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어요 | “자랑스런 한인의 터전 만들어주고 싶어” 2016년 8월호
만나고 싶었어요 | 전광근 러시아 아르촘 시장 대외관계 특보
“자랑스런 한인의 터전 만들어주고 싶어”
Q. 사할린에 이주하게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A. 아버지 고향이 경남 양산입니다. 아버지께서 19세 때인 1941년 일본군에 의해 갑자기 끌려왔는데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이 사할린이었어요. 일본이 패망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방도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사할린에 정착하게 됐죠. 어머니는 경북 대구 출신으로 1938년도에 가족 모두가 고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사할린으로 이주했다고 해요. 두 분이 사할린에 살면서 부부의 인연을 맺고 제가 태어났죠. 저희 아버지는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된 이래 한 평생을 한국에 있는 형제와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돌아가신 분입니다.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도 못하고 친구 4명과 함께 부산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혀 느닷없이 사할린으로 끌려왔다고 해요.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사할린에 와서는 정말 뼈가 으스러지도록 탄광촌에서 막노동을 했고요. 당시 아버지는 러시아어를 한 마디도 할 수 없고 국적도 러시아인이 아니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온갖 잡다한 막노동뿐이었습니다. 사할린에서 일본군이 철수하고 나서는 막노동을 벗어나 잠시 사진사로 일하시다가 우연히 거울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배워 현지 가구 공장에서 일하면서 돌아가실 때까지 가족을 부양하셨죠. 거울을 제조하는 기술자니 어쩔 수 없이 내내 화공약품을 취급하다가 암으로 1979년, 향년 53세에 돌아가셨어요. 죽어서라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화장하여 그 유골을 작은 통통배에 담아 강에 띄워 달라고 자식들에게 유언을 남기셨죠. 당시 화장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지인 몇몇과 함께 남몰래 산위로 올라가 화장을 하고 아버지 유언대로 한국으로 향하는 방향에 띄워 보내드렸습니다.
Q. 한국어가 상당히 유창한데요?
A. 저는 한국인입니다. 한국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동포 2세죠.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 한국인이란 정체성 교육과 그에 맞는 인성 교육도 엄격히 받았어요. 부모님께서 러시아어를 잘 못하셨기 때문에 집에서는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의사소통 한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일본어도 할 수 있는데 이는 어머니께서 사할린에 있는 일본 중학교에 다니셨거든요. 어머니로부터 일본어를 조금씩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었죠. 덕분에 지금 아르촘 시청에서 일본과 교류협력 업무를 진행할 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Q. 아르촘시에는 어떻게 정착하게 되었는지?
A. 러시아에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이 러시아 국적 취득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인데요. 그러다 보니 사할린에서 할 수 있는 분야가 너무 제한적이었어요. 17세에 대학 교육을 받아보려고 시베리아로 무작정 떠났고 의대에 가보겠다고 객지에서 홀로 주경야독을 하며 진학 준비를 했지만 끝내 낙방했죠. 그래도 거기서 평생의 배필인 지금의 아내를 만났어요. 아내도 고려인 동포입니다. 고향은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연해주 아르촘시고요.
Q. 러시아 국적은 언제 받았죠?
A. 1975년입니다. 이후 병역 의무를 하기 위해 군대에 가게 됐죠. 근무지는 연해주 우수리스크였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가 아니었다면 제가 연해주로 터전을 옮겼을까 싶어요. 러시아 국적을 갖고 여권을 취득했는데 그간 외국인 신분으로 말 못할 수모를 얼마나 겪었던지 지금도 감회가 새롭네요. 1976년에 군대를 제대하고 공부를 다시 시작해 블라디보스토크 주립대학교(현재 극동연방대학교) ‘조선어과’에 입학하게 됐어요. 가족과 떨어져 혼자 유학 생활을 했죠. 당시 ‘조선어과’는 한·러수교 전이라 거의 활용도가 없던 학과였지만 부모님의 고국인 한국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선택했습니다.
