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싶었어요 | “북한 미술, 진품 증명 위해 ‘인증샷’도” 2017년 9월호
만나고싶었어요 | 박영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예술기반정책연구실장
“북한 미술, 진품 증명 위해 ‘인증샷’도”
Q. 해외에서 북한 미술이 과연 어느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지, 특정한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인기가 있는 경우는?
A. 북한에도 우리와 유사한 미술 장르가 있고, 각 장르마다 작가들과 작품이 있습니다. 한국화와 유사한 장르로 전통 회화를 현대화한 조선화, 정치적 선전이나 사회 계몽을 주제로 한 포스터 장르의 선전화도 있고요. 조각이나 유화, 판화도 있죠. 수예나 ‘색돌가루 그림’으로 명명되는 보석화도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미술의 경우 해외 시장에서 ‘인기’를 말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북한 미술이 해외 미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유통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해외 미술 애호가, 수집가들의 선호도가 높다든가 하는 현상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북한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이따금 열리고 있고, 인터넷 판매 사이트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 정도라고 할까요. 사실 매우 폐쇄적인 국가로 알려진 북한의 미술이 해외에 소개되고 있다면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때는 그 자체가 신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
게다가 북한 미술이 해외 미술 시장에 본격 진출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의 미술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도 극히 제한적인 상황입니다. ‘만수대창작사 갤러리’라는 영문 인터넷 사이트가 서구권에서 북한 미술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거든요. 이탈리아에서 개설한 이 사이트에서는 북한 미술가들과 작품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직접 그림을 판매하기도 하죠.
유럽과 달리 아시아권에서는 중국 미술 시장에서 북한 미술의 유통이 이제 막 부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의 예술품 경매 사이트는 물론이고 오프라인 갤러리를 통해서도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죠. 특히 베이징 798예술구에는 북한의 만수대창작사가 직접 운영하는 ‘조선만수대창작사 미술관’에서 북한 미술의 전시와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Q. 북한 미술 작품이 해외로 진출하는 과정이 주로 특정한 목표 아래 국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혹은 작가들 사이에 별도의 네트워크가 존재해 이를 통해 교류가 이뤄지는지 궁금합니다.
A. 북한 사회는 모든 분야가 국가와 당의 통제 아래 운영되고 있는 특이한 국가죠. 북한에서 화가들은 ‘창작사’라는 국영 회사에 출·퇴근하면서 창작사 안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에 참여합니다. 우리에게도 알려진 ‘만수대창작사’는 수십 개의 창작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으로 그 규모가 엄청납니다. 북한의 미술가들은 국가에서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회사원과 같기 때문에 작품의 주제 역시 국가와 당의 방침에 따라 설정하게 됩니다. 미술 작품의 판매와 전시도 개별 작가들이 하지 않고, ‘조선미술작품보급소’라는 또 다른 국영회사가 담당하죠. 북한 미술의 해외 전시나 판매를 담당하는 기관도 따로 있는데 ‘대외전람총국’이 그것입니다. 다만 만수대창작사는 직접 해외 진출 사업을 운영할 만큼 그 위상이 대단합니다.
Q. 최근 여러 미디어에서 소개되고 있는 것을 보면, 북한이 아프리카 국가나 동남아 국가와 미술 관련 협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데,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A. 북한의 만수대창작사는 4천여 명이 일하는 대규모 조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작가들의 작업실만이 아니라 대형 조형물을 제작하는 곳도 있고 자체 문화회관이나 운동장도 있죠. 만수대창작사는 해외사업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해외에 미술관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대형 동상이나 조형물을 수출하고 있는데, 그 일을 담당하는 곳이 바로 만수대창작사의 자회사인 ‘만수대해외개발회사그룹(MOP)’입니다. 나미비아, 짐바브웨, 세네갈 등 10여 개 국가에 동상이나 조형물을 판매 또는 건축하고 있고요. 그 대가로 수억 달러에 이르는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죠. 조형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세네갈의 다카르에 세워진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비입니다. 지난 2010년 4월에 개관하여 관광명소로 활용되고 있어요. 이 국가들은 대부분 김일성 시대부터 북한과 정치적 유대가 강한 국가들입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아프리카 지역에서 만수대해외개발회사그룹의 활동이 전면중단의 위기를 맞았어요.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유엔안보리 제재에 아프리카 회원국들도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죠.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제2321호에서는 북한 조형물의 공급, 판매, 이관을 금지하였고, 지난 8월 5일에 채택된 제2371호에서는 만수대해외개발회사그룹을 제재대상 단체 명단에 올려 이 회사의 해외 사업 자체를 원천 차단하기로 하였습니다. 유엔의 모든 회원 국가들이 대북제재 결의안 이행에 동참하게 되면 사실상 북한의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조형물 수출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여요.
