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어요 | “고려인의 현지 영향력, 통일한국 네트워크 핵심” 2016년 10월호
만나고 싶었어요| 손치근 전 카자흐스탄 알마티 총영사
“고려인의 현지 영향력, 통일한국 네트워크 핵심”
Q. 최근 북한이 제5차 핵실험을 하면서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사례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요?
A. 구소련의 가장 큰 핵실험장이 카자흐스탄 지역에 있었고 지금도 물론 각종 폐해가 드러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정책은 리더의 결단으로 가능했던 부분이라 생각해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리더십으로 추진되었다고 보거든요. 대통령이 확고하게 비핵화 정책을 강조해왔고, 결국 이것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구소련 국가라는 폐쇄적 이미지를 완전히 바꿀 수 있었죠.
실제로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15개 국가가 독립했는데, 카자흐스탄은 당시 경제 규모로 보면 거의 뒤에서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어요. 반면 우즈베키스탄은 이보다 한참 앞서 있었죠. 그런데 지금 보세요. 완전히 역전되었거든요. 일각에서는 석유 덕분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OPEC 국가들이 2~3% 성장할 때 카자흐스탄 경제성장률은 10% 가까이 기록했어요. 1994년 1,300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10배까지 증가했고요. 단순히 지하자원을 활용한 경제성장이라 단정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결국 정책결정자가 의지를 가지고 비핵화라는 국가적 정책을 추진해 국제사회로부터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대규모 원조와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고 봐요. 이제 카자흐스탄은 핵포기를 넘어서 ‘중앙아시아 비핵지대 조약’ 체결이나 ‘국제 핵연료 은행’ 창설 등을 주도하면서 평화와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이 진지하게 검토해 볼만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Q. 호주, 파푸아뉴기니, 일본 등 태평양 쪽의 국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다가 유라시아대륙 한가운데인 카자흐스탄으로 발령을 받으셨어요. 알마티에 처음 부임하셨을 때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A. 카자흐스탄 알마티 총영사로 부임했을 때 사실 너무나 생소한 지역인데도 마치 고향에 온 기분이 들었어요.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면, 우선 이 지역이 한민족의 시원지잖습니까. 역사적으로 봐도 투르크, 즉 ‘돌궐’이라고 불린 민족과 연합해 중국 대륙의 세력을 견제해오기도 했고요.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봐도 한민족과 상당히 가까워요. 카자흐스탄에서 거의 원형 그대로 발굴된 스키타이 문명의 진수인 황금갑옷 ‘골드맨’이나 기타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유물을 봐도 공통점이 많고요.
언어적인 부분도 상당히 유사하죠. 카자흐스탄어는 알타이 계열로 우리와 같은 어족이거든요. 제가 현지에서 뜻과 발음이 유사한 단어를 봤더니 대략 300개는 넘게 찾을 수 있었어요. 예를 들면 고구려의 수도가 아사달이었잖아요. 여기서 ‘아사’는 아침을, ‘달’은 응달·양달의 달, 즉 언덕이라는 의미가 있거든요. 그러니 아사달은 해가 떠오르는 아침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 카자흐스탄 수도가 아스타나잖아요. 유사한 발음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요. 그 다음 인류학적으로도 이 지역 사람들과 우리는 유사점이 많아요. 두개골의 구조나 DNA 등 어려 가지 부분이 상당히 닮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 민족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통해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Q. 국적, 언어, 민족이 모두 혼재되어 있는 고려인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A. 지금 고려인 사회의 젊은 세대들이 이러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죠. 자신이 속한 국가, 사용하는 말,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이주해 온 역사를 비춰보면 정말 다양한 요소가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거든요. 고려인들에게는 3가지 정체성이 있고 이를 러시아 전통 목재 인형인 마트료시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마트료시카 인형은 가장 작은 인형이 그보다 큰 인형 속에 들어가고 그것이 더 큰 인형 속으로 들어가는 형태잖아요. 바로 중층적인 고려인의 정체성을 절묘하게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재임 중에 강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를 예로 들면, 현재 그들의 국적은 카자흐스탄입니다. 현실적인 조국이죠. 그런데 카작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고려인들에게 당신의 모국어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부분 러시아어라고 답하죠. 언어는 사유를 지배한다고 하잖아요. 러시아어로 생각하고 말을 한다면 그 정서는 러시아식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 그들의 정서적 조국은 러시아입니다.
