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남북겨레문화원, 문화통합 앞당기는 초석 되어야 2015년 3월호
기획 | 남북, 문화로 통하라!
남북겨레문화원, 문화통합 앞당기는 초석 되어야
통일부는 올해 연두 업무보고에서 국민, 북한, 그리고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통일준비를 3대 추진전략으로 정하고, ‘북한과 함께하는 통일준비’ 전략에 따른 과제 중 하나로 ‘남북겨레문화원(가칭) 서울-평양 동시 개설’을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남북겨레문화원 개설 과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민생·환경·문화 등 3대 통로 중 ‘문화 통로’를 개척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첫 번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남북겨레문화원이 이번에 처음 언급된 것은 아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추진과제 중 하나이자 박 대통령이 ‘드레스덴 통일구상’에서 공식 제안한 바 있는, 남북교류협력사무소 포맷을 약간 바꿔 좀 더 구체화한 것이다.
통일부가 업무보고에서 밝힌 남북겨레문화원 관련 내용은 두 줄로 요약되어 있다. 즉 문화원이 수행할 주 기능과 역할은 “민간 사회문화교류 지원 등 남북 간 ‘문화 통로’의 거점으로 운영, 겨레말큰사전·개성만월대발굴 등 남북 간 문화·예술 교류협력 성과물 전시”의 두 가지다. 당초 남북사무소가 남북 간 상시 접촉·협의라는 공식적인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 비해, 남북문화원은 좀 더 소프트 한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남북 간 문화 통로의 거점으로 운영한다’는 표현 속에는 그 동안 주무부처인 통일부, 그리고 관계부처인 문화부가 사회·문화 분야에서 당국 간 공식 대화채널을 구축하기 위해 고심해 온 흔적이 서려 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설치하도록 규정된 ‘남북사회문화교류협력공동위원회’, 2003년 제1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도 구성문제 검토에 동의한 ‘남북사회문화협력분과회의’, 2007년 남북총리회담에서 구성에 합의한 ‘남북사회문화교류협력추진위원회’ 등 모두 세 차례나 구성이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북한 개성의 고려 성균관과 선죽교. 유네스코는 지난 2013년 6월 23일 제37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북한이 등재 신청한 개성역사유적지구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를 확정했다. ⓒ연합뉴스
남북사무소보다 소프트한 측면에 초점 맞춰
현 시점에서 정부가 서울과 평양에 남북겨레문화원 동시 개설을 추진하는 이유는 그 동안 남북 사회문화 교류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간 사회·문화 교류가 독자적인 동력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정치·군사적인 상황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교류가 장기적인 비전에 의한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 남북 간 신뢰관계 형성으로 발전하기보다는 단발성 이벤트 사업이나 ‘한건주의식’ 행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사회·문화 교류가 정치·군사적인 경색 및 긴장 국면을 해소해 주기는 커녕, 그 반대의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에 사회·문화 교류가 정치·군사 등 환경적 상황의 변화와 관계없이 상시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제도적 장치의 하나로 남북겨레문화원 설치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통일부가 남북겨레문화원의 역할과 기능으로 교류협력 성과물 전시와 문화 통로의 거점이라는 두 가지를 제시했지만, 실제로 개설할 것인지 여부와 그 명칭, 그리고 구체적인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는 남북 간에 협의와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분명한 점은 개설된다고 해도 상대편 사회의 체제이데올로기를 직·간접적으로 선전·선동하거나 정치색 짙은 사회·문화 활동은 양측 다 원치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개설 초창기에는 남북 간에 한민족으로서 아직 공통적인 부분이 많이 남아 있고 이데올로기의 개입이 쉽지 않은 분야, 예를 들면 문화유산, 전통문화, 생활문화 분야의 교류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실현 가능성의 차원에서 볼 때 문화원을 남북 간 상시 접촉·협의 창구로 설정하기보다는 ‘남북사회문화교류협력추진위원회’의 현지 연락사무소로 자리매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광복 70주년 공동행사 주관처 역할 제의해 볼만
사실 현재와 같이 남북관계가 골이 깊은 경색국면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는 서울-평양 남북겨레문화원의 동시 개설이 실현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특히 북한은 우리 측의 사회문화교류 제의 자체를 ‘평화적 이행전략’의 하나로 보고 있기 때문에, 어떤 계기로 남북 간의 긴장관계가 해소된다 하더라도 먼저 북측의 신뢰를 쌓은 후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 마침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로서 공동행사나 교환행사를 통해 대치국면을 해소하고 신뢰를 쌓기에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북한 당국은 명분에 약한 모습을 보이므로, 북측에 제안하는 광복 70주년 행사를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불어넣을 염려가 없는 아이템으로 구성하고, 거기에 인도적 지원까지 병행한다면 협상에 응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극히 제한된 분야에서만 소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문화 교류의 물꼬를 트는 일이다. 전략적인 차원에서 사려 깊게 접근한다면 광복 70주년 기념 공동행사 제안은 분명히 남북대화와 교류의 물꼬를 트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남북대화가 이루어질 경우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70주년 행사가 가장 큰 이슈가 되겠지만, 대화가 진척되는 대로 2007년 11월 양측이 합의한 ‘남북사회문화교류협력추진위원회’의 구성 문제를 우선적으로 거론해야 한다. 추진위원회의 구성이 합의된 후 위원회의 현지 연락사무소 겸 교류행사의 현지 주관처로 남북겨레문화원 개설을 제안한다면 개설 명분이 훨씬 강화되어 그 실현 가능성도 크게 높아질 것이다.
1985년 9월 해방 후 처음으로 교류가 이루어진 후 지금까지 남북 사회·문화 교류는 거의 일방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지난 30년간 문화·예술 부문 방북과 방남 실적을 보면, 방북이 159건 2,499명인데 비해 방남은 9건 590명에 불과하다. 이제 이러한 일방적인 교류가 쌍방향 교류로 전환되는 변곡점에 서울-평양에 동시 개설할 남북겨레문화원이 자리 잡고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나아가 서울과 평양에 있는 양 문화원의 역할이 민족대계 차원의 사회문화 교류와 협력으로 발전해 나감으로써, 통일 후 남북사회의 문화적 통합을 앞당기는 초석이 되기를 기원한다.
서울-평양에 동시 개설할 남북겨레문화원의 역할이 민족대계 차원의 사회문화 교류와 협력으로 발전해 나감으로써, 통일 후 남북사회의 문화적 통합을 앞당기는 초석이 되기를 기원한다.
오양열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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