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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북한인권 개선, 통일시대 앞당길 역사적 기회 2016년 8월호

시론

북한인권 개선, 통일시대 앞당길 역사적 기회

제2차 세계대전 내내 인권은 전쟁범죄, 제노사이드(genocide) 등의 잔혹하고 반인도적인 범죄에 광범위하게 시달렸다. 특히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의 대학살에 대해 국제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우슈비츠, 트레블링카 같은 끔찍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600만 유대인 포로들을 상대로 벌어진 독가스실 학살, 생체실험, 고문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국제사회가 느낀 강한 혐오감은 바로 뉘른베르크 재판, 극동국제군사 재판, 그리고 세계인권선언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후 여러 국제인권조약들이 채택되고 관련 기구들이 발족되면서 지구촌의 다양한 인권 문제는 법적인 측면, 때로는 군사적인 차원에서 다뤄진다. 법적인 장치는 국제사회가 인권 유린에 맞서 싸우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는데,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1993년)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1994년)의 설립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킬링필드로 불리는 캄보디아 내전 때 크메르루즈 반인권 범죄자 처벌을 위해 출범된 유엔-캄보디아 혼합 법정인 캄보디아 특별재판소(ECCC, 2003년)도 국제법의 효용성을 입증하는 사례다. 뿐만 아니라 남아공의 인종격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면서 넬슨 만델라가 1994년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된 쾌거 역시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싸운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표적인 승리로 뽑힌다.

국제사회, 북한인권 해결 위해 단호한 조치에 나서다

국제인권법의 틀 속에서 각 국가는 자국민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지게 되어 있다. 유엔의 보호책임원칙(R2P)은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거나 할 수 없을 경우, 더 나아가 자국민에 대해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를 경우 국제사회가 개입할 것을 권고한다. 이 ‘R2P’ 개념은 세계인권선언문의 30개 조항 모두를 위반하고 있는 세계 최악의 인권국가이면서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용케도 국제사회의 조명을 피해 온 북한을 떠오르게 한다. 내전 상태도 아닌 북한에서 자국민을 향한 김정은 정권의 잔혹 행위는 유엔의 개입을 촉발하기에 충분하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03년부터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면서 북한인권 개선을 시도하였지만 진전이 없자 2013년 3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를 설립해서 북한인권에 대한 새로운 국면을 모색하게 된다. 이 조사위원회는 1년간의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조사 끝에 기대 이상의 강도 높은 보고서를 제출하게 되는데 그 핵심은 3대에 걸친 수십 년간의 조직적 인권탄압이 ‘반인도 범죄’로 규정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안보리가 북한 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것을 권고했다는 점이다.

COI 보고서에는 공개처형, 고문, 투옥, 성폭행, 강제낙태, 외국인 납치, 특정 그룹 박해 등의 범죄 증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지도부에게 유례없는 강한 경고를 한 셈이다. 어떠한 면책 사유나 시효가 없는 반인도 범죄는 가해자들을 언제라도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갖는 부담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유엔의 단호한 조치에 힘입어 국제사회도 북한인권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다루게 된다. 캐나다 정부는 2013년 9월 28일을 ‘북한인권의 날’로 선포하였고, 보츠와나는 북한의 반인도 범죄를 문제 삼아 수교 40년 만에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그러나 가장 확고한 활동은 미국으로부터 전개되고 있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는 2014년 7월 28일 북한 주민의 인권보호 내용을 담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금융거래 봉쇄 법안, 이른바 『대북제재이행법안(H.R.1771)』을 여야 의원들의 초당적 지지로 통과시켰다. 법안을 발의한 공화당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이 북한 지도자의 돈줄을 막고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는 법안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상정한 『대북제재강화법안(H.R.757)』도 지난 2월 10일 상원에서 통과되었다. 이 법안은 제재의 범위를 북한은 물론 북한과 불법으로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개인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급기야 지난 7월 6일(현지시간) 미 국무부는 김정은을 포함한 대북제재 리스트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실명으로 제재 대상에 올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국무부는 『H.R.757』에 따라 북한의 심각한 인권 유린에 책임이 있는 인사들과 기관들을 규명해서 의회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명단에 오른 개인 15명과 기관 8곳에 김정은이 들어간 것은 가히 획기적이다. 제재 대상자들의 미국 입국 금지 조치와 미국 내 자금 동결이 실질적인 피해로 이어질 확률은 낮지만 김정은이 제재 대상이 된 그 자체만으로도 심리적인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정부의 대북제재 리스트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와 맞물리면서 대북 압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별도의 독자 대북제재를 추진할 것으로 보여 향후 북한에 대한 제재는 서방 진영 전체로 확산될 전망이다. 최근 유럽연합(EU)이 유럽 국가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침해에 대한 진상 파악에 나선 점도 무관하지 않다. 또한 미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당의 새 정강이 북한을 ‘김 씨 일가의 노예국가(slave state)’로 규정한 점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인권의 근본적 해결책은 결국 통일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몽골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인권과 핵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 통일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확한 진단이다. 북한인권 개선은 분명 통일시대를 앞당길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도 불구하고 분단 상태를 관리해서 북한과 공생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주장을 펼칠 때가 아니다.

유엔이 앞장선 지금 우리도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박차를 가한다면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 명시되어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 분명 가능해질 것이다. 한계에 이른 국제사회의 흐름을 잘 읽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정훈 / 외교부 인권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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