의 유입을 가속화 시키는 동시에 북한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동반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민들의 문화적 취향도 변화시켰다. 하지만 모란봉악단이 한류에 의한 산물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비약이다.

물론 북한 한류에 관심이 확대되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것도 있으나, 그 성과가 과대평가되는 문제도 있다. 특히 체제변화와 관련하여 북한붕괴론으로 연관시키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또한 남북교류 및 통일문화와의 논의가 부족한 현실에 대해 북한주민들의 의식전환과 남한과의 문화적 거리감 축소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남북 사회문화 교류확대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바, 그동안 단절되었던 사업을 중심으로 문화교류를 복원시키면서 자연스럽게 남북문화의 접촉을 고려해야 한다.

“남한문화 시청, 새로운 정보습득 도구”

이에 대해 토론자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의 드라마, 영화, 가요뿐만 아니라 교양시사, 뉴스, 예능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장르가 인기 있다. 북한주민들이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보는 이유가 재미와 흥미도 있지만 남한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기 위한 도구적 시청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며 북한한류의 원인을 덧붙였다. 또한 “한류가 전달된다고 보기보다는 북한주민의 목적이나 관심에서 비롯된 자발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며 북한사회에서 한류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한문화 접촉이 체제저항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모란봉악단에 대해서는 “북한 당국이 위로부터의 억압적 수단과 통제만으로는 한계를 인식하고 ‘수준 높은 변화’를 요구하는 인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며 “북한주민들의 인식과 사상이 변화되는 상황에서 무조건 통제할 수 없기에 북한 당국으로서는 오히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정은미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에서 거주시 한류경험에 대한 응답률이 전반적으로 80%(2008년 63.8%, 2009년 57.1%, 2011년 76.7%, 2012년 90.0%, 2013년 88.0%, 2014년 85.9%)를 상회한다는 ‘북한주민 의식조사’ 결과를 말했다. 그는 “한류의 경험이 통일·통합의 관점에서 문화적 충격을 완화하는 기능이 있는 동시에 남한사회에 대한 왜곡된 상이 형성됨으로써 오히려 통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따라서 북한 한류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지나치게 정치화되거나 기능주의적으로 경도되는 것은 경계되어야 한다.”며 “북한의 문화정책 변화가 한류확산에 대한 대응이라고 하는 해석은 남한 중심적 시각일 수 있다. 모란봉악단의 파격적 퍼포먼스와 콘텐츠의 다양성 추구 등이 문화적 취향이 달라진 인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변화한 것도 있지만 카리스마적 지배권력을 영속시켜야 하는 젊은 시도자에 맞춰 새롭게 기획된 ‘극장국가’ 변형의 한 사례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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