그러나 최근 캄보디아 수도 씨엠립의 앙코르와트 사원 부근에 개관한 앙코르파노라마박물관(APM)은 북한의 해외 진출 가운데서도 특이한 사례에 속합니다. 이 박물관은 북한에서 건립비용을 조성하여 건립하였고, 직접 운영하여 수익을 얻은 후 20년 뒤에는 캄보디아에 양도하기로 하였기 때문이죠. 이 박물관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외화 수입원이라기보다는 거꾸로 외화가 유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매우 이례적인 것입니다. 또 실제 20년의 운영을 통해 건립비 등을 포함한 투자금을 회수하고 수익까지 창출할 것인지도 미지수입니다. 어쨌든 최근 10여 년간 확대되던 북한 조형물의 해외 수출은 핵 문제 해결 전까지는 전면 중단의 위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여요.
Q. 북한을 실제로 방문하고 미술품을 수집해 공개하고 있는 수집가들이 있는데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A. 대형 조형물 수출이 북한 회사의 직접 진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면, 북한 미술품의 해외 시장 진출은 외부의 수집가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어요. 북한 미술을 수집하는 수집가들은 중국인을 제외하면 채 10명이 되지 않습니다. 영국인과 네덜란드 수집가들이 ‘현금 가방’을 들고 북한 현지를 방문하여 그림을 수집하는 몇몇 사례가 있을 뿐이죠. 이들은 유럽의 우표 및 미술품 수집가들로 몇 차례의 방북을 통해 미술품을 수집하는 정도이지만, 니콜라스 본너와 같이 수십 년째 대북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수집가들의 활동도 지난 2011년 빔 반 베일이 평양에서 구금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사실상 중단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북한에서 미술품 구입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북한 미술의 해외 시장 진출은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보여요.
어쨌든 소수이지만 서양 수집가들은 평양에서 직접 수천 점의 북한 미술 작품을 사들여 소장하고 있으며, 그 소장품을 기반으로 남한을 비롯한 외부 세계에서 북한 미술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화집을 출판하기도 했죠. 북한 미술 가운데 조선화나 유화 등 회화 작품을 주로 수집하고 있으며 특히 정치 선전물인 선전화도 인기 수집 품목의 하나입니다. 사회주의적 선전미술은 옛 소련이나 중국에서도 국가적 차원에서 생산되었지만 지금은 북한이 유일한 생산 국가이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어 관심을 갖는 것이죠.
북한 미술에 대한 외부세계의 관심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살아 있는 사회주의 미술’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언젠가 북한에서도 사회주의 미술이 생산되지 않는 시점이 온다면, 지금 북한에서 양산되고 있는 사회주의 미술의 희소성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에 수집가들은 미래에 대한 투자로서 북한 미술 수집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수집가의 경우 외부세계의 기호에 맞추어 생산된 외국인 전용 북한 작품을 수집하여 북한 미술 전문가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 공식 미술에 해당하는 사회주의 미술이 아닌 작품이라 할지라도 북한의 미술가들이 그린 것이라면 북한 미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외부의 주문에 맞춘 것이 과연 진정한 북한 미술이라 할 수 있는지 논쟁적인 주제라 할 것입니다.
Q. 중국 등지나 온라인에서 북한 미술품을 접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진품 여부를 궁금해하는데?
A.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입니다. 따라서 북한 미술에 대한 정보도 많이 부족하죠. 아직은 북한 미술이 해외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북한에서는 좋은 그림의 경우 보다 많은 관객에게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자기 복제를 통한 모사품 보급이 관행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작품의 주제나 형식도 개성적인 것보다 당의 정책과 노선을 따르는 것들이기 때문에 작가의 독창성이 중시되지 않는 환경에 있다고 할 수 있죠. 또한 북한 내부에서는 미술 작품을 사고파는 미술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작품의 원본성이 문제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때문에 외부 세계에서 북한 미술 작품을 거래하는 경우 해당 작품의 원본성 여부와 진위 여부가 항상 문제되고는 합니다.
북한 미술 수집가 및 딜러들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북한 미술 작품의 진본 여부를 증명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원본임을 확인한다는 북한 창작사의 인증서를 첨부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인증서 역시 위조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해당 작품을 그리고 있는 작가의 모습, 소위 ‘인증샷’을 첨부하기도 합니다. 베이징의 만수대창작사미술관이나 캄보디아의 앙코르파노라마박물관에는 북한 미술가를 파견하여 현지에서 그린 그림을 판매하기도 하고요. 미술가를 현지 파견해 판매하는 북한 미술품이 진품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장치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희소성만으로 북한 미술이 세계 시장에서 인기 있는 콘텐츠가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요. 유엔의 대북제재로 인해 아프리카 국가들이 북한 미술의 수입을 중단하고 나선 것처럼 지금과 같은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의 지속은 북한의 대외 관계를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북한 미술의 해외 시장 진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북한 미술의 봄날을 위해서도 한반도 평화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동훈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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