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3월 1일

특집 | “작은 보폭과 인내심” 주목해야 2015년 3월호

특집 | 지방자치단체, 남북교류 ‘작은 길’ 열자

동서독 사례는? | “작은 보폭과 인내심” 주목해야

동서독의 도시, 즉 슈타트(Stadt) 간 자매결연에 대한 필요성은 이미 분단 직후부터 동서독 양측에서 제기되었으나, 1985년 말에 이를 위한 구체적인 협상이 시작될 수 있었다. 내독관계를 포함한 독일문제의 전반적 상황에 따라 도시 간 자매결연에 대한 양독의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내독 도시 간 자매결연 추진과정에서 특히 도시선정, 조약협상, 그리고 조약문 작성과 관련하여 이견들이 많이 표출됐다. 자매결연 도시 선정은 서독 도시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져 대개의 경우 동독 정권 고위층에 의해 결정되었다. 서독 도시들이 자매결연 신청 시 상대도시를 지명한 경우도 드물게나마 있었지만, 대부분 동독 측의 결정에 따랐다. 동독 정권이 도시 선정에 있어서 어떠한 기준을 적용했는지 밝힌 적은 없으며, 자매결연을 체결한 도시 간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어려웠다.

동독 정부가 주도하는 도시 선정과 달리 실제 협상과정에서는 동독 도시 당국이 전면에 나섰다. 협상은 통상적으로 동독 측 대표단이 먼저 서독 측 상대도시를 방문하고, 이후 몇 주 안에 서독 대표단이 조약문의 내용을 확정짓기 위해 답방하는 과정을 밟았다. 답방 시 대체로 동독 측의 태도에 따라 조약의 성사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동서독 도시들이 체결한 자매결연 조약문들은 형식면에서 일관성이 없었으며, 자매결연과 관련한 양 도시 간의 구체적 행사계획(실행 프로그램)은 부속합의서 형태로 조약문에 첨부되는 것이 통례였다. 실행 프로그램은 서독 도시들이 여타 사회주의국가 및 서방국가 도시들과 체결한 내용에 비해 양적·질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맞이해 지난해 11월 9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념 축제 도중 독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 외벽에 ‘평화’를 의미하는 단어가 비춰지고 있다. ⓒ연합뉴스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을 맞이해 지난해 11월 9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념 축제 도중 독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 외벽에 ‘평화’를 의미하는 단어가 비춰지고 있다. ⓒ연합뉴스

동독 자매결연 도시 당국, 서독과의 협상 전면에 나서

조약문 내용이 동서독의 정치적·법적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약 문구 및 용어 선택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특히 양 독일 간 정치체제의 차이에 기인하는 개념의 상이성 탓에 용어선택을 두고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동서독 도시 간 교류협력 사업은 연간 실행 프로그램의 내용과 변화추이로 일반적 실태 및 특성을 찾을 수 있다. 실행 프로그램에 명시되는 교류협력 사업의 기본 골격은 대체로 유사하고, 갱신 시 내용상 변화는 거의 없었으며, 매우 예외적으로만 새로운 사업이 추가될 뿐이었다. 대개의 경우 동독 측은 재정적·기술적 문제를 구실로 오히려 전년도에 비해 교류협력의 양을 더욱 줄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교류협력은 대체로 점점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수 있었다.

교류협력 사업들은 모두 지방정부의 자력으로 추진되었다. 사업의 종류는 전문가 교류, 체육 교류, 청소년 교류, 평화문제 관련 모임, 문화적 교류협력, 신문교환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양적인 측면에서 성과가 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1986년부터 1989년 11월까지 자매결연 사업에 참여한 동서독 주민의 숫자는 분단 이후 동서독 주민들의 상호방문 수에 비교하면 극히 미미한 것이었다. 질적 성과 역시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특히 자매결연 사업이 점차 확대되기 시작하던 시점에서 급작스럽게 통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비록 자매결연 사업이 독일통일 실현에 어떠한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내독관계 발전에 대한 간접적인 기여와 그 의미는 결코 무시될 수 없다.

내독관계 발전이나 독일통일 과정에 있어서 내독 도시 간 자매결연이 갖는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양 독일 주민들 간 접촉 및 대화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하였다. 둘째, 상호접촉면과 대화가 확대됨으로써 상호유대감이 증대될 수 있었다. 셋째, 도시 간 자매결연을 통해 내독 간 교류와 대화의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공간이 마련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자매결연 사업은 한계와 문제점도 가지고 있었으며, 주 원인은 동독 측에 있었다. 예컨대 동독 측의 경직성과 접촉을 가능한 한 차단하려는 시도, 동독 당국의 관료주의적 장애와 서독 측의 높은 기대, 동독 측 상대 단체의 부재, 동독 측 참가자들의 심리적 위축, 경우에 따라 주민들의 접촉보다는 동독 측 대표단의 서독여행 기회만을 보장하는 결과 등을 들 수 있다.

나아가 서독 측의 동독 태도에 대한 효율적 대응 및 관리의 부재도 간과될 수 없다. 사업추진과정에서 서독 내 혼란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사업추진에 대한 준비부족이다. 둘째, 연방차원에서 내독 도시 간 자매결연에 관한 통일된 지침이 조기에 마련되지 못함으로써 중앙집권적 행정체제를 가진 동독 측과의 협상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게 하였다. 셋째, 자매결연 조약체결과 관련하여 정부의 권능을 둘러싼 연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갈등이다.

처음부터 과도한 관계증진 꾀하지 말아야

향후 지자체 간 교류협력이 점진적으로 시작될 경우, 우리가 마주하게 될 가장 큰 문제는 북한 측의 전략적 접근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내독 도시, 즉 슈타트 간 자매결연 사업에 참여했던 구 서독 지방행정가 및 정치가들이 주는 다음의 조언은 매우 의미가 크다. 먼저 ‘작은 보폭’의 점진적 접근 및 인내심이다. 즉 북한의 경직되고 방어적인 태도에 대해 기본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접근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대화 시 확고한 태도다. 예컨대 자매결연 협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자매결연을 성사시킨다’는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으며, 지속적이고 규칙적인 접촉을 유지하는 가운데 상호방문이나 관계 확대를 단호하게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 측 파트너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독 도시 간 관계처럼 점진적으로 발전해야 하며, 처음부터 과도한 관계증진을 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좋은 제안들도 북한 측이 이를 수용할 준비자세가 되어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손기웅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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