Q. 아르촘시 공무원으로 일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학을 마치고 1982년에 사할린에 있던 가족 모두를 연해주 아르촘시로 데리고 왔어요. 사할린에 살 때 우리 집이 국가 토지계획에 의해 국가소유로 귀속되었고 대신 아파트를 지급받았는데요. 마침 사할린으로 이주하려는 블라디보스토크 사람과 그 아파트를 서로 맞바꿀 수 있어 운 좋게 거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죠. 아르촘시에서 낮에는 타이어 공장의 보일러공으로 일했고요. 틈나는 대로 아내와 함께 토마토나 오이를 비롯한 화훼 농사를 지어 시장에 내다 팔아 생활을 꾸려나갔죠. 1988년까지 직장과 농사일을 병행했고 이후 작은 숙박업과 자동차 부품 유통업도 했습니다. 아르촘 시청에 근무하게 된 계기는 당시 연해주에만 22개의 한국 봉제공장이 진출해 있었는데 그 중 10개가 아르촘시에 있었거든요. 아르촘 시청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한국 봉제공장을 관리하는 것이었는데 시청에서는 마땅한 인원을 찾을 수 없어 고민 중이었어요. 그 때 한국어를 전공하고 자유롭게 구사가 가능했던 제게 국제부 국장직 제안이 들어와 입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Q. 러시아 관료 사회, 차별은 없었는지요?
A. 러시아 관료 사회는 기득권이 강한 조직입니다. 처음에는 알게 모르게 서러운 차별도 많이 받았죠. 한국계 러시아인이 갑자기 국제부 국장직으로 영입되니 기존 공무원들의 시선도 따가웠던 것 같아요. 인간적으로 외로울 때가 많았죠. 하지만 그럴수록 인정받기 위해 맡은 일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한국 기업들과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며, 시청과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 나갔죠. 시청 입장에선 아르촘시에 진출한 외국 기업과 특별한 마찰 없이 안정적으로 세금을 거둘 수 있게 되다 보니 저의 업무 성과에 만족했던 것 같아요. 결국 2000년에는 시장 직속의 국제특보로 승진하며 아르촘시의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하게 됐고요. 지금은 주로 아르촘 시장을 수행하며 시청의 국제교류협력 행사를 주관하고 있어요.
Q. 한국과 관련된 업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들었어요.
A. 그렇게 생각해주니 감사합니다만 한국인이 러시아 어디선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자청해서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아마도 사할린에 살 때 외국 여권을 갖고 다니며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서러움이 너무 컸던지라 한국 사람들이 타지에서 고초를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힘을 보태려고 나섰던 것 때문에 그런 소리를 듣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이웃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힘이 되어주는 인심이 있지 않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죠. 주로 한국인이 러시아 공공기관과 민원 과정에서 애를 먹고 있다고 하면 도와주고 있고요. 또 한국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으로 10년 동안 활동해 왔거든요. 연해주에만 한인이 4만여 명 살고 있어요. 이에 통일 관련 각종 포럼이나 세미나에서 주요 인사로 초청되어 연해주에서 한국의 위상을 올리기 위한 건의 사항 등을 늘 알려주고 있죠.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 한인들의 기억에서 한국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뿌리와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렇게 계속 두면 한국어는 물론이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혀 모르는 동포들이 늘어날 텐데 저는 여기 동포들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 가는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파요. 그래서 저와 뜻을 함께 하는 한인 2세대 사람들 몇몇이 모여 지난 2010년부터 ‘다민족한국문화센터’라는 협의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요. ‘아르촘의 날’이면 한국 요리문화 페스티벌, 한가위 행사, 전통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하며 한인 동포들과 러시아 현지 시민들에게 한국 알리기 행사를 해오고 있고요.
Q. 센터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A. 행사장으로 쓰는 강당을 매번 임대하다 보니 예산을 맞추기 위해 항상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행사를 개최해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알 수 있도록 하는 ‘한국관 상설 전시장’이라든가 ‘한국어 학교’, 각종 문화체험 등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다목적 한국문화센터’ 전용 건물이 있으면 아주 좋을 것 같아서 한국에 제안했는데 쉽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몇 사람만의 뜻을 갖고 이 같은 큰일이 바로 실현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기회가 생길 때마다 꾸준히 한국 정부에 건의하고 있어요. 정부 차원에서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가능하지 특정 그룹의 제안으로 실현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서요. 자랑스러운 한인이라는 명맥을 유지하며 당당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 지금 제가 여기서 가장 이루고 싶은 소망입니다.
전명수 / 본지 러시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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