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인물 | 고운기, 김용식 2017년 9월호
이달의 인물 | 고운기, 김용식
고운기 선생, 한·중 청년들과 함께 항일투쟁 전면에!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고운기(高雲起, 1907~1943) 선생을 2017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함경남도 문천 출생이며, 그의 아버지는 을사늑약 직후 홍범도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함경도 각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인물이었다.
1908년 선생은 홍범도 의병부대가 만주 지역으로 이동할 때 아버지를 따라 망명하였고, 이후 하얼빈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청년 운동과 교육 사업에 종사하였다. 1931년 한국독립군 제6중대장으로 중국의 반만항일군과 연합하여 대일항전을 전개하였으며 1932년 서란현 전투에서 일본군 1개 분대를 전멸시키는 전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선생은 1937년 이청천을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혁명당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같은 해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김구가 주도하는 한국국민당, 홍진·조소앙이 주도하는 한국독립당(재건)과 연합하여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하였고, 이때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1938년 선생은 유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대장을 맡아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선전활동을 통해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고 항일투쟁의 대열로 참여시켰으며, 1940년 중경에서 광복군이 창설되자 서안으로 이동하여 한인 청년들을 모집하였다.
1942년 중경으로 다시 돌아온 선생은 광복군의 자율적인 활동을 제한하던 9개준승(準繩)을 취소시키는 작업을 추진하다가 병을 얻어 1943년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정부는 1963년 고운기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국가수호에 꽃다운 청춘 바쳤다, 김용식 육군 일등병
국가보훈처는 김용식 육군 일등병을 2017년 8월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김용식은 1950년 8월부터 9월까지 이어진 기계·안강지구 전투에서 습격 임무를 수행 할 특공대에 자원했다. 기계·안강지구 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던 기계와 안강 등지에서 북한군 제12사단의 남진을 저지한 전투였다.
이 전투 과정에서 군사적 요충지인 비학산을 탈환하려는 아군의 작전에 북한군이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이에 김용식이 소속되어 있던 부대에 습격 임무가 주어졌고, 당시 그는 수도사단 제17연대에 배치된 지 며칠 안 된 신병이었지만 고참병들도 겁내는 돌격 작전에 뛰어들었다. 이 전투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북한군 제766 유격부대는 해체되어 제12사단으로 흡수되었다.
이후 김용식은 1950년 9월 19일 안강 시가지 전투에서 척후병을 맡아 정찰하던 중 북한군의 만행을 목격하게 된다. 의분과 정의감이 끓어오른 그는 소대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적군 6명과 교전을 벌여 모두 사살한 후 장렬히 전사했다. 국가수호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꽃다운 청춘을 바친 김용식 일등병은 사후 태극무공 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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