그 다음이 역사적 조국인데 이는 지금의 한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거든요. 혈연에 기반한 정체성이라 할 수 있죠. 저는 고려인들의 다층적 정체성 중 역사적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조상들이 험난한 삶을 헤쳐왔던 개척정신과 역동성, 세계 민주주의 정신 확대의 촉매가 된 3·1정신 같은 한민족의 위대한 가치가 고려인 정체성의 핵으로 보전되어 있다는 것을 늘 강조하고 있어요.
Q. 카자흐스탄 현지의 우리 동포들, 즉 고려인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궁금한데요?
A.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현지에서 매우 존경받는 민족으로 분류되어 있어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직접 고려인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발언을 한 적도 있고요. 아마도 고려인의 역사를 봤을 때 여러 차례 힘든 시기를 거치고 또 이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꿋꿋하게 자립해 나가는 모습이 현지인에게도 좋은 이미지로 구축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고려인 삶의 모습을 보면 특징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높은 교육열입니다. 이곳 고려인들이 1937년에 처음 이주해 왔는데 거의 쓰러져가는 토굴 같은 움집에서 정착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카자흐스탄 고려인 공동체는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놀랍게도 이듬해인 1938년 초등교육을 위한 학교, 즉 제레진스키 슈콜라를 세웁니다. 제가 직접 학교를 가봤더니 건물 내벽에 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인물들 사진이 쭉 늘어서 있더라고요. 거의 대부분이 현지에서 자신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른바 사회적 리더로 성장한 사람들이더라고요. 지금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가 이만큼 대접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정착 초기부터 줄곧 중시해 온 높은 교육열에 기인한다고 봐요.
그런데 사실 고려인 사회는 3~4세대로 넘어가면서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어요. 현지어 우선 정책에 따라 언어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데요. 사실 중앙아시아가 소련의 영향력 안에 있었을 때 이 지역 고려인들은 민족계층 측면에서 상층을 형성하고 있던 러시아인들과 하층을 차지한 현지인 사이에서 일종의 중간 소수민족의 역할을 했거든요. 공무원이나 전문직 등으로 많이 진출해 기타 소수민족에 비해 높은 사회·경제적 위치도 점유하고 있었고요. 당시 공식 언어는 당연히 러시아어였기 때문에 정착 초기의 1~2세대 고려인들은 러시아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에 집중했죠. 안정적인 삶의 유지와 함께 신분 상승의 기초가 되는 도구였으니까요. 그런데 소련 체제가 붕괴하고 1992년 카자흐스탄이 독립국가를 선언하면서 민족어를 공용어로 제창하게 되자 상황이 바뀐 것입니다. 교사나 공무원, 전문직 등을 채용할 때 현지어인 카작어 우선 정책을 펼치니 말과 글이 원활하지 않으면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한들 제약이 많지 않았겠어요? 실제로 지금은 현지 고려인들이 전문직 종사자보다 단순 비즈니스 쪽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이런 경향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죠.
Q.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의 영향력이 갈수록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드는 대목이네요.
A. 급격한 양상이라기보다는 독립 이후에 줄곧 겪고 있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죠. 비단 언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이 현지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어야 우리의 해외 네트워크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텐데 아직은 이 부분에 대해 국내적으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쉬운 대목으로 생각해요. 사실 현지에서 보면 다른 국가들은 대단히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거든요.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들을 보면 자국민이 많이 거주하고 있지 않더라도 각각 미·카, 영·카, 독·카 대학을 설립해 인적 네트워크의 기반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활동이 없어요.
재임 당시 저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카 대학 설립 방향에 대해 깊게 고민해봤고 실제로 국내에 많은 건의를 했음에도 재정적으로나 기타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아 가시적으로 진척되고 있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대신 교육을 통한 기초적인 교류 수준에서 현지 고려인 사회와 한국이 연계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 전라남도와 협력하는 프로그램을 발족시켰죠.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 학생들을 일부 선발해서 전라남도 소재의 특목고를 포함한 학교에 유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고요. 현재 1기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죠. 아무튼 우리 동포들을 현지 전문가로 양성해내고 이들의 네트워크와 영향력을 통해 질적으로 보다 강화된 교류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봅니다.
이동훈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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