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이 계절에 이 과일을? 2017년 9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98
이 계절에 이 과일을?
남한에 태어나 줄곧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별일 아니겠지만 북에서 살다온 내게는 사시사철 신선한 과일을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호강스럽다. 한겨울에도 얼리거나 말린 과일이 아니라 나무에서 금방 따낸 것 같은 싱싱한 것을 판다. 국내산 과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입산 바나나, 망고,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까지 없는 것이 없다. 북에서 살 때보다 계절이 바뀌는 것에 둔감해진 것도 그래서인 것 같다. 물론 어딜 가나 냉·난방 시설이 잘되어 있어 바깥 기후에 노출될 시간이 북한에 비해 적다는 점도 작용한다.
철에 상관없이 아무 때든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어서 그런지 언젠가부터 과일을 잘 먹지 않게 됐다. 무엇이든 흔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과일 중에서 다른 과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철에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복숭아인 것 같다. 그런데도 길을 가다 복숭아 파는 것을 보게 되면 ‘아, 복숭아 나올 때구나’ 하고 느껴질 뿐 선뜻 사먹게 되지는 않는다.
양강도에서는 복숭아가 제일 귀했다
북에 있을 때는 과일이 다 귀했지만 그 중에도 복숭아는 더 먹어보기 힘들었다. 빨리 먹지 않으면 상하기 쉬운 과일이다 보니 장마당에도 복숭아는 잠깐 나왔다 사라졌다. 특히 내가 살던 양강도 지역은 백두산을 낀 고산지대여서 과일 농사가 안 되는 곳이다. 복숭아는 다른 과일처럼 운반시간이 길면 도중에 못쓰게 되기 쉬워 지역을 오가며 유통으로 버는 장사꾼들도 웬만하면 다른 과일을 옮겨다 팔았지, 복숭아는 좀처럼 선택하지 않았다.
복숭아가 흡연으로 체내에 쌓인 독을 해독해주는 효과가 있다며 1년에 한두 번은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렇지만 숨 막히게 독한 ‘되초’라고 부르는 양강도 잎담배를 피워대면서도 복숭아를 입에 대보지도 못하고 지낸 해가 더 많다. 전국적으로 ‘고양이 뿔 빼고는 다 있다’고 소문난 양강도 혜산 장마당에서도 어쩌다 한번 복숭아를 구경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외 과일들은 대부분 철에 관계없이 다 있다. 그러나 대개 중국산이다. 중국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일반 과일은 물론이고 바나나, 파인애플 같은 열대과일도 유입된다. 국내산은 워낙 공급이 부족한데다 운송 환경이 나빠 가져오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양강도까지 과일을 가져오기 가장 가까운 곳은 함경북도 길주와 함경남도 북청 지역이다. 이 지역은 과일 농사가 잘 되면서도 양강도와 인접해 있다. 북청에선 주로 사과를 가져오고 길주에선 배를 가져왔다. 북청은 북한 굴지의 사과농장이 있고 맛이 좋기로 손꼽혀 김일성의 관심이 특별했던 곳이다. 길주에서 재배되는 배는 크기가 크고 아주 맛있었는데 남한에 와서 그것보다 더 맛있는 배를 아직까지 먹어보지 못했다. 남한에서 먹어본 과일 중에 북에서 먹었던 것보다 맛이 없었던 유일한 과일이 배인 것 같다. 사과는 북한 것에 비해 남한 사과가 더 맛있다.
북한에도 과일이 흔했던 때가 있기는 했다. 1980년대 초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그 때는 철따라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 과일 농사가 되지 않는 양강도에서도 복숭아를 많이 먹을 수 있었다. 그만큼 운송 조건이 지금에 비해 좋았기 때문인데, 빨리 운반해야만 하는 복숭아는 매일 헬기로 실어다 과일상점들에 즉각 공급해 팔았다. 그 시절엔 더 먹고 싶어도 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개구쟁이 친구들과 어울려 한발 크기 막대기 끝에 못을 박아 과일상점에 가서 판매원의 눈길을 피해가며 매장에 쌓인 과일을 훔쳐 먹던 기억이 난다.
과일 흔했을 때도 사시사철 접하지는 못해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사철 과일을 먹지는 못했다. 제철이 되어야만 먹었다. 살구가 나오는 계절이면 살구를 먹고 햇사과 철이면 햇사과를 먹고 가을이면 늦사과를 먹는 식이었다. 제철이 지나면 사과말랭이, 사과통졸임(캔), 언사과, 건포도 등을 먹었다. 열차를 타고 여행을 가다보면 지역별 과일을 사먹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열차가 사과 고장인 북청역에 정차하면 철도영업소 판매원들이 사과를 플랫폼에 내다 파는데, 생산지다보니 값도 아주 저렴해서 잔뜩 사와 먹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철도영업소 판매원보다 장사꾼들이 플랫폼에 나와 여객들에게 과일을 팔고 있다.
한 때는 흔하던 과일이 다 어디 갔는지 날이 갈수록 점점 과일상점들은 빈 창고처럼 되더니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장마당이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값이 비싸 가난한 사람들은 구경만 할 뿐이다. 신맛이 나는 과일을 먹고 싶은 임산부들도 돈이 없으면 과일상점을 쳐다보지 않고 에돌아가야 할 정도다. “사과 풍년, 배 풍년 모두 다 풍년” 하는 노래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데 이제는 아득한 옛말이 되고 말